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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2 (반양장) - 사랑과 진정한 자립에 대한 아들러의 가르침 ㅣ 미움받을 용기 2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편은 추상적인 반면, 2편은 보다 구체적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나도, 1편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1편만 읽었을 때보다, 내 자신과 가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했다.
당신의 '지금'이 과거를 결정한다: 인간은 과거에 일어난 방대한 사건 중에 지금의 '목적'에 합치되는 사건만을 골라서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으로 삼는다.
사람은 특정 기억을 지울 수 있을뿐만 아니라 강화할 수도 있고, 심지어 없는 기억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이것을 오기억(false memory)이라 한다. 나도 내 '목적'에 맞게 기억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내 부모님과 관련된 기억들 중, 내 동생은 기억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 동생도, 나에 대한 기억 중 좋은 기억은 지웠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의 억압기억(repressed memory)으로 이것을 해석하기엔 불충분할지도 모른다.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이 되는가. 그렇다면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문제행동의 '목적'을 파악하라
1단계: '착한 사람'을 연기한다. 그저 '칭찬 받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2단계: '칭찬받지 않아도 되니까 주목을 끌자'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못된 사람'으로서 특별해지려고 한다.
3단계: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하고 싸움을 걸거나, '불복종'을 통해 권력투쟁에 나선다.
4단계: 일단 물러난 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증오해서라도 나에게 주목해다오'라고 생각한다. '못된 짓'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가 싫어하는 짓'으로 복수한다.
5단계: 인생에 절망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한다고 믿게 된다. 누가 봐도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하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져서 간단한 것도 하려 하지 않는다. '나를 포기해'라는 뜻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특정 사건을 떠올렸다. 이민 간 큰고모 가족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아버지, 나, 내 동생 그리고 큰고모의 아들 등과 식사를 했다. 우리와 그 애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고, 아버지는 우리를 이렇게 소개하셨다:
"또라이가 뭔지 아나~? 돌+아이. 머리가 돌이란 뜻이야. 영어로 stone head. 영어 잘 하지? 외국에 사니까. 우리 애들이 그래. (한 명씩 손가락질하며) 얘~네들이 또라이야. 크하하하!!"
나와 내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전에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기에, '또라이'라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얘도 같은 생각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그 애를 힐끗 쳐다보았다. 내 예상과 달리, 그 애는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누구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니신 것 같았다 --그것은 '회피'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내 동생은 아버지가 내린 정의('너는 또라이다')를 증명하듯 그 애 앞에서 '또라이짓'을 했다. 아버지는 비웃으셨다. "제정신이 아니구만~?"
아버지의 그 반응으로, '너는 또라이다=너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동생 나름대로 특별해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몇 년 후엔 내가 그 공식을 성립시켰다.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었던 친구를 향해.
3단계부터는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 4단계에 있던 나는, 상담 후에 급속도로 5단계로 직행했다. '쟤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나에 대한 부모님의 행동을 실감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나조차도 나를 포기했고, 자살을 시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내가 받은 것은 상담이 아니라 과외였다. 내가 다닌 곳은 '상담소'라는 간판을 단 과외학원이나 다름없었다. 상담료의 대부분은 과외비로 지출되었고, 상담소에 있던 시간의 대부분은 과외받는 데 할애했다. 그런 상담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변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아들러가 되살아나서 상담해준다 해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이렇게 되도록 내가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소극적이든 수동적이든 간에 내가 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지금껏 잘못 선택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 한 번 선택해 봤는데, 두 번 선택을 못 하겠는가. 결국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야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 평생을 같이 산 어르신이 돌아가셨는 데도, 내가 전혀 울지 않아서 놀라신 듯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당신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에 대해 얘기하셨다. 당신의 어린 시절(친할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고, 그러니 '네가 이해하라'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했다. 첫째, 그 동안 방목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방임하셨다는 것, 둘째, 방임하셨다는 걸 아신다는 것, 셋째,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 어머니마저 방치하셨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 넷째, 그 말씀은 용서가 아니라 면죄부를 요구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가장 착한 사람, 좋은 아버지'라고 기만하시는 모습이 역겹기까지 했다.
아버지에게 친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었던 것처럼, 내겐 부모님이 '나쁜 사람들'이었다. 내 동생에게 나는 '나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 어머니에게도 '불행한 어린 시절'이란 극본이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가 어린 시절의 비극을 들먹이며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셨듯, 나 역시 그랬다. 끊임없이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님 탓이야'라고 생각하며 방에 틀어박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러고는,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들러가 강조한 '용기'를 가지고.
용기를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너무 두려웠다. 내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 뛰어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 우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것. 그렇게 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나쁜 그 사람, 불쌍한 나'라는 생각은 나를 내가 만들어 낸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경험에다 내 목적에 맞는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한다. 아버지는 분명 변하셨다. 비록, 당신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울어주길 바라시는 것'이라 할지라도. 늙은 당신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당신을 돕도록 하기 위해 이해를 강요하신다 할지라도. 예전의 아버지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들먹이며, 그런 변화의 의미를 내게 맞게 조작했다. 아버지와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는 그대로이시다. 한결 같이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시지만, 한결 같이 우리를 챙겨주신다. 우리의 과제에 개입하시는 셈이지만, 그마저도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위다. 나는 그 동안 내가 싫어하는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서.
