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었다. 거기서 이진태(장동건)의 약혼녀 김영신(이은주)이 쌀을 받기 위해 보도연맹 가입에 서명했다가 반공청년단에게 총살당하는 장면이 나왔다. 영신은 보도연맹 가입을 추궁하는 청년단장(김수로)에게 서명하면 쌀을 준다는데 먹고살려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벌어져 죽은 형의 유골을 찾는 내용으로, 실화(를 각색한 것이지만 보도연맹 학살사건 민간인 학살이라는 또 다른 한국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영화였다.

 

<본 헌터>는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적 시대에 묻힌 이들의 이야기를 발굴의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체질 인류학자 박선주 선생의 발굴 이야기와 발굴된 뼈의 주인의 입장에서 각색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아산 설화산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전개되는데, 발굴의 이야기는 곧 한국 역사를 들추는 것과 같았다. 숨어있는 이야기, 고통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복구시키고 그들을 기리는 작업이다.

 

"인민군이 물러가고 부역 혐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9월 29일 밤부터 10월 초까지가 1차 시기라면, 10월 중순부터 12워 초까지가 2차 시기였다. 그리고 이듬해 1.4 후퇴 때가 마지막 3차였다. 1.4 후퇴 때는 특히 가족 단위의 처형이 많았다. 이때엔 아산 둔표면을 지나던 피난민 300여 명이 미군 폭격으로 비명횡사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단히 보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을 시작으로 경상도까지 수세에 몰린 국군과 UN 군이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다시 북한을 밀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올라갔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 후퇴를 1.4 후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북한군, 즉 인민군이 한반도를 한번 휩쓸고 다시 UN과 국군이 휩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남한이 영토를 찾았을 때 부역 혐의, 즉 인민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처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총살이었다.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군이 떠나고, 기세등등하던 좌익들과 핵심 부역자들은 북한으로 올라갔다.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파도를 운 좋게 피한 아산에 더 큰 쓰나미가 밀려왔다. 부역 혐의 딱지를 붙이 인간 사냥이 시작됐다. 두 손이 묶인 사람들이 트럭에 실려서 성재산으로, 설화산으로, 탕정지서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 안에는 여성도, 젖먹이도 있었다." (121p)

 

인민군에 협력한 사람을 경찰이나 자위대들이 체포하거나 구금한 후 구타하거나 처형했다. 그러나 특정한 기준과 원칙 없이 소문으로만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거짓으로 잡아들이기도 했다. 인민군이 점령했을 때 고향에 남아 일을 계속하던 사람도 처형 대상이었다. 인민군에게 밥만 줘도, 그저 집에 들어오게 해줘도 죽이던 시절에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가족을 몰살했다. 관련 기사에서도 밝혀지지만 땅속엔 여성과 아이들의 시신이 많았다.

 

 설화산에 젊은 어머니와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학살된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⑩ ] “충남 아산시 배방읍(설화산)폐광 유해발굴장으로” - 단디뉴스


어린 홍세화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그때 동네 아이들까지 싹 다 죽였을까요?"

아버지는 구원舊怨과 텃세와 이권을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사적 감정, 가문끼리의 기싸움 그리고 가구 수에 비해 좁은 땅. 숨기고 있던 알력이 이데올로기에 대립과 전쟁이라는 기회를 틈타 순식간에 타올랐다고 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상대 집안 씨를 말려야 했다. 그래야 그 집과 땅을 통째로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222p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란의 시기에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시도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서양에서는 아산과 같은 모습이 근대의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재산을 가져가기 위해서 없는 죄를 만들어내고 타인의 씨를 말리는 것.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들에게 부역해 인간의 잔혹한 면을 여김 없이 드러내는 자들의 모습.

