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누에고치고 뽕이니, 나에게서 비단실을 뽑아내라"
p.48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 이 말은 암 투병중인 이어령 교수가 인터뷰를 하는 김지수 기자에게 한 말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노 교수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어령 교수님의 『젊음의 탄생』,『지성에서 영성으로』,『생각 』등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음도 많이 얻기도 하고, 가슴이 뛰는 경험도 했던지라 이어령 교수님의 말, 글이 기대가 되면서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시렸다.
이 책에 매주 화요일마다 이어령 교수와 김지수 기자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담았다. 인생, 삶, 죽음, 신념, 도덕, 용서, 돈, 선의, 눈물 등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이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머리를 맴도는 말들이 많다.
"정오가 지나면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생긴다네. 상승과 하락의 숨 막히는 리미트지. 나는 알았던 거야. 생의 절정이 죽음이라는 걸. 그게 대낮이라는 걸."
p.55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p.176
사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이 있으면 페이지를 적었다가 책을 다 읽고, 덮기 전에 다시 한번 보는데, 이 책의 좋은 구절은 다음에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좋은 구절이 있는 곳을 접어서 표시를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접어둔 곳이 많았다. 책을 읽고나서 여운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긴 여운을 남겼다.
특히, 화문석과 무문석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강화도의 특산물인 화문석은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서 짜는 고기술이 사용되는거라 무늬가 없는 무문석보다 당연히 더 비쌀 것 같은데, 무문석이 더 비싼데, 이유가 단순해서 단순한 것을 계속 반복해서 짜는 것이 더 고역이라서 비싸다는 것이다. 무늬를 넣을 때는 기대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신이 나서 짠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인생도 같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진짜 많이 공감이 갔다.
나도 일하면서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할 때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고 좋겠다고 말하는데, 나도 새로운 것을 기획할 때가 좋다. 밤 늦게까지 끙끙거리면서 일하지만 뭔가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도 들고, 몸은 힘들지만 신나고, 설레고, 생기가 생긴다. 몸이 힘들어서 편한 일을 하면, 다시 힘든 것을 찾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상, 윤동주, 보들레르, 루소, 소크라테스, 도스토옙스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수학, 철학, 문학, 윤리학, 심리학이 다 섞이고, 버무려져서 나온다. 둘의 대화를 보면서 둘이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수 기자님은 인터뷰를 많이 해서 인지 물 흐르듯한 진행이 돋보였다. 교수님도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시고, 기자님이 교수님의 설명에 더 덮붙이기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이야기를 노련하게 풀어가서 편하게 읽었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말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p.17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있어서 인지, 책을 읽기 전에는 마음이 불편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것,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그의 말과 글이 있는 한 이어령은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