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 영화로 만나는 15개의 노동이야기
이성철.이치한 지음 / 호밀밭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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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를 싣고, 영화는 노동을 싣고


새책[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 영화로 만나는 15개의 노동 이야기


양솔규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회원)


호밀밭, 17,000원, 2011년

우리는 한번 씩 ‘영화 같은’ 삶을 꿈꾸고는 한다. 그 이유는 삶이 지루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화 같은’ 삶이란 우리가 꿈으로만 꿀 수 있는 미래의 희망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왜 영화는 현재와 아니라 ‘미래’, 현실태가 아니라 ‘가능태’로만 여겨져야만 할까? 그것은 우리가 접하는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를 그린 영화도 있고, 현실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단지 이것은 장르의 문제만은 아니다. SF 영화라 할지라도, 공상적인 모습을 그린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현실의 문제와 밀접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영화를 ‘찾아서’ 보고, 현실에 비춰 ‘유추하고,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이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상에 바쁜 우리들이 언제 안목을 키우고, 정보를 찾고 하겠는가?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지적 여행을 도와줄 일종의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이사이자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인 이성철 선생님이 중국학과 이치한 선생님과 함께 쓴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는 우리에게 독특한 지적 여행을 이끌어 줄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에는 총 15개의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영화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나 <파업전야> 같은 영화도 있고, 영 낯이 생소한 <베가스 오브 라이프>나 <실크우드> 같은 영화들도 있다. 또한, 켄 로치의 <빵과 장미>나 <네비게이터>와 같은 비교적 최근의 영화도 소개되어 있으며, 같은 시대이기는 하지만,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미꾸라지도 물고기다>와 <24시티>와 같은 중국 영화들도 있다. 또한 같은 시기의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인 엘리오 페트리의 <노동자계급 천국으로 가다>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인 장 뤽 고다르의 <만사형통>을 소개한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글 형식과는 다소 다르다. 영화의 대부분의 줄거리를 자세하게 노출하여 스포일러(spoiler)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스포일러를 제공하는 것도 이 책의 목적 중 하나인 듯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영화(장르)에 대한 분석 보다는 그 텍스트가 말하는 내용을 중심에 놓고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노동’에 대한 학습서라고 볼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영화’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거대한 노동사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제공해 준다. 말하자면 영화 작품 하나하나가 하나의 ‘사진’ 또는 ‘나무’라면 이 책은 ‘동영상’ 또는 ‘숲’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니 드비토 감독의 <호파 Hoffa>에 대한 글을 보면 단순히 영화를 요약하고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노동운동의 전설적인 조직 팀스터(전미트럭운수노조)와 미국노동운동사에 대한 지식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노동계급 천국으로 가다>를 통해서는 FIOM(금속연맹) 등 이탈리아 노동조합 조직편제와 1969년의 뜨거운 가을 등 노동운동사를 전반적으로 소개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영화 줄거리와 딱딱한 노동운동 지식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레짐작 하면 안 된다. 이 책에는 수 많은 소설(예컨대 존 스타인벡이나 밀란 쿤데라 등의 소설)과 영화음악(엔리오 모리꼬네를 비롯하여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에 대한 소개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영화’와 ‘노동’을 만나게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파생적 지식들을 하나하나 모아 집적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루함에 빠지지 않고 지적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성철 선생은 앞으로도 <영화와 노동을 만났을 때> 2편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또한 청소년들을 위한 책 역시 준비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신 바 있다. 부디 집필에 매진하여 풍부한 지적 여행의 행로를 하나하나 개척해 주면 좋겠다. 우리는 이 행로를 차근차근 공짜로 편하게 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이라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좋은 책을 낸 부산의 신생출판사 “호밀밭”의 건투를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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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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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8일 (화)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20세기 유럽 사회민주주의 분석
고민은 지금부터! 우리에게!


『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후마니타스, 2010)


양솔규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는 아주 흥미로운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바로 20세기 정치의 최종적 승자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수정’ 자유주의 또는 ‘내장된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공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던 여러 가지 요소들, 예컨대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적 안정을 결합시키는 것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어중간한 중도도 아니고, 복지국가 등의 특정한 정책을 도입하는 시도로 환원해서도 안된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적 강령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며,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특유의 믿음’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둘 모두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파시즘 등도 공유하고 있는 바, 따라서 파시즘과 구별되는 사회민주주의의 특성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셰리 버먼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연적인 요구였다. 이에 세 가지 해답이 제시되었다. 자유주의적 해법, 마르크스주의적 해법, 파시즘적․민족사회주의적 해법이었다. 저자가 보기에 자유주의적 해법과 마르크스주의적 해법은 모두 ‘경제 우선적’ 해법이었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았으며, 마르크스주의적 해법은 그 특유의 경제결정론에 입각해 대기론을 부추겼다. 요컨대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혁명을 만든다는 것은...요인들을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며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혁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다.(세라티) 하지만 자본주의는 대중들에게 파국을 선사했고 해결책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두 가지 입장이 제시되었다. 민주적 수정주의의 입장(베른슈타인)과 혁명적 수정주의의 입장(소렐)이었다.