 

이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는 박선주 교수의 영향이 컸다. 박선주는 어릴 적 합기도를 좋아해 청와대 경호실장까지 되지만 버클리대 유학을 가게 되고 하월 교수 아래서 체질인류학을 공부한다. 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의대 수업을 들으며 직접 뼈를 구하러 다니기까지 했다. 그렇게 동물을 포함한 인간의 뼈까지 다양한 뼈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2000년 한국전쟁 50년을 맞아 유해발굴 산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강제징용 민간인 희생자, 국군 전사자 발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발굴을 이어나간다. 대전 골령골 단양군 곡계굴 서울 강북구 우이동 낙동강 전선지역 고양시 금정 등등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는 발굴 현장에서 뼈를 통해 수많은 피해자의 사연, 고통의 흔적과 마주했다.

 

현재 발굴과 관련한 법 제정이 미비한 현실이다. 피해자의 가족도 나이가 들거나 세상을 떠났다. 시민 발굴단이 활발하게 참여하기도 어려워졌고, 뼈를 발견하면 누구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먼저 발굴을 해야 하지만, 국군 수사와 민간 수사와 협력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아직도 유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땅속에 묻혀있음을,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은 언제나 존재함을, 그들의 이야기를 드러내 그들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음을 '발굴'이라는 행위를 통해 보여준다.

 

당시 부역은 어떤 행위가 협력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법률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이승만은 긴급명령을 내린다."단 한 번의 재판만으로 증거 설명도 생략한 채 부역 혐의자에게 사형 또는 중형을 내릴 수 있어서 적극 활용되었다."(360p) "긴급명령 제9호 비상시 향토방위령은 우익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 단위의 자위대가 인민군과 공비, "기타 이에 협력하는 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시 민간단체에게 '체포'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자위대나 치안대가 임의적으로 '즉결처형' 형식으로 대량 학살할 수 있었던 건 향토방위령을 제멋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361p)

 

아산의 모습을 보면 국가 권력, 국가 폭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학살을 옹호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거나 북한을 편이었음을 색출한 것이라 말하지만, 그렇게 보수에서 좋아하는 법과 원칙은 어디로 갔을까 물을 수밖에 없다. 만약 전시에 사람을 마구 대할뿐더러 목숨까지 결정하는 자격을 갖고 있다면, 그저 의심만으로 사람을 잡아 죽일 수 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합리적이라 여기면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군과 경찰의 지시와 집행으로 민간이 학살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이 국가를 믿겠는가. 아직도 땅속에는 수많은 억울한 이야기들이 묻혀있고, 어딘가로 흘러가 영영 찾을 수 없게 되기도 했다. 전쟁은 인간의 잔혹성을 드러낸다. 인간 사이의 불신을 만들어내고, 살육의 쾌락을 느끼게 만들어 인간 정신을 오염시킨다. 양심 없는 자들의 무대가 되게 만든다.

 

이 책의 출간이 한국전쟁과 폭력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기를, 공공역사와 평화사의 관점에서 쓴 한국전쟁이 이야기를 대표하는 책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겨울의 이야기를 마치며 봄을 기다리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368p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며 돌봄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한, 돌봄 청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조기현과 방문 진료의사 홍종원, 사회를 맡은 김경훈 편집자가 '돌봄'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담집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돌봄이라는 주제로 관계, 가족, 정부 정책, 문화, 권력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의 사람들은 돌봄을 생각하면 간호, 육아와 같은 신체능력이 제한돼있는 상태의 대상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전에 적혀있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관점에도 방점이 찍혀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약자에게만 한정돼있지도 않고 단순히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돌봄을 한 당사자기이도 한 조기현 작가와 많은 환자와 방문진료를 한 홍종원 선생은 돌봄의 현장과 어려운 상황에 있는 가족들의 현실을 봐왔기 때문에 돌봄에 관해서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와 당면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돌봄의 관점에서 세상을 좀 더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때론 공상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니냐 말할 수 있지만, 조기현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것을 미래에 도달해있을 세상으로 생각하고 현재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실에 파묻혀지지 않고, 현실에 압도되지 않"(273p)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이야기하면, 여성에게 돌봄노동이 국한되어 있는 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후에 언급되지만 노년의 여성들은 요양센터 입원을 선호하는데, 집안일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돌봄을 떠맡는 영 케어러들은 주로 이혼가정과 같은 상황으로 여성이 수행했던 돌봄을 이어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돌봄 노동은 현재 여성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으나 남성 또한 돌봄의 주체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으며 남성의 돌봄 노동도 늘어가는 추세임을 말한다. 대체로 많은 돌봄은 권력관계에 있음을, 성별 불균형 문제뿐 아니라 가족 중에 가장 약자가 돌보는 일을 감당하고 중요한 결정은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구조처럼 한쪽이 부담을 많이 지는 현실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돌봄노동자’ 평균임금 60%, 월 169만원 번다…비정규직 77%

