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mila > 페기 구겐하임
얼마전 리처드 코니프의 '부자'를 읽다가 잠시 만났던 페기 구겐하임을 박파랑의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에서 다시 만났다.

여러번 결혼한 경력이 있는 페기 구겐하임에게 누군가가 '도대체 당신을 거쳐간 남편이 몇명입니까?' 하고 묻자, 그녀는 '내 남편을 말하는 겁니까, 남의 남편을 말하는 겁니까?'라고 댓구했다고 한다. '부자'에서 그 에피소드를 읽을 땐, 그냥 돈이 많아서 남자도 갈아치우고, 그림도 갈아치운 여자 (그러나 재치있는)려니 했는데...
근데, 박파랑의 책에서 알고보니 이 여자 정말 대단하다. 
자기의 안목과 소신으로 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살려낸 여자. 돈을 우습게 쓴 여자가 절대 아니었다. 보석이나 사고 구두나 사고 다녔다면 내가 '페기 구겐하임'이란 이름을 알 수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마냥 부러운 이 여자에게도 큰 불행이 있었다. 화가와의 사이에 낳은 딸이 스무살을 갓 넘어 요절한 것이다. (위 사진의 배경과 아래 그림이 그녀의 딸이 그린 그림이다. 오래 살았으면 모두가 기억하는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페기가 죽은 딸의 그림 앞에 남긴 메모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 메모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남자를 여럿 갈아치우지 않아도 좋고 역사적인 미술품 컬렉터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나의 자식들이 천수를 다하기만 한다면.

(페귄 베일, 1925-47 의 그림 앞에 페기 구겐하임이 남긴 메모)
내사랑 페귄.... 내겐 딸이요, 어머니요, 친구요, 또한 동생이기도 했던 그녀의 갑작스럽고 의문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절대적인 절망을 남겼다. 최고의 재능과 때묻지 않은 원시적인 화가였던 그녀는 이제 막 성공의 문턱에 들어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