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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ㅣ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정재승+진중권 / <크로스> / 웅진지식하우스
정재승과 진중권이 쓴 <크로스>를 봤다.
필자들의 명성을 생각할 때 많은 독자들이 존재할 것 같은 책.
따라서 나는 간단하게 '생략'해도 될 법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읽었다.
'스타벅스','스티브 잡스','구글','제프리 쇼','헬로 키티','셀카','프라다' 등
나와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21개의 주제들이 나열되어 있고.
게다가 정과 진이 따로 나눠 썼기 때문에 독립된 유닛은 42개로 늘어난다.
<스타벅스>편에서 이러한 말이 나온다.
스타벅스는 식품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변화시켰다...애플 사용자들은 컴퓨터의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연출하는 데 민감하다...미래의 경제학은 점점 더 미학을 닮아간다.(18쪽)
스타벅스는 '긍정의 심리학'을 십분 활용...가장 싼 것을 시키면서도 '톨tall'이라고 주문해야 한다. 더 큰 것들은 '그란데grande','벤티Venti' 같은 이탈리아어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고...(24쪽)
그런데 이러한 경제학의 '미학화', '심리학의 이용'은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생수의 판매전략에서도 나타난다.
아마도 21세기 '생수'는 이제 '패션 아이콘'이 아닐까 싶다. ...의 세련된 디자인을 보라. 어쩜 그렇게 마시고 싶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상류사회에 대한 '대리체험'이자 '자기과시 소비'의 아이템으로 '21세기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193쪽)
사실, 볼빅이냐, 에비앙이냐 하는 서구의 말도 안되는 생수의 선택 갈등은 이제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연스러운 광경이 되고 있다. 롯데나 동원에서 나오는 생수보다는 삼다수나 석수가 더 나아 보이게 하는 효과.
더 나아가 볼까?
렘 콜하스는 뉴욕의 프라다 스토어의 천장에 유리 새장들을 설치..."특정한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의 종교로서 획득하게 된 기능"...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매장을 성 유물을 보관하던 중세의 성당과 비슷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신도들이 성당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았듯이, 현대의 신도들은 프라다 매장을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느낀다. (175쪽)
하지만, 이러한 '상품미학'은 21세기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상품미학은 고유한 자본순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진정 새롭거나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과 가상, 실재와 이미지, 대상에의 동일성,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일 것이다.
정재승과 진중권은 '세컨드 라이프'와 '제프리 쇼', '마이너리티 리포트','파울 클레', '구글'에서 이를 설명한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제프리 쇼가 보여준다면, 과학과 기술이 미학을 통합하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아트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미지에 대한 몰입감이 엄청나게 높아져 '인식 확장' 수준이 됐다...과학자가 예술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과학자가 되어간다는 사실.(84쪽,87쪽)
학생들에게 나는 늘 영감을 일으키는 '기계적 절차'가 있다고 가르친다...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텍스트가 화면에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영감이다...무작위로 돌아가는 검색엔진의 멍청함이 외려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해 줄 수 있다.(48-49쪽)
유럽 베낭여행을 갔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뽕삐두 센터에서 열린 특별전 '소니 프로세스'였다. 즉 제프리 쇼와 같은 인터랙티브 아트였는데, 이러한 것을 처음 접했던 나는 어떤 나의 감각과 인식의 공간이 확장되는 점을 느꼈다.
두 저자가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은 공유하지만 여러가지 차이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재승은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을 내놓는다. 과학계의 이슈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들의 최대 화두는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통해 인간의 행동, 언어적/비언적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자동적으로 정량화할까 하는 점. 이는 '셀카' 편에서도 언급되는데, 바로 야후 등이 기획하고 있는 거대한 '라이프로그 시스템Life log system의 개발이 문화기술학의 중요한 화두라는 점이다.
또한 정재승은 빅뱅이론에 맞서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설명한다. 초끈이론은 우주를 영원히 성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세계로 파악하는데, 21세기는 과학자들이 이 초끈 이론의 가설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고자 애쓰는 100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서양과 우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주 '구술문화'(한국)와 '문자문화'(서구)에 대한 적응성과 강조점의 차이가 서로 다른 사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위키피디아' 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문자문화의 합리성을 강화해야 할 시기에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구술매체가 등장함으로써, 감성과 정서가 과잉한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는 상황.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키피디아가...대중지성의 가장 강력한 발현 형태...(이러한) 부진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299쪽)
(구글과 네이버를 비교하면서) 가장 큰 원인은 서구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이 정보적이라면, 한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은 친교적,오락적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그 대신 생활 밀착적 정보는 역시 네이버가 제일이다. 한국은 여전히 구술문화다.)(49쪽)
그 외에도 크로스는 관심없던 분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준다. 예를 들자면, 프라다의 부상에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좌파 페미니스트로서 프라다의 경영에 이러한 이념의 흔적을 남겼다는 설명. 또는 구글 23andMe와 같이 구글이 바이오정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 야후의 라이프 로그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 정보통신회사들의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바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미래가 결코 희망차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굿나잇 앤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