내 동생은 어떤가. 솔직히 내 동생에겐 '나쁜 너'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내 동생은 '나쁜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내가 내 부모님과 떨어지고 싶어하듯, 내 동생도 그러한가. 아니다. 그 동안 나와 가까워지려고 많이 노력해 왔다는 것을 간과했다. 동생만 간직하는 어떤 죄책감 때문일 수 있다 하더라도. 동생은 '나쁜 너'일 수 있는 내게 용기를 내었는데, 내게 용기내면 안 되는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나쁜 그 사람, 불쌍한 나'는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임을 인정한다. 인정해야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만 비로소 변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그 과제를 수행 중이다. 여전히 용기를 가지고. 지금도 극복하지 못 했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게 없는 하루하루가 시련'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동생의 문제행동은, 내 가족의 문제가 곪아 터질 대로 곪아버렸다는 증거였다. 내 동생의 문제행동은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족관계를 '먹이 연쇄'로 놓고 보자면, 내 동생은 그 아래에 피식자가 존재하지 않는 가장 힘 없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나처럼 행동하면, 나처럼 된다는 것을. 눈밖에 나지 않게 조용히 문제행동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 했다. (그리고 현재, 부모님은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여 '동생의 과제'에 지나치게 개입하신 상태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은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조치를 취하셨다: 나를 심리상담소에 강제로 다니게 하는 것. 내게 한 번도 외식하자고 하신 적이 없던 어머니가, 외식하자고 데려가신 곳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심리상담소였다 --결국 외식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 대한 분노를 심리상담사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아버지께 '쟤 제정신이 아니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하셨다. 그뿐이었나. 어느 날, 나갔다 들어 오니 내 방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 역시 어머니의 조치였다.
그때부터 내가 '변할 용기'를 낼 때까지, 나는 유령이었다. 나는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 없었고, 죽은 사람처럼 느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정말로 부모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꼈다. 죽는 것도 무섭고, 내 목숨도 아까웠지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죽었다는 느낌과 죽었다는 사실을 일치시키기 위해 약을 먹었다.
나중에 가족관계학에 대해 공부했을 때, 그 일이 생각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혼자만 상담받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말했듯, 내 문제행동은 가족 문제가 표면으로 나온 것이었다. 상담소에서의 나는 '정상인'이었지만, 집에서의 나는 여전히 '구제불능'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후에야, "이제야 쟤가 사람됐네."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 상담사가 '처방'한 조치는 오직 내게만 통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유효한. 그렇다면, 내 가족만 치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니다.
내 부모님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가족이다. 우리는 내 아버지와 고모들, 내 어머니와 삼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제행동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내 친척들까지도 상담받지 않는다면, 나만 상담 받았던 때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겐 문제가 없다. 네가 문제다'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그 얄팍한 심리학 지식을 들이대며, 우리--피고용인들까지도--가 정신병자라는 걸 반복해서 증명하려 하셨던 모습을. 백지에 '프로이트의 빙산'을 그리시면서 말이다.
공동체 치료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해서 기존의 문제가 이어지는 것을 막으라는 뜻인 걸까. 나라도, 나부터 변해서 그 연쇄를 끊으라는. 그게 아니라면, 변한 내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나도 변해야겠다'고 깨닫는다는 걸까.
'신용할 것인가, 신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게 아주 어렵다. 생판 남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내 가족조차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도, 내 동생도 진심으로 서로를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신뢰라는 가면을 쓰고 신용하시고, 어머니는 신용을 신뢰라고 생각하시며, 내 동생은 신용만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떤가. 나는 신용도 하지 않는다.
믿지 않기로 선택한 지 오래되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들러에게 묻는다면, 아들러는 '믿음으로써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상처받는 것에 지쳐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상처를 치료하는 데 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느니, 아예 상처받지 않기로 하는 것이 속 편하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기로 하는 것은 예전의 삶을 다시 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방에 틀어박히는 것, 유령으로 사는 것이 내가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닌가. 그렇다면, 상처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방에서 나온 이상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니까.
신용할 것인가, 신뢰할 것인가. 다시 묻는다. 여전히 망설인다. 믿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신뢰는 무리라고. 그렇다면, 신용이 최선인가. 무조건 믿는 게 어려운 이유는 배신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실은, 내가 배신 당하는 게 아니라 배신 당했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배신감 때문에 아무도 믿지 못 하는 것, '믿어야지' 하면서도 '믿을 수 있나'라는 생각에 신경쓰는 것.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배신'감'은 누군가를 믿는 대가로 지출하기엔 비용이 너무 큰 조건이다. 이젠, 신용은 차선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내 가족이 나를 믿지 않는 이유는, 내가 가족의 믿음을 얻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렇더라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겠다. 그건 내가 가족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니까. 내가 먼저 가족을 믿어야 한다, 설령 가족 또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믿지 않는다 해도. 내가 먼저 믿지 않으면, '가족이 나를 믿을'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 텐데, 어떻게 나를 선뜻 믿겠는가.
