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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근육통, Fibromyalgia - 예방과 자기치유를 선택이론으로 ㅣ 생활심리시리즈 29
윌리암 글라써 지음, 박은미 외 옮김 / 한국심리상담연구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심하지는 않지만 한 달 넘게 지속되는 무릎 통증 때문에 재활의학과에 간 적이 있었다. 간 김에 어깨와 등 통증에 대해서도 얘기했더니, 의사선생님께서 몇 가지 약(신경통제제, 근이완제, 진통소염제, 위장보호제)을 처방해 주셨다.
그 동안 온갖 진통제와 근이완제를 먹었어도 효과가 없었기에, 솔직히 말해서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단 두 번 복용만에 통증이 거의 없어지는 게 아닌가.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 동안 통증 때문에 워낙 고생했던 터라 참고 먹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부작용이 심해지고 없던 증상도 생긴 탓에, 약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약이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알씩 제외하고 먹어 보았다: 한 알씩 먹어야 정확하지만 그렇게 해보기엔 약이 모자랐고, 약의 길항 작용이 원인일 수도 있기에 제외하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근이완제와 리XX라는 신경통제제가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리XX의 부작용은, 커피나 홍차를 마시고 나면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울혈성 심부전이 의심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카페인으로 부정맥 증상을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복용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큰일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XX가 무슨 약인지 알고도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약은 원래 뇌전증 치료제이며, 섬유근육통 치료에도 복용할 수 있도록 허가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뇌전증은 과거에 간질이라고 불렸던 질환으로, 우리에겐 뇌전증보다 간질이란 단어에 더 친숙할 것이다. 대체 섬유근육통이 뭐길래 항경련제가 효능이 있었던 것일까. 섬유근육통의 증상이 경련과 비슷해 보이는데--온몸이 뒤틀리고 찢어지고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을 느낀다, 혹시 원인이 (거의) 비슷한 질환인 것일까. 뇌전증은 한자로 腦電症이라 쓴다. 그대로 풀이하자면, 뇌(腦)의 전기 신호(電)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나는 증상(症)이다. 그렇다면 섬유근육통도 뇌의 문제로 나타나는 증상인 걸까.
내 예상이 맞았다. 어떤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섬유근육통도 뇌전증처럼 '폭발적 동기화'라는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폭발적 동기화'란 두뇌 속 신경세포들 간의 네트워크(동기화)가 불안정하여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한(폭발적) 반응을 보이는 현상으로, 원래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
특히 섬유근육통은 통증이 심할수록 폭발적 동기화를 잘 일으킨다고 한다. 즉, 폭발적 동기화가 통증을 강화하고 강화된 통증이 폭발적 동기화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통증이 심해지지 않도록 뇌의 전기 신호를 차단하거나, 폭발적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통증이 약할 때 약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섬유근육통 환자들은 진통제가 비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리XX는 GABA 작용 증가제제다. GABA(감마아미노산)는 Gamma Amino Butyric Acid의 약자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렇다면, 리XX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킴으로써 폭발적 동기화를 완화하는 약물인 게 아닐까.
내 호기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뇌전증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GABA 작용 증가제제가 뇌전증과 섬유근육통 둘 다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두 질환의 원인이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우선, 처방되는 약이 다르다. 그러나 여러 뇌전증 치료법 중 섬유근육통에 효과가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뇌전증은 선천적으로도 발생하지만, 대부분 후천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아주 어린 아이가 섬유근육통 증상을 보였다는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섬유근육통 환자의 대부분이 성인 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섬유근육통을 자가면역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 같다: 자가면역 질환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뇌전증은 대부분 약물치료를 하지만, 원인조차 제대로 모르는 섬유근육통에 뇌전증 약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수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남은 방법은 식이요법뿐이었다.
정식 명칭은 '케톤 생성 식이요법(이하 '케톤식이')'으로, 일명 'LCHF(약칭 '저탄고지') 다이어트'와 흡사하다. 다만, 뇌전증 환자의 뇌는 연료로 포도당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더 극단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한다. 뇌전증 환자의 식단을 보면, 얼마나 까다롭게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열량까지 제한해야 하니 그 힘듦은 배가 될 것이다.
섬유근육통 환자의 뇌도 포도당을 제대로 쓰지 못 한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뇌전증 환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케톤식이를 실천하고 있고, 그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얘기 역시 들은 적 없다.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케톤식이를 실천한 지 2주일이 지났다. 첫 주는 저혈당 증세로 좀 고생했다. 그러나 나는 중학생 때 --본의 아니게-- 케톤체 대사로 살았기에, 그 정도로는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참기 힘들면 과일주스를 물에 희석하여 조금씩 마시면 되었다.
케톤식이가 섬유근육통에도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다. 케톤식이를 시작한 이후로 잠을 자지 못 할 정도의 심한 통증을 느낀 적은 없다. 그렇다면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효과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케톤식이의 효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동안 섬유근육통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 받지 못 한 채 계속 고통스럽게 산 이유는, 섬유근육통의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섬유근육통의 증상은 류머티스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섬유근육통 환자들이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증세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하여, 많은 의사들은 그들에게 정신과 약물(항우울제)을 처방했다. 그 약이 효과적이었다면, 그 많은 섬유근육통 환자들은 통증을 없애고 지금쯤 편안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그렇지 않으니,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섬유근육통처럼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들이 많다. 그 증상들의 공통점은, 그 원인이 정신적 또는 심리적인 데에 있다는 것이다. '과민성', '신경성', '심인성' 등으로 시작하는 모든 증상들이 그렇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나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있는 데도,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태도는 불신감을 키웠다: 마치 정신병원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소화제 한 알 처방하는 게 그토록 거슬리는 일이었는가.
음대에 가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수 년을 그렇게 살다가 결국 피아노를 그만두었는데, 그러기 무섭게 증상이 사라졌다. 그 의사 말대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신체적 증상의 원인이 정신에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심인성인 게 거의 확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섬유근육통도 심인성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원인 불명의 증상 중에 심인성 질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원인 불명의 증상이 심인성 질환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른 섬유근육통 환자들과 공유하는 점이라고는 내가 '여자'라는 것밖에 없다. 나도 그들처럼 섬유근육통을 일으킬 만한 정신적 사건을 겪은 적은 있지만, 그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느끼기에 지난 세월 대부분을 제대로 살지 못 한 것 같다. 열이 40도 넘게 치솟아도, 영양실조로 누워 있는 데도 무관심으로 방치되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엔 힘들었을 것 같다. 그 긴 세월 자체가 섬유근육통의 원인이라고 해도, 그 증상이 왜 나이가 든 후에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일부는 아마도, 섬유근육통을 원인이 뚜렷한 다른 질병들과 같은 것으로 봐주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환자들--불치병 또는 난치병을 앓는-- 중 일부로서 위로를 받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몇 페이지만에 덮어버렸을 것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당신이 욕구 충족을 위해 섬유근육통으로 아픈 것을 선택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가. 아마,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미 말했듯, 섬유근육통의 원인은 제대로 알 수 없는 데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처럼 원인이 심리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섬유근육통의 원인이 뇌에 있다는 말을, '섬유근육통은 심인성 질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섬유근육통의 원인은 지금도 여전히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뇌 문제는 그저 수많은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섬유근육통이 '심인성이기도 하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면, 당신은 그때 아마 후회할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그토록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계속 피아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섬유근육통을 앓는 원인이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면, 당신은 이 책에서 해 보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 계속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제 정리해야겠다.
케톤식이의 효과일까, 아닐까. 나는 어쩌면 '위약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픈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아프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케톤식이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당신에게도 이 책에서 해보라는 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뭔가 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