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역사

태백산맥 1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차라리 통일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과반수가 넘는다는 요즘 시대에 우리의 분단 역사를 한번 곱씹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바로 태백산맥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사에서 그늘에 있었던 사람들의 입장을 차분하게 담아내려고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이 글을 지은 동기를 '잘못된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 역사를 쓰는데 있어 농민을 주체로 삼고 싶었다'고 말했다던 작가의 이야기처럼 작가의 역사관이 기존의 사관과는 다른 측면이 있어서 작가는 한때 법정시비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히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가지는 의미가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여순 반란 사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반란'으로 낙인찍혀 있는 역사적 사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주도 4.3 사건을 흘러서 한국전쟁까지 우리의 현대사를 장식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오늘의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을 배경으로 염상진, 김범우, 최대치, 염상구, 안창민, 등의 인물들의 생각과 삶을 그려간다.

사범대학을 다니면서 현실에 분노하고 좌익의 이데올로기를 택했던 염상진과 반대로 우익의 이데올로기를 택했던 염상구 두 형제의 비극은 우리 민족사가 안고 있는 커다란 비극을 함축하는 가족사이다. 염상진과 함께 천민의 자식으로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꿈꿨던 최대치. 지식인적인 모습으로 염상진과 함께 했던 안창민. 염상진과 함께 좌익을 꿈꾸다가 '민족'이라는 관념에 천착한 김범우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나라가 해방 직후에 처해있던 이데올로기의 혼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식인이 가지게 되는 고뇌, 역사를 만들어가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생각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해방 후의 우리 농민들의 열망과 이의 좌절,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고난과 여정을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우리 민족사의 한 맺힌 여정을 묵묵히 짚어낸다.

이들 여러 인물을 둘러싸고 그 당시 벌어졌던 미군정의 모습과 농민들의 생활, 위정자의 모습은 기존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을 인정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는 어쩌면 경직된 사회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특징적인 것은 심리와 의식에 관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좌익 이데올로기를 신념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의식지점에 대한 묘사를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사상 시비에 걸리기도 했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당시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이었던 농민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독자들에게 진실을 호소한다.

10권이라는 분량 때문에 읽는데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큰마음 먹고 한번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지. 한번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