내가 가족을 믿기 위해서는 존경해야 한다. 또 망설인다. 당신의 안위를 위해 내 '일의 과제'를 침범한 아버지를 존경해야 한다니, '널 지우려 했는데 근처에 병원이 없어서 못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어머니를 존경해야 한다니, 가족을 자꾸 속이고도 적반하장 격인 동생을 존경해야 한다니. 또 온갖 감정들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한다. 이때 내 안의 아들러가 말한다. '그 목적은 가족을 존경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내가 가족을 존경하지 않듯, 가족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내가 가족을 존경하지 않는데, 가족이 나를 존경해 주겠는가. 내가 먼저 가족을 존경해야 한다, 설령 가족이 끝까지 나를 존경해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존경받기 위함이 아닌 존경하기 위해 사는 것을, 신뢰받기 위함이 아닌 신뢰하기 위해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존경, 신뢰, 그리고 사랑. 신뢰는 존경보다 어렵고, 사랑은 신뢰보다 어렵다고 했다.
이것도 존경, 신뢰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겠다.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그러나 사랑받기 위한 삶을 살지는 않겠다. 설령 사랑받지 못 하더라도, 나는 사랑하기 위한 삶을 선택하겠다. 이별을 전제로 하는 모든 관계의 끝을 '최선의 이별'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현재 맺고 있는 관계는 물론 앞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기존의 오래된 방식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만들겠다. 에릭 번은, 그것을 재결단(redecision)이라 하였다.
저자는 철학자의 말을 빌려, '아들러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지 말고 갱신하라'고 하였다.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왜 내가 알고 있던 아들러 심리학과 내용이 달랐는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역시 다른 사람의 '필터'를 거쳤다는 것을.
아들러 심리학의 '용기 부여'라는 개념은, '무조건적 격려'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한 번이라도 부모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배운 무조건적 격려는, 아들러가 하지 말라던 '칭찬하기'였다.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조차 칭찬하기 기술(?)을 쓰셨다. 그게 정말로 칭찬이었다면 일단은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칭찬할 것은 없지만 칭찬해서 나쁠 것 없으니까 아무 거나 좋아 보이는 것을 칭찬해 주는 식'이었기에 역효과가 났다.
에릭 번이 주창한 교류분석이론은 아들러 심리학과 일부분을 공유한다. 사실, 교류분석이론은 단일이론이 아니라 여러 이론의 장점들을 섞어 모아 놓은 것이다. 교류분석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뜬구름 잡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랄까.
내가 아는 바로는, 프로이트 이론이 우리에게 '왜 낚시를 못 했는지' 알려준다면, 아들러 심리학은 '왜 낚시를 안 하는지, 왜 낚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교류분석이론은 '무엇을 어떻게 낚시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에릭 번은 뜬구름 잡는 심리학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효율적으로 보이긴 해도 단점은 있다.
그 지침이 체크리스트 형식 비슷한데, 마치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족집게 핵심을 달달 외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는 경우도 생긴다. 내 경험상, 특히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아 온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정확히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 하는 것이다.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무슨 뜻인지 알려줘서 이해할 수 있게 해야겠지만, 거기엔 필연적으로 내 해석이 개입된다. 의존성이 강한 사람에겐 내 해석이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체크리스트가, 아틀러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자립'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류분석이론에 비해 아들러 심리학은 상당히 막연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 자체로 좋다고 생각한다. 길이 사방으로 무한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니까. 직선길이든 돌아가는 길이든,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다 좋다는 게 좋다. 인생사는 법이 체크리스트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답답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게 불안하지 않은가. 체크리스트에 없는 인생은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용기를 잃은 어른들, 용기 낼 용기가 부족한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린 이미 늦었어. 나이가 이만큼 먹었는데, 이제 와서 뭐가 바뀌겠어."
만약 아들러가 그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변하고 싶지 않아서 나이 탓을 한다'고 할 것이다. 나는 거기에 덧붙이고 싶다. '나이가 먹은 만큼 변하기 쉽다'고.
당신은 더 이상 어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아이가 아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부모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것을 걱정해야 할 아이가 아니다. 만약 당신에게 경제력이 있다면, 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부모 도움 없이도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당신의 상황은, 부모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아이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이다.
여전히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변해야 해. 하지만 무서워. ...... 이젠 변해야 해. 그래도 무서워. ......
이렇게 살기 싫어. 변해야 해. 하지만 무서워. ......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싫어. 변해야 하는데 너무 자신이 없어. ......
변해야 해. 변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테니까. 그래도 여전히 자신 없어. ......
변해야 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잖아. 자신은 없지만 일단 해보자. ......
해보니까 되네? 될 줄 몰랐는데 되네? 이젠 괜찮아. 더 할 수 있을 거야. 계속 해보자. ......
당신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