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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의 돌파
MURIEL JAMES / 한국교류분석협회(정암서원) / 1993년 7월
평점 :
품절
▶ 무슨 내용인가?
이 책은 에릭 번의 교류분석이론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론서라기보단 실전서(?)에 가깝다. 제목 그대로 붙여 말하자면, '자유로 돌파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에 대한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로의 돌파', 여기서 '자유'는 무슨 뜻일까? 이 질문의 전제는 그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자유'라고 하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선 '구속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걸까? 외부인가, 내부인가? 여기선 내부로부터의 자유에 주목한다. 외부로부터 완전히 구속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부로부터는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구속된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그들 자신에게 구속된 채 산다. 그리고 그렇게 구속된 삶의 방식을 전수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의 부모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며 수많은 메시지를 주는데, 그 중 일부는 잔인하다. '~를 하지 마라'라는 형태의 메시지와 '~를 하라'라는 형태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를 하지 마라'라는 메시지: ① 존재하지 마라(넌 필요없다), ② 남자/여자로 살지 마라(난 딸/아들을 원한다), ③ 가까이 하지 마라(넌 귀찮다), ④ 소속하지 마라(네겐 별 관심없다), ⑤ 성장하지 마라(내게 복종하길 원한다), ⑥ 아이가 되지 마라(넌 유치하다), ⑦ 건강하지 마라(내게 복종하면 돌봐준다), ⑧ 제정신으로 있지 마라(네가 머리 쓰면 내 말의 모순을 알아챈다), ⑨ 성공하지 마라(네가 나보다 잘나면 창피하다), ⑩ 중요해지지 마라(너보다 다른 것/사람이 더 중요하다)
'~를 하라'라는 메시지: ① 열심히 노력하라(넌 게으르다), ② 완벽하게 하라(넌 모자라다), ③ 빨리 하라(넌 느리다), ④ 부모를 즐겁게 하라(넌 시키는 대로 안 한다), ⑤ 강한 사람이 되라(넌 감정적이다)
말이나 글 등의 언어적 형태로 전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표정이나 손짓 등의 비언어적 형태로 전달된다. 저런 메시지를 많이 받은 자녀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부정) 극복할 생각조차 안 하거나(포기) 극복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 하거나(계속 애쓰는 상태) 실패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 했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한다. 어렸을 때의 느낌, 생각, 행동에 '구속'되는 것이다. 마치 나무 말뚝을 못 뽑은 새끼 코끼리가 커서도 뽑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에게 구속되지 않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가 그런 부정적 메시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메시지를 제거할까?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긍정적 메시지로 대체하면 어떨까? 그런데 누가 긍정적 메시지를 줄까?
자기 자신이 스스로 긍정적 메시지를 주는 건 어떨까?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부모가 되는 것이다. 단, 좋은 부모다. 좋은 부모란, 자녀에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포용력 있는 존재다. 왜 그런 부모가 필요할까?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 모험은 실패할 가능성도 있고, 부모에게 반항적인 자녀로 보일 수도 있다. 자기 안의 어린이가 두려워할 때 '해도 괜찮다'고 허가해주는 자기 안의 부모가 필요한 것이다.
▶ 평가: 5점 만점에 2.5점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전문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류분석이론에서 가장 기초지식인 '자아상태'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이다. 4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되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장점은 내용이 자세하다는 점이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교류분석이론에 대한 책들을 보면, 책 중간이나 뒤쪽에 이론을 실제에 적용해보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몇 페이지밖에 안 되는데, 이 책은 그 내용 위주로 다룬 것이다. 거의 270페이지에 달하니 얼마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지 읽기 전까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각 소단원마다 사례가 있어서 보다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장점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번역상 문제다. 오탈자도 있고 어색한 번역도 있고, 심지어 문법 오류도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데, 내용을 이해하느라 그 흐름이 자꾸 끊겨버린다. 읽으면서 앞뒤 문맥에 맞게 문장을 고치는 작업이 필요한데, 교류분석이론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두 번째 단점은, 누락된 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사례가 나온 페이지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내용이 좋음에도 별점을 많이 줄 수 없었다. 차라리 번역이 잘 된 전문서적을 권하고 싶다.
▶ 개인적인 생각
다 좋은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안 든 내용이 있다.
영성에 대한 것으로, 종교성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 저자가 좀 논리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뒷부분에서 '영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성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영적 파워는 무시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말의 전제는 '영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두 문장을 연속으로 읽은 순간, 저자가 '영성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영적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영성이 있다'는 근거로 '고대부터 영성을 믿었다'는 내용을 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객관성을 잃었다고 본다.
이 부분은 개인차가 심한 영역이기에, 독자 나름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