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은 절집 - 근심 풀고 마음 놓는 호젓한 산사
심인보 글 사진 / 지안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싸군!!"

영풍에서 두툼한 이 책을 대면하고 처음 든 생각은 지극히 속된 것이었다.  "오호라, 오백쪽 가까운 올칼라책이 만오천원!! , 싸군!!" 친절한 알라딘씨는 천오백원 깎아주더라. 황송하다. 아래 분 말처럼, 본전 뽑겠다... 싶었다. 경건한 절집 두고 무슨 옆차기인가.

***

오늘 전철간에서 냉큼 두 절을 다녀왔다. 절이 스물하고도 다섯이니, 갈길이 멀다. 멀어서 더 좋다.쫌 미안한 마음도 들었댔다. 곱게 늙은 절들(대부분 숨어있나 보다) 다 찾아다니며 발품 팔고 사진 찍었으면(10년간 돌아다니셨단다) 길바닥에 뿌린 돈이 얼마일까?  이 책 덕에 정말 오랫만에 안복을 누리는 비용이 고작 만삼천오백원!  별다방 라테 두잔 값!!  또 황송하다. 

그런데 이 책, 참 배짱 두둑이다. 요즘처럼 가벼운 시대에, 만오천원 주고 산 책도 툴툴 털면 한 줌 밖에 안되는 부박한 책들이 대세인 요새, 이리 두텁게 책을 만들어서 많이 팔리길 기대하다니. 오기인가?

(근데, 알라딘씨 친구들은 주로 싼 책들 사시나? 이 책이 나름 베스트 7위라니. 약간은 의외라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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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곱다. 글도 곱고. 증명사진이 없어 모르겠지만, 글쓴이도 곱겠다. 이런 책 싸게 파는 출판사 맘씨도 그렇겠고.

글이 편하다. 산문부터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절집을 돌아다닌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어울린 사진들은 모두 완상의 풍경을 슬쩍 잡아챈 것들이다. 사진이 많아서인지 글이랑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절집 내부 위치도까지 그려서 실어주는 배려까지...

그리하여, 페이지를 오가며 지도를 들춰보는 약간의 수고를 하면. 글쓴의 뒤꿈치를 따라 절을 한바퀴 다 돌아본거 같은 가상체험이 가능해진다. 책의 글은 입심 좋은 보살님의 안내 멘트 같다. "요건 뭐고, 저건 뭔데, 누구는 이렇다고 하는데, 그런 말은 어려워서 난 모르겠고, 내 눈엔 그냥 이렇게 보이는데, 나만 좋으면 됐지 학삐리들 말 들어 뭣해요..... " 이런 환청이 들린다. (실험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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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속지 않는다. 아마 무지 공부께나 하셨을 폼새다. 설명이 편한 것은 그만큼 공부가 됐다는 뜻. 짐짓 모르는 척, 아는 척하지 않을 뿐. 속지 마시라.

난 제일 쓰기 어려운 글이 여행기라고 보는 사람이다. 아는 것도 많아야 되고, 눈도 깊어야 되니까. 그런데 요즘 여행서 참 많이 나온다. 싸이에나 올리면 그만인 잡글들을 굳이 책으로 내시는지... 자기만 파라다이스 갔다온 것처럼 젠체하진 마시거나, 아니면 요긴 뭐가 있고, 조긴 뭐가 있다고 훈수 두듯 가르치시지나 말던가... 여행 정말 다녀본 사람은 안다. 최고의 여행서는 <론리 플래닛>이란걸(이 책 한국편 함 보시라. 뻑간다. 지독한 넘들)

무릇, 여행기는 풍경 감상기도 아니고, 여행 정보서도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 모처럼 이 책을 보고 확인하는 중이다. 애정과 공력의 합체!  나도 진득하니 뭐 하나에 무한 애정과 무한 공력을 쏟아볼 일이다. (이 대목에서 약간 샘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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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냥 덮어두고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내 눈으로 보기 전에 쭈루룩 읽어버리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5곳 절집 위치를 일일이 넘겨보며 확인해봤다(지역을 따로 좀 정리해주시는 쎈스까지는 무리였을까?). 대부분 전라도와 경상도 언저리다. 따로 날 잡아야겠다. 만만한게 충남 서산에 있는 개심사다. 사진만 두루룩 봤다. 연못이 예쁘겠다. 휘어진 나무로 만든 대문도 멋지고.

주말에 디카 들고 혼자 휘리릭 다녀와야 겠다(예전엔 어디에 가는지보다 누구랑 가는지가 훨씬 중요했는데...) 나도 묵은 근심거리 하나 챙겨서... 해우소에서 똥누고 함께 버리고 와야겠다. 그렇게 다녀와서 책을 펼쳐 봐야겠다. 눈 뜬 장님의 굴욕을 맛보겠지만 두루.

모처럼 일말고, 새로 할 일이 생겼다.

좋다!

만삼천오백원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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