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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 - 신경림 시인이 가려 뽑은 인간적으로 좋은 글
최인호.김수환.법정.손석희.이해인 외 34명 지음, 신경림 엮음 / 책읽는섬 / 2017년 4월
평점 :
서정주를 키운 8할이 바람이라면, 나를 키운건 8할까지는 아니지만 5할이 책이였다. 나의 20대와 지금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녔는데, 오후에 출근하면 10시 넘어 퇴근한다. 집에 가면 밤에 막상 잠이 안온다. 긴 밤을 나는 책과 함께 했다. 나는 어느 산사에서 노루와 들짐승과 본인도 넉넉하지 않는 저녁을 같이 나눠 먹는 모습을 보면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어느 날은 지구 반대편 작은 마을 신발도 없는 소녀가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에 가슴 시리고, 때론 창의적인 발상에 무릎을 치며 쾌감을 느끼고, 죽음을 앞둔 작가의 일상을 옅보며 삶에 대해 돌아보고, 또 어느 밤은 먹먹함으로 물드는 시에 젖었다. 이렇게 나와 함께 했던 작가들을 이 '뭉클' 책에서 다시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풍을 갔다온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고싶은 던 분들 만나서 그 동안의 만나지 못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류시화, 정, 김수환, 이해인, 이중섭, 최인호, 이어령, 김기림, 신영복 등 내가 평소 존경했던 분들의 글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 작고한 분들의 글이 많아서 더 반가웠다. 지금은 별이되서 다시 새로운 글을 접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분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사실 낯선 작가분들도 있었지만 수필이라 그런지 편안하게 다가왔고, 다양한 분들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서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이였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신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쓴 글인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있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릴려고 글도 모르는 어머니는 일본으로 달려갔고, 만주로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그 먼 길을 여러번 갔던 어머니의 크고 위대한 사랑을 보고 가슴 찡한 울림을 느끼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된 삶속에서 억척같이 여러 자식들을 키우고 자식들에 대한 큰 사랑과 엄한 교육으로 훌륭한 성직자를 둘이나 길러낸 어머니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숙연해졌다.
거미를 닮았다는 류시화 시인은 정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다. 정원이라고 하면 잘 관리된 나무와 꽃이 떠오른다. 정원에 거미줄이 있다면 방치된 기분이 들고, 주인은 왜 관리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류시화는 그런 정원은 오히려 죽은 곳이라고 했다. 정원에는 이름 모를 풀과 벌레들이 있어야 새도 날아오고 진짜 자연이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묘하게 공감되었다.
신발은 우리가 늘 신고 다녀서 신발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해본 적이 없고, 공기처럼 보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있어서 특히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이해인 수녀님은 신발을 보면 매일 새롭게 살아가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죽어간 사람이 이 신발을 얼마나 신어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면 이 신발을 신게 해준 날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기뻐하라고 한다. 어제 책을 다 읽고 나서, 외출하려고 나가다가 신발을 한참동안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이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새로운 날을 선물처럼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해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