민주적 수정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사회주의에 배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자유주의의 정신적․현실적 후계자로 보았고, 민주주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자 근본적 구성 요소로 보았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우선론을 기각하고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공격했다. 이러한 민주적 수정주의는 전간기를 거치면서 사회민주주의로 등장하게 된다.

반면 혁명적 수정주의는 자유주의를 혐오했고 민주주의를 파괴적이고 퇴보적인 영향을 일으키는 사상으로 보았다. 따라서 현존 자유주의 체제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혁명적으로 뒤엎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흐름은 나중에 민족주의, 사회주의적 요소들과 결합해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나타나게 된다.

(민주적 수정주의에서 진화한) 사회민주주의, 파시스트, 민족사회주의자들(나치)들은 공통적으로 유사한 원리와 정책을 발전시키면서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했다.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사회적 변화와 요구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반면 이러한 운동들은 대중들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열망을 제공했다. 하지만 독일 사민당, 이탈리아 사회당, 프랑스 사회당 등은 모두 전간기에 제시된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해 무기력하게 대응했다. 다수의 의석 획득으로 인해 대두된 정부 참여 문제를 거부하는가 하면(책임성 결여), 민족주의의 위력에 대한 평가 절하,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고집과 이로 인한 실천의 부재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 내에서 거절됨으로서 ‘정치의 우선성’의 필요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몫이 되고 말았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계급교차적 이해를 주장하고(국민정당화), 민족주의를 동원했으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비록 탐욕스러운 자본과 창조적인 자본을 구분하여 기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동시에 반자본주의적 자세를 유지했지만 말이다.

오로지 한 나라에서만 사회민주주의적 실천이 당 내에 안착하였다.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에서만 가능했던 이유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서 주변적 위치에 있었고, 브란팅을 비롯한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의 지도력이 유지되었으며, 정치적 후진성(보통선거권의 배제)이 민주주의를 사회주의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제시하게 했다. 요즘의 용어로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의) ‘후발주자의 이점’ 이랄까?

어쨌든 이러한 19-20세기 초반의 이데올로기 필요성에 대한 수요와 이에 대한 각 이데올로기의 공급, 서로간의 투쟁의 과정을 거치고, 또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후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셰리 버먼은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민주적 수정주의) 간의 쟁점들을 역사적 이데올로기 투쟁 과정을 통해 매우 역동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적 우선성’이 당시에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20세기 초반의 상황 속에서,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이를 실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마르크스주의의 책임으로 돌린다. 예를 들어 국가를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로 보는 시각은 국가 참여주의를 기각하게 만듬으로써 국민들이 사회주의 정당에 원하는 책임감을 거부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와 국제주의 고수는 민족주의의 거대한 잠재적 힘을 퇴행적 사회세력에게 넘겨주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정통적인 경제결정론과 원칙에 얽매임으로서 현실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들이 불가피하게 어정쩡한 모습으로 핑계를 대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몇몇 개혁 조치들 또한 이론과 실천의 분리 속에서 전체 사회개조를 위한 장기적 목표 속에 위치 짓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셰리 버먼의 책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 지점을 던져주고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강령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언급이 들어있다. 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쟁도 진행된 바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한 어떤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고, 이를 뛰어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끊임없이 재구성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기도 했다. 말하자면 현실 사민주의의 극복과 +미래 α 요소의 결합? 사실 진보신당 내 좌파들이 전후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그들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사회민주주의가 제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 등은 타당하며, 여타 쟁점들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내에서 논쟁과 검토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공백지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과감한 생략 덕분에 가능했던 이데올로기 경합 과정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분명한 주장들은 셰리 버먼의 책을 읽어볼 필요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리 버먼의 책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불충분한 논증의 문제이다.

셰리 버먼의 ‘정치의 우선성’의 강조가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책 속에서 논리적으로 충분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안착하는 과정에서의 ‘정치의 우선성’의 실제 모습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스웨덴에서의 2차세계대전 이전의 경험들이 거의 유일한 설명이고, 이는 전체 9장 중에 1개의 장 밖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 책의 부제인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에도 의문을 갖게 한다. 사실상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은 20세기의 초반, 또는 30년대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유럽의 형성을 다 설명하는 듯한 부제는 적절하지 않다. 설사 이데올로기의 기초는 그 당시 30년대에 이미 마무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민주주의가 20세기의 ‘성공적인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설명되어져야 납득이 가능한 부분이다.


둘째 ‘정치의 우선성’이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성격 구분에서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의 문제는 충분한 논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회민주주의가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경쟁자들의 소멸로 인해 ‘잔존’한 것인지 책 속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자본주의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정치적 동력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사회민주주의’ 또는 ‘수정 자유주의’가 아닌지 하는 의문이다. 말하자면 20세기가 과연 정말로 ‘정치의 우선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민주의의 승리를 증명했는지 저자의 책 속에서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의 우선성’이 사민주의 세력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셋째, 사회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본다면, 그 승리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단지 잔존? 아니면 지배적 정치주체로 등장하는 것? 아니면 애초 자신의 이론적 목표가 달성되는 것?