 

돌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돌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어릴 적 돌봄의 상황을 경험한 조작가는 돌보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어야 자신의 의미를 지우지 않고 곳곳 하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지우는 무거운 짐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돌봄을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확실하게 나뉘는 현 제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말을 나누고 서로 이해하고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하나의 주체임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조기현 작가는 '장소 안도감' 개념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이바쇼'에서 온 말로, 개인이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어떤 장소성을 획득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이라 말한다. 이를 통해 사회와 연결됨을 느끼는 정도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돌봄 서비스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신체적 상태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고를 벗어나 관계에서 위축되고 주체로 서지 못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돌봄의 대상은 그 누구나 될 수 있다. 남녀노소 즉, 청년도 돌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돌봄을 받을 자격과 같은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돌봄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돌보는 시스템을 한쪽이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서로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서로를 돌봄으로 사회적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또한 고정관념들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조작가는 현재 가족의 형태가 바뀌면서 전통적 가족 모델에 맞춘 정책을 변경할 필요성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돌봄의 주체를 가족 구성원으로 돌림으로써 사회 혹은 정부의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두가 돌봄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전제는 우리가 모두 돌봄 수혜자고, 돌봄을 받아왔고, 받을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지 않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야죠.

127p

돌봄은 일종의 짐으로, 누군가에게 떠맡겨진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인정받지 못하니 경력 단절과 같은 현상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낮아져 개인도 사회도 돌봄에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회문제가 반복된다. 우리는 돌봄의 가치를 낮게 보기 때문에 돌봄에 시간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홍종원 선생은 돌봄과 관련해 일종의 대안으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나이가 들어서 병을 앓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도록 여러 서비스를 주체적으로 이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 를 강조하는데, 시민참여의 보장과 참여의 보상 등의 구체적인 지원도 필요함을 말한다. 시설과 병원 중심의 돌봄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케어 정책은 사업의 하나가 아니라, 복지, 의료 분야 전체에 커뮤니티 케어의 철학을 담아야 해요. 일자리 정책도 지역 단위 일자리 정책으로 가야 하고요."

 

요양 시설과 장애인의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요양 시설을 그저 편리한 해결책으로 봐야 할까? 조작가는 요양 시설에 간 후 상태가 악화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탈시설 혹은 탈요양원을 한다고 해서 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고 보호자가 조금 더 편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모두 확실한 해답을 내놓진 못한다. '탈시설' 문제는 정말로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탈시설은 장애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건이지만, 또 그 사회가 탈시설을 할 만큼 시설과 제도, 문화가 갖춰져야 하고 또 다른 피해 혹은 부담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어려운 주제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돌봄'이라는 관점은 항상 살아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시설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원치 않는 진짜 이유 / 정다혜 - 비마이너

 

지금의 사회는 '반돌봄 윤리'가 지배하도록 향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조작가는 '돌봄받지 않아도 되는 존재'를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화하는 인간상이라 말한다. 서로를 책임질 필요 없이 독립적인 인간상을 만들고 약한 사람은 따로 처리하거나 관리해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의존을 죄악시하는 문화가 돌봄의 의미와 이미지를 더욱 퇴식시킨다. 우리 사회는 강하게 독립된 한 인간상들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다.

