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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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단순히 배출하는 용도로만 쓰였던 익숙한 '변기'가 미술작품으로 전시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바이올린'을 애완용 강아지 처럼 길에서 끌고 다니는 백남준의 포퍼먼스를 봤을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익숙한 것을 비틀어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고, 놀라움을 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현된다. 구병모의 빨간구두당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었을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항상 아름답고 권선징악의 교훈이 느껴지는 동화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잔인한 처형, 가진자들의 만행과 갑질, 피바람, 성상납 등 잔인하고 끔찍하고 때론 소름이 끼치는 기이한 동화로 재탄생 시켰다.
 
그렇다고해서 빨간구두당이 성냥팔이 소녀, 마법사과, 개구리 왕 또는 강철의 하인리히, 빨간 구두 등의 동화를 어둡고 잔인한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이야기를 재편성해서 썼다기 보다는 여러 동화나 민담 등이 혼재되고, 기본틀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꿔서 보고, 사회의 부조리나 우리사회의 구조의 문제점, 악의 순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착취를 하는지 등 날카로운 시선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문학에 잘 녹여서 독자들에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놀라운 힘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이 하나 더 있다. 표현력이 너무 뛰어나서 생생하게 묘사되서 책을 보는 동안 영상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고, 구병모 작가님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통통 튀는 작품이였다.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도 있고, 강렬한 색에 압도되는 글도 있고, 음산하고 우울한 글도 있는 독특한 색깔이 있는 책이였다. 그리고, 분명히 아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했고, 여러 이야기가 묘하게 섞여서 원래 하나의 스토리인 것 처럼 보이는 글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화갑소녀전'이였다. 권력을 가진자들의 만행을 봤다. 작은 권력자부터 큰 권력을 갖은 자까지 하는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계급의 문제점을 생각 하게되었고, 갑들의 행태와 을의 선택권 없는 상황이 씁슬하고 화가났다. '기슭과 노수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였다. 인간의 삶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삶은 이쪽 강에서 저쪽 강으로 왔다갔다 하는 강의 배와 수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포스가 매일 높은 산으로 바위를 밀어올리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과 같이 매일 되풀이되는 무한반복이 인간의 삶이다. 처음에는 자연의 이치 또는 절대자 앞에 인간은 작은 존재이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수부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그냥 안하고 쉬고 놀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반항적인 행동 일 수 있고, 큰 힘 앞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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