쉐보르스키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서 선거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의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서술하고 있다. 다수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목표를 훼손할 수밖에 없고 노동계급 외 다른 계급들의 이해에 호소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회주의 정당(노동계급 정당)이 아니게 되고(노동자 정당일 수는 있어도) 이는 노동자들을 동원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절감된다는 것이다. 사민주의에게 대의제 민주주의, 선거는 수단이자 목적이고 사회주의로 인도하는 매개자이자 미래의 정치형태이지만,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아닌 것이다. 셰리 버먼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특정 정책을(개량을) 그저 그 자체 목적인 것이 아닌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구조를 바꾸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바꾸려는 의지 자체도 점차 희박해졌다. 이런 점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자신의 목표 설정과 관련해 무엇을 성공했는지 의심스럽다. 즉, 성공의 외피 속에 실패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이 대기론에 빠져 행동의 열정을 봉쇄한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댈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민주주의에 내제한 온건화 속에서 사회주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만다고나 할까?


넷째, 사회민주주의가 중요하게 다루는 ‘민주주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세기 내내 사회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소위 복지국가 내에서도 민주주의 의제와 요소는 확장되었고, 이에 대해 국가와 또는 국가 내부에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제도화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새로운 확장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분명치 않다.


다섯째,

셰리 버먼의 논증 과정은 매우 한정적이다. 나라로 보면, 영국과 미국은 검토에서 제외되었고, 시기로 봐도 20세기 초반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셰리 버먼의 논증 과정에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현상이었던 ‘냉전’ 상황과 현실 사회주의의 존재가 미친 영향은 아예 언급되지 않고 있다.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에서 주장하듯이 전후 질서의 형성 과정에서 ‘냉전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가 전후 지배적 정치이데올로기로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으로 인해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 등이 소련에 맞서는 ‘자유세계’의 행위자로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냉전기 서구정부들의 정치적 기반은 전쟁 전의 사회민주주의계 좌파에서부터...걸쳐 있었다.”

“미국은 유럽에서 공산주의적 위협을 인지”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핵심은, “노동자 계급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대중 투쟁이 불가피하게 폭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공산주의적 위협”은 현실적이었다.(필립 암스트롱 외)

설사 셰리 버먼의 주장처럼 사회민주주의의 정치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냉전 또는 미국 중심의 질서가 부과하는 힘을 상회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전후 중도우파 또는 보수파들도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들을 펼쳤다는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여섯째,

역자와 저자의 몇 가지 언급에서는 21세기 현재의 세계적 과제 역시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좌파 스스로의 지적 오류나 의지 상실을 극복’하고 ‘낙관주의와 비전을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 옳게 지적하는 것 한 가지! 저자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가장 큰 실패는 운동의 기반이었던 이상주의를 상실했다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주의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상관관계 속에서 고유하게 존재하는 딜레마와 연관된다. 더군다나 21세기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는 저자 역시 충분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기반했다면 현재의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믿음을 상실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얼마 전에 얘기했듯이 ‘급진적 정치에서 온건한 중도로 끊임없이 변화’한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러한 이상주의를 21세기적 조건 속에서 다시 되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면 저자의 사회민주주의의 현재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공허한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다.


일곱 번째,

저자는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충분히 훌륭하게 버티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2010년 9월 스웨덴은 선거에서 1914년 이후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중도우파 정당이 승리했으며 극우반이민 정당이 의회에 진입했다.

저자는 미래의 전략을 논하면서 현 좌파들의 다문화주의를 비판하고 사회민주주의는 이민자들을 사회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포퓰리즘적 우파들에게 공동체라는 주제를 뺏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스웨덴의) 정책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주의를 향한 모색이며 퇴보가 아닌 진보의 징후로 보았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사민주의자들은 이민자들이나 다른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했었다. 저자도 살폈듯이 민족주의에 사민주의는 편승했고 주류 정당으로 남기 위해 공동체를 호명했다. 그러다가 최근의 더 큰 이주노동의 물결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서 이러한 통합 정책은 실패했고 포퓰리즘적 우파의 등장을 막지도 못했다.


여덟 번째,

경제 중심론 또는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는 방식이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전환 역시 단순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실제 저자의 논의들은 매우 주의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단순한 치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 이면에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문제가 놓여 있고 국가이론이 주로 이러한 문제를 다뤄왔다. 밥 제솝이 얘기했듯이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은 최종심급에서의 경제결정론을 기각해야 가능한 것이다. 상부구조의 변화 없이 토대의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즉 자율성은 상대적일 수 없다. 역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상대적 자율성’을 폐기하는 대신에 ‘상호작용적’ 심급에서의 결정만이 존재한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저자의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실패한 이데올로기의 공통점을 ‘경제 우선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여러 이데올로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에는 탁월하지만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상황과 전망에 대한 인식을 연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정치의 우선성’의 장점들을 역으로 가리게 되는 것 같다.


