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움과 희미한 추억들 사이로 떠돌며 퍼즐조각 맞추듯 아버지를 그려본다. 그러다 문득 서글퍼진다.
두려움을 이기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줄까.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의 모진 말을 묵묵히견뎌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타는 속을 소주로 달래며,나는 모르는 씁쓸한 인생의 무언가를 되새기지 않으려나하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작은아버지가 미국의 유명 아나운서 처벅이 죽은 그날처럼 취해서차라리 대자로 널브러지기를, 그래서 올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 P42
‘Gathering moss’라는 원제에서 ‘gather’는 소유의 의미가 아니라 탐구나 끌어안음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에겐하찮고 누군가에겐 없어야하는 대상인 이끼를 한평생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질 때 느껴지는 여운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어떤 것도 쓸모 없는 것이 없으며, 어떤 존재도 그 자체로 빛난 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한 샤이엔Cheyenne족 노인은 내게 무언가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찾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학자에게는 어려운 개념이다. 하지만 노인은 시야를 넘어서 바라보며 가능성에 마음을 열면 원하는 것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것이 갑자기 보인 경험은 숭고했다. 그러한 순간들은 반복해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세상이 확장되는 벅찬 감정을 느낀다. 내 세상과 다른 존재의 세상을 가르던 경계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 겸허해지면서도 즐거워진다.시각적으로 무언가를 갑작스럽게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뇌가‘탐색 이미지 search image‘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복잡한 환경에서 뇌는 처음에는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어떠한 비판적 평가 없이받아들인다. 주황색을 띠고 별처럼 쭉 뻗은 다섯 개의 팔, 매끈한 검은바위, 빛과 그림자. 이 모든 것이 들어오더라도 뇌는 정보를 바로 해석해 의미를 의식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패턴이 반복되고 의식에서 피드백을 받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동물들은 복잡한 시각적 패턴에서 먹이라는 특정 형태를 구분해 능숙하게 사냥감을 잡는다. - P25
그렇다고 해서 이끼를 알려면 학명을 외워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붙인 라틴어 단어는 임의적일 뿐이다. (중략) 단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건 이끼를 인식하고 그 개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원주민에게 앎이란 인간 외에도 모든 개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든 존재는 이름을 지녔다. 어떠한 존재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존경의 표시고 이름을 무시하는 것은 무례함의 표시다. 단어와 이름은 우리 인간이 서로뿐 아니라 식물과도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 P31
린든의 세상에서 변화는 상상 속 가능성을 끌어 올릴 미끼일 뿐, 곧 다가올 상실의 요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상실을 막아주면서도 날 세상과 단절시키거나 고립시키지 않는 장벽은 결코 세울 수 없음을 안다. - P73
무언가를 소유하면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유는 소유 대상의 내재된 자유를 억압하므로 소유자는 힘을 얻지만 소유 대상은 쇠약해진다. 이끼를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진정 사랑한다면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매일 보러 가야 한다. 소설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 소유욕으로 가득한 우리의 품 밖에서도 잘 지내도록 보호하고 싶다면 가장 이타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 - P231
117쪽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애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뉴욕은 여러 도시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도시이다. 규모도 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양한 만큼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엉켜있을 것이다. 그 세계에 발을 담갔다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실제로 그 곳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타인의 내면이랑 그것이 흔들리고 더러는 깨어질 때, 그러니까 마치 재즈처럼 마음이 평상의 리듬을 벗어나 예상치 못하게 변주될 때 만져지는데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플랫’한 모습이었다.’139쪽, 나의 블루지한 셔츠 중에서김금희 작가의 시선을 좋아한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과 다정함을 찾아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