아홉 번째,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못박는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개념을 기각함으로써 비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못박는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 역시 과도한 비약과 단절을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만 기능하게 되며 이상주의의 씨앗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스웨덴을 제외하고)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정책에 있어서 매우 협소한 수단들만을 사용하고 상상력은 고갈되고 만다. 이것은 사회주의와의 단절 속에서 사민주의가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길은 아니었을까?


열 번째, 이 책은 20세기 유럽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형성과 관련한 책이다. 따라서 유럽 중심주의적인 논의일 수밖에 없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또다른 수정주의인 레닌주의 또는 마오주의는) 유럽 바깥의 광대한 제3세계, 그리고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그렇다면 21세기 사회민주주의는 유럽 바깥과 어떤 모습으로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저자는 아무런 편린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사회민주주의와 관련해 저자의 많은 논의들은 충분히 수용 가능한 부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나, 당시 카우츠키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나 독일사민당 등의 무능력에 대한 설명, 직면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베른슈타인 등의 용기 등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많은 특징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주장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거의 모든 실패의 원인을 마르크스주의에게만 돌리고 있다. 결론을 향해 질주하는 기차 같다고나 할까? 이미 내려진 결론과 짜맞추어지는 논리들.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알리바이를 제공해 줌으로써 사민주의를 갓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사명감은 심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근거는 허약하다. 이데올로기 분석에만 치중한 나머지 20세기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의 공과 실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논증은 없고 장밋빛 전망만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아담 쉐보르스키나 요스타 에스핑 엔더슨 같은 정치학자들의 논의보다 정치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볼 수도 없다.

물론 21세기의 방향과 관련한 저자의 논증 공백을 메우는 것은 저자만의 책임은 아니며 이론적 검토와 더불어 실천적 모색이 병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저자의 희망대로 아직 사회민주주의에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민주주의가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회복하는 것을 최소 필요조건으로 할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는 다른 어떤 것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련의 국가사회주의가 사라진 지금, 민주적 사회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자신의 대립물로 설정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형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직면했던 한 세기 전의 사람들의 고민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충분치는 않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의 고민들은 매우 진솔했으며 현재의 고민들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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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다이어트 - 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
데이비드 거손 지음, 남종영 옮김 / 이매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탄소 다이어트> / 데이비드 거손 / (이매진, 2010)

 


 

 데이비드 거손은 임파워먼트 연구소 창립자이자 CEO라고 한다.

이 책은 일종의 "행동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환경문제에 대한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고칠 수 있는 습관들을 과제식으로 나열해 보여준다.

그 다음에

우리 주변의 커뮤니티 내에서의 실천사항을 제시해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감축 목표, 감축 정도를 보여주고, 이를 체크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등도 제시해 놓았다.

 

외국인이 쓴 책이기는 하지만,

옮긴이 남종영씨가 "국내 사정에 맞게 일부 내용을 수정, 추가하고 단위는 국내 기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각주 등에 옮긴이가 우리나라와 관련한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첨가해 놓았다.

 

 

여기에는 탄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많은 사이트도 등록해 놓았다.

소개하자면.

 

국립산림과학원  http://kfri.go.kr

그린스타트  http://greenstart.kr

기후변화정보센터   http://climate.go.kr

녹색교통   http://greentransport.org

녹색연합   http://greenkorea.org

농식품안전정보 서비스  http://foodsafety.go.kr

대기오염도 실시간 공개 시스템   http://www.airkorea.or.kr

두레생협연합   http://dure.coop

무공이네   http://mugonghae.com

산림청   http://forest.go.kr

숲연구소   http://ecoedu.net

아이쿱생협연합회   http://icoop.or.kr

에너지관리공단   http://co2.kemco.or.kr

에너지시민연대   http://enet.or.kr

올가   http://orga.co.kr

우리숲   http://woorisoop.org

자원순환사회연대   http://waste21.or.kr

초록마을   http://hanifood.co.kr

친환경상품 종합정보망   http://ecoi.go.kr

푸른아시아   http://simin.org

한국유리병재활용협회   http://www.kgbra.or.kr

한살림 http://hansalim.or.kr

환경운동연합   http://kfem.or.kr

환경정의   http://eco.or.kr

환경종합정보 서비스  http://etips.me.go.kr

 

 

이 책은 이론서도 아니고 딱딱한 설명도 거의 없다.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간단한 설명과 실천과제 제시, 활동목표 이런 식이다.

의례 그렇듯이 생태사상은 매우 실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실천적인 사상인 생태사상이 추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실천을 독려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 딱 적합한 책이 바로 <탄소 다이어트>이다.

 

주로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오는 생태 관련 서적들이

대개 이런 컨셉인 거 같다.

 

이 책의 부제 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

굳이 책을 읽지 않고 목차만 보더라도 실천 과제가 눈 앞에 보인다.

 



들어가는 말
탄소 다이어트, 어떻게 할까

1장. 탄소 다이어트 생활백서
1. 쓰레기부터 다이어트를 - 쓰레기 줄이기
2. 초식동물로 살아요 - 육식을 채식으로
3. 5분만 씻어도 깨끗하잖아요 - 샤워하며 온수 줄이기
4. 과로하는 온수기에 휴식을 - 온수기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5. 반짝반짝 눈이 부셔 - 설거지 물 아끼기
6. 한 번만 더 입어요 - 세탁기 사용 줄이기
7. 반소매 온도로 맞추세요 - 경제적으로 에어컨 사용하기
8. 스웨터가 좋아요 - 난방 온도 낮추기
9. 열 샐 틈 없는 우리 집 - 집 밖으로 새는 열 막기
10. 보일러를 폭주 기관차처럼 - 보일러 청소하기
11. 새는 전력을 막아요 - 전자제품 완전히 끄기
12. 그린에너지로 환하게 밝혀요 - 절전형 콤팩트 형광등 설치하기
13. 녹색 전기를 쓰세요 - 자동차 주행거리 줄이기
14. 출발 전에 계획을 - 자동차 주행거리 줄이기
15. 지구가 아프지 않게 달려요 - 연료를 아끼는 드라이브
16. 튼튼한 자동차로 키우세요 - 자동차 연비 관리하기
17. 현명한 자동차 친구 - 기름 적게 먹는 자동차 사기
18. 우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가족 - 최고의 에너지 효율 달성하기
19. 탄소 중립 달성 - 탄소 발자국 지우기

2장. 탄소 다이어트 널리 퍼뜨리기
20. 지구를 구하라! - 탄소 다이어트 퍼뜨리기
21. 24시간 내내 탄소 다이어트를! - 직장에서 탄소 발자국 줄이기
22. 커뮤니티를 만들자 - 지방자치단체를 탄소 다이어트 대열에!
23. 실천하는 시민들 - 지역에 저탄소 시스템 구축하기
24. 즐거운 친환경 학교 - 아이들도 탄소 다이어트를!

3장. 이산화탄소 얼마나 줄였나

4장. 에코팀을 만들자

탄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곳들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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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 종이, 자연 친화적일까? 세계를 누비며 밝혀 낸 우리가 알아야 할 종이의 비밀!
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상상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상상의숲, 맨디 하기스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도 생태환경 내의 관심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관심분야가 넓어지면, 실천해야 될 대상과 내용도 더 많아지는데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다.
그래도, 어쨌든 현실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해서 고마 읽었다.

사실 종이와 숲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키워드다. 종이는 나무로 만들어지며, 나무는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한대림 보호운동을 펼치는 '타이가 레스큐 네트워크'의 기관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열대우림의 나무에만 관심이 있었지, 러시아나 핀란드, 캐나다, 미국 등의 아한대림 나무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종이의 생산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아한대림 기후와 침엽수의 특성상 한번 파괴된 타이가의 숲이 초래하는 환경적 재앙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초반에 정확하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종이를 덜 사용하자는 것. 

1장 종이의 과거와 현재
 

종이의 라이프 사이클 : 숲에서 쓰레기통까지
숲 - 벌목 - 원목 운반 - 껍질 벗기기 - 조각내기 - 펄프 만들기 - 표백하기 - 펄프를 종이 모양으로 만들기 - 말리기 - 절단하기 - 운송 - 소비자,기업에서 소비 - 재활용 혹은 매립

우리가 나무의 쓰임새를 생각하면 가구나 건축자재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제지산업은 생각보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보통 지구의 숲이 파괴된다고 할 때, 아마존처럼 플란테이션 산업 등을 위해 사라진다고 생각했지만, 제지산업을 위한 숲파괴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원목의 42%가 종이의 원료인 펄프가 된다고 한다. 그 중 3분의 2는 펄프를 얻기 위해 단일 수종만을 심은 '나무농장'의 나무들이라고 한다.
 

2장 얼마나 많은 종이를 쓰고 있는가?

역시 미국이 연간 9,200만 톤의 종이를 소비해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한다. 중국은 4,300만 톤, 3위인 일본은 3,100만 톤, 독일은 1,900만 톤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2020년 경이 되면 2005년 수준의 2배 정도 소비할 것이라고 한다. 1인당 소비에 있어서는 핀란드가 324킬로그램으로 1위, 미국이 297킬로그램으로 2위를 차지했다. 
 

종이를 매립하면 썩으면서 이산화탄소보다 23배나 더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배출되기 때문에 매립해서는 안된다. 대신 재생펄프로 종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버진 펄프'보다 훨씬 깨끗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저자는 숲 파괴의 상징물로 휴지를 들고 있다. 휴지, 물티슈. 냅킨, 키친타월은 한번 쓰면 간단하게 버림에도 불구하고 '청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킴벌리-클라크는 원시림을 합법적으로 싹쓸이하고 폐지를 전혀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UNEP(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의 간행물 뒷편에는 문국현이 CEO로 있던 '유한 킴벌리'의 광고가 실려 있다. 이러한 식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지만 티슈 제지회사들 대부분이 '나무 펄프의 원산지를 밝히는 의무'에서 100점 만점에 20점 이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http://www.unep.org/
 

저자는 버진펄프로 화장실 휴지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하자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종이소비를 줄이는 데 있어서 기업의 이니셔티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중 휴렛팩커드의 사례를 하나 들고 있다. 매달 500만대씩 수송되는 프린터의 포장 방법을 바꿨다는 것이다. '포장을 덜 하면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종이의 90%를 줄였고 파손율도 5% 줄였다는 것이다.

3장 세계의 종이산업
 

환경운동가들은 기업에 돈을 대는 금융권을 자기 편으로 끌여들이려고 노력을 한다.
 

이를 통해 적도 원칙(Equator Principles)이 만들어졌다.
2003년 6월부터 시작되었는데, 1,000만 달러 이상의 개발 프로젝트가 환경 파괴를 일으키거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자금을 대지 않겠다는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협약이다. 2006년 개정된 원칙은 더욱 강화되었다. 즉, 자문활동 단계부터 적도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2009년 현재 세계 68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한국 은행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일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스탠다드 차터스는 포함되어 있다.)
http://equator-principles.com/index.shtml

4장 얼마나 많은 나무로 종이를 만드나?

전 세계가 단 하루 동안 사용하는 종이를 생산하려면 1,20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제지산업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열대림과 온대림은 물론이고 아한대 지역에도 손길을 뻗치고 있다. 러시아,캐나다,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아한대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와 캐나다의 숲은 전 세계 숲의 26%,25%에 이른다고 한다. 이 숲이 종이 생산을 위한 벌목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아한대림의 숲은, 연중 8개월 동안 땅이 얼기 때문에 생장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고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아한대림의 숲을 깨끗하게 벌목할 경우, 이 숲이 자연적으로 회복되려면 자연히 열대림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자연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숲의 가치를 말할 때 경제적 가치가 높은 숲의 부산물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고사리나, 버섯, 또는 벌 양봉과 같은 다양한 부산물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생물종의 다양성이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를 숲의 경제적 가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92년 UNEP가 '산림 원칙'을 채택한 후 세계자연보호기금, 그린피스, 지구의 친구 등이 93년에 산림관리협의회(FSC)를 만들었다. 10개의 원칙 등을 만들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산림관리인증서를 발급한다. 이 산림의 임산물에 FSC 로고를 부착할 수 있다고 한다.

5장 벌목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소비자들은 어느 숲에서 벤 나무를 사용해 어떤 종이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원시림으로 종이를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제지산업은 그동안 원시림을 모두베기하고, 원주민의 전통적 땅을 인정하지 않고 생태학적 가치가 없는 나무농장을 세웠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산림관리가 이루어진 것을 공표하는 인증마크를 제품에 부착해 왔다. 한마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너무나 심해서 문제다.

사람들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종이도 동시에 소비하게 된다. 말하자면 간접적으로 원시림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상품을 선택하지 상품의 원료를 선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Markets Initiative가 바로 이러한 기업의 역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출판사들은 환경단체와 이해관계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만큼 진보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MI는 출판사들과 인쇄소들에게 원시림에 친화적인 종이 소비를 위해 , 재생지 사용, FSC 인증한 종이, 종이사용의 효율성을 높일 것, 염소 화합물로 표백하지 않은 종이 사용을 권장한다고 한다.

FSC는 경제회의와 삼림보호운동을 대표하는 환경회의, 원주민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회의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한계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딱히 대안은 없다.

캐나다에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재생지로 찍기로 결정했다. 캐나다 출판사인 레인코스트 북스사는 MI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저자들을 모아 벌목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은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생지 사용을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장 나무농장은 숲이 아니다.

나무농장은 생물다양성을 파괴한다. 또한 '타감작용'을 통해 다른 종의 생장을 가로막는다. 또한 단일수종이기 때문에 비료와 제초제 등을 다량 사용하고, 주변 지역이 오염된다.

숲보호 운동가 사이에서는 나무농장에 대해 근본적인 반대파와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온건파간 대립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무농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FSC는 유전자조작, 유전자공학 나무를 배제한다. 이러한 나무를 '프랑켄트리'라고 부른다. 환경보호 단체들은 유칼리나무 농장을 '녹색 사막'이라고 부른다. 농장들이 주변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199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지구에서 나무농장의 면적은 5배나 증가했다. 그 면적은 인도네시아보다 넓다.

7장 종이는 기후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에 따르면,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요인 가운데 첫 번째는 화석연료이고, 그 다음이 벌목으로 인한 산림 훼손이다. 숲의 벌목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발생량에서 17%를 차지. 이는 전 세계의 이동수단들이 내뿜는 양보다 많고, 식량 생산으로 발생하는 양과 비슷하다. 이중 절반은 제지산업의 책임이다.(205-206쪽)
 

제지산업은 지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고 있고, 기후 안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북반구의 아한대림을 열심히 벌목해 왔다.

숲에서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것은 나무 뿐 아니라 흙도 저장고 역할을 한다. 그런데 숲을 밀어내고 나무농장을 세우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에 속한다. 연간 배출량이 30억 톤에 달하며 이중의 80퍼센트는 산림 훼손 때문이다. 
 

제지산업은 벌목 뿐만 아니라 펄프와 종이를 생산하면서도 탄소를 배출한다. 제지산업은 중공업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축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종이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소각하면 종이에 함유되어 있는 이산화탄소가 전량배출되고, 썩을 경우 메탄이 발생한다.

복사지 한 장이 배출하는 탄소 양은 40와트 백열등이 한 시간 동안 배출하는 양과 같다.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1년 동안 소비하는 종이에서 배출되는 탄소 양은 대서양을 비행기로 왕복할 때 발생하는 양과 같다.

종이 1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강철 1톤을 만들 수 있다... 화학, 정유, 제철을 제외하면 제지산업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208쪽)
 

펄프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계적 방법과 화학적 방법이다. 화학적 방법은 펄프 1톤을 생산하려면 원목 3톤이 필요하다. 화학적 작업으로 생긴 찌꺼기는 소각하는데, 이 양이 워낙 많아 소각 에너지로 공장의 기계를 충분히 돌릴 수 있다. 나무 3그루 중 2그루는 펄프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벌목되는 셈. (209쪽)
 

처녀지가 생산되어 매릴될 때까지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재활용 종이에 비해 최대2.3배나 많다. 재활용 종이 1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폐지가 1.1톤 필요하다. 하지만 처녀지 1톤을 만들려면 나무 3톤이 필요하다. 또한 종이를 잘 다루면 아홉번도 더 재활용할 수 있다. 보수적 보고서조차 다섯 번은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8장 종이는 천연 제품이 아니다?

종이는 화학공학의 산물이다. 크라프트 종이를 만들 때 어마어마한 악취가 난다.

처녀지 1톤을 생산하려면 4만 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종이 한 장에 머그컵 한 장, 책 한 권에 욕조 하나를 가득 채운 물이 필요하다. 펄프 제조과정에 화학약품과 첨가제가 들어가 사용한 물은 심각하게 오염된다.
 

하얀 종이를 만들 때 펄프를 표백하는데 염소로 보통 표백한다. 염소와 염소 화합물은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염소 화합물 중 하나는 다이옥신이다.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의 제지회사는 '무염소표백(ECF)를 홍보하지만, 염소 대신 과산화염소로 표백하는 것이다. 염소보다는 훨씬 안전하지만 여전히 우려할 만하다.
 

따라서 염소나 과산화염소가 아니라, 과산화수소로 염색하는 표백 기법(PCF, TCF)이 필요하다.

갈색 빵이 건강에 더 좋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소비자들도 하얀 종이를 꼭 써야 할 필요가 없으며, 표백을 하지 않을수록 종이가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폐지 재활용. 버진펄프로 골판지를 만들면 1톤당 독성 가스가 2킬로그램 이상 생성되지만, 재생펄프를 사용하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재활용하면 폐지를 매립하거나 소각할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도 줄일 수 있다.

9장 종이의 미래, 희망적인가?

종이 소비가 전 세계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 나무농장의 수가 더 늘어나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 제지산업이 대기업화되면서 업계의 연대도 강화되고 있고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있다.

'종이 절약'을 사회적 담론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이면지 사용하기 / 꼭 필요한 것만 출력하기 

-종이 서류 파일을 만드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종이 한 페이지에 글이 더 많이 들어가도록 크기와, 여백, 행간을 줄이자
-서류 복사할 때 정확히 몇 장이 필요한지 계산하고 출력
-한 번 쓴 봉투를 다시 쓰자
-온라인 뉴스를 보자
-포스트잇보다는 사용한 종이의 빈 여백이나 봉투를 오려 사용하자.
-뜯어보지 않고 버리는 우편물은 보내지 말라고 알리자
-티슈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고 키친타월 대신 행주를 사용하며, 냅킨을 사용하지 않는다.
-휴지는 이전보다 적게 쓰자.

한국의 종이 회수율은 75%이고 폐지 사용률은 74%로 매우 높다. 하지만 재생종이의 생산량 자체가 적고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중간 과정에서 선별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판지류나 화장지류로만 쓰인다고 한다.

복사지나 종이팩 같은 고급종이를 다른 종이와 별도로 분리수거하면 고급 재생종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식목일 전날인 4월4일은 '종이 안 쓰는 날 No Paper day' 

녹색연합-해리포터 7권 한국판 재생종이 출판. 복사지나 인쇄용지를 재생종이로 바꿈.

교과서를 재생종이로 바꾸자는 캠페인 

마침내 교과부는 2010년부터 중고등학교의 새 교과서와 지도서를 재생펄프를 30% 사용한 재생종이로 제작하고 공급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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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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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진중권 / <크로스> / 웅진지식하우스

 

정재승과 진중권이 쓴 <크로스>를 봤다.
필자들의 명성을 생각할 때 많은 독자들이 존재할 것 같은 책.
따라서 나는 간단하게 '생략'해도 될 법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읽었다.
 

'스타벅스','스티브 잡스','구글','제프리 쇼','헬로 키티','셀카','프라다' 등
나와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21개의 주제들이 나열되어 있고.
게다가 정과 진이 따로 나눠 썼기 때문에 독립된 유닛은 42개로 늘어난다. 

<스타벅스>편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다.  

스타벅스는 식품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변화시켰다...애플 사용자들은 컴퓨터의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출하는 데 민감하다...미래의 경제학은 점점 더 미학을 닮아간다.(18쪽) 

스타벅스는 '긍정의 심리학'을 십분 활용...가장 싼 것을 시키면서도 '톨tall'이라고 주문해야 한다. 더 큰 것들은 '그란데grande','벤티Venti' 같은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24쪽)
 

그런데 이러한 경제학의 '미학화', '심리학의 이용'은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생수의 판매전략에서도 나타난다. 

아마도 21세기 '생수'는 이제 '패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의 세련된 디자인을 보라. 어쩜 그렇게 마시고 싶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상류사회에 대한 '대리체험'이자 '자기과시 소비'의 아이템으로 '21세기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193쪽) 

사실, 볼빅이냐, 에비앙이냐 하는 서구의 말도 안되는 생수의 선택 갈등은 이제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고 있다. 롯데나 동원에서 나오는 생수보다는 삼다수나 석수가 더 나아 보이게 하는 효과.  

더 나아가 볼까? 

렘 콜하스는 뉴욕의 프라다 스토어의 천장에 유리 새장들을 설치..."특정한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의 종교로서 획득하게 된 기능"...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매장을 성 유물을 보관하던 중세의 성당과 비슷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신도들이 성당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았듯이, 현대의 신도들은 프라다 매장을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느낀다. (175쪽) 

하지만, 이러한 '상품미학'은 21세기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상품미학은 고유한 자본순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진정 새롭거나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과 가상, 실재와 이미지, 대상에의 동일성,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일 것이다. 

정재승과 진중권은 '세컨드 라이프'와 '제프리 쇼', '마이너리티 리포트','파울 클레', '구글'에서 이를 설명한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제프리 쇼가 보여준다면, 과학과 기술이 미학을 통합하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아트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에 대한 몰입감이 엄청나게 높아져 '인식 확장' 수준이 됐다...과학자가 예술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자가 되어간다는 사실.(84쪽,87쪽) 

학생들에게 나는 늘 영감을 일으키는 '기계적 절차'가 있다고 가르친다...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텍스트가 화면에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영감이다...무작위로 돌아가는 검색엔진의 멍청함이 외려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해 줄 수 있다.(48-49쪽)
 

유럽 베낭여행을 갔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뽕삐두 센터에서 열린 특별전 '소니 프로세스'였다. 즉 제프리 쇼와 같은 인터랙티브 아트였는데, 이러한 것을 처음 접했던 나는 어떤 나의 감각과 인식의 공간이 확장되는 점을 느꼈다. 

두 저자가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은 공유하지만 여러가지 차이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재승은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을 내놓는다. 과학계의 이슈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들의 최대 화두는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통해 인간의 행동, 언어적/비언적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자동적으로 정량화할까 하는 점. 이는 '셀카' 편에서도 언급되는데, 바로 야후 등이 기획하고 있는 거대한 '라이프로그 시스템Life log system의 개발이 문화기술학의 중요한 화두라는 점이다.

또한 정재승은 빅뱅이론에 맞서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설명한다. 초끈이론은 우주를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세계로 파악하는데, 21세기는 과학자들이 이 초끈 이론의 가설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고자 애쓰는 100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서양과 우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주 '구술문화'(한국)와 '문자문화'(서구)에 대한 적응성과 강조점의 차이가 서로 다른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위키피디아' 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문자문화의 합리성을 강화해야 할 시기에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구술매체가 등장함으로써, 감성과 정서가 과잉한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는 상황.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키피디아가...대중지성의 가장 강력한 발현 형태...(이러한) 부진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299쪽) 

(구글과 네이버를 비교하면서) 가장 큰 원인은 서구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이 정보적이라면, 한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은 친교적,오락적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그 대신 생활 밀착적 정보는 역시 네이버가 제일이다. 한국은 여전히 구술문화다.)(49쪽)


그 외에도 크로스는 관심없던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준다. 예를 들자면, 프라다의 부상에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좌파 페미니스트로서 프라다의 경영에 이러한 이념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명. 또는 구글 23andMe와 같이 구글이 바이오정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 야후의 라이프 로그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 정보통신회사들의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바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가 결코 희망차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굿나잇 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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