 

조기현 작가는 홍종원 선생의 방문진료를 따라간 일화에서 홍선생이 "사실 저는 잘 몰라요. 잘 몰라서 더 많이 들어요."라 말하는 걸 보며 "그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그곳에서부터 치료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말한다. 돌봄은 한 사람과의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만나보고 부딪혀야 하는 것이다. "만남 속에서 길을 찾는 의지의 산물"(334p)로 표현되는 것. 의사와 환자. 어찌 보면 권력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관계의 벽을 허무는 것이 진정한 '돌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돌봄'의 개념을 특정한 사람이 제공하는 행위라기보단, 서로가 나누며 세상 안에서 숨 쉬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돌보는 행위를 해 본 사람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 것이다. 우리는 돌봄이라는 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서로 나눠 갖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추가로 이 책은 김경훈 편집자가 주도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조기현 작가의 책을 포함한 여러 돌봄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돋보였던 책이다. 책 하나가 나오기 위해선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데, 잘 보이지 않는 역할 중 하나가 편집자다. 편집자의 적극적 개입이 이런 대답집을 만든 것처럼, 사회도 서로가 맞닿아 적극적으로 개입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돌봄이 순환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갈 돌봄의 동료에게 건네는 연서다

13p

 

*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셋셋 2024
송지영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셋셋>은 한겨레 출판이 공모하여 뽑은 소설 3개와 시 9작품(한 명당 3개)을 고른 책이다. 선정된 글을 추천한 문인들의 글도 담겨있다. 송지영의 소설 <마땅하고 옳은 일>하나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무명이더라도 소설을 잘 쓰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생각하게 하고, 소설을 쓰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송지영의 소설 <마땅하고 옳은 일>은 돌봄 노동을 하는 강선숙의 이야기다. 잠시 휴식을 하러 간 박미숙 대신 최 노인을 간병하는데, 최 노인은 섬망과 같은 정신 질환이 있었다. 강선숙은 최노인을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간호하는데, 그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엄마를 간호했던 경험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코로나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돌보며 고생을 했기에 엄마가 죽을 때 울지도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죽고 싶은데 왜 죽어지지도 않나 몰라"라고 말할 정도로 서로가 힘든 상태였다. 엄마는 병을 앓으며 계속해서 메주를 쒔다. 계속해서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밝혀지지만 강선숙은 코로나를 일부러 엄마에게 옮긴 후 삼일을 박미진에게 보호를 맡긴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잘 알고 있었으며 "제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 말한다.


최노인이 섬망에서는 책상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세상이었으며 어머니의 병에서는 메주를 쑤고 간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세상이었다. 최노인의 책상이 치워진 것과 어머니의 간장을 버렸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동시에 배치하며 최노인의 돌봄 기간이 끝나 주인공이 최노인의 집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주인공의 겹쳐지는 그 기억은, 아니 그 감정은 진한 파동을 일으켜 그의 삶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소설도 오랜만이다. 마음 한구석을 큰 창이 아니라 얇고 얇게 여러 날로 솟은 바늘로 부드럽게 찌르는 느낌이다. 우리는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저지른 잘못들이 있고 그 잘못 들을 생각하게 되거나 과거의 행동과 현재의 행동이 겹쳐지는 날이 오게 된다. 그것은 끔찍한 기억이라 모든 것이 환멸로 종결된다. 나 자신을 옥죄여 오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란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여성에게 맡겨진 돌봄 노동에 대한 메시지는 물론, 홀로 감당하는 고통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독자의 마음에 기분 나쁘게 세긴다. 이 찜찜함은 그 감정을 잘 녹여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는데, 이 작품이 선정되어 제일 먼저 배치된 것이 납득될 정도다.


성수진의 <재채기>는 주인공 현진이 직장 일을 하며 만난 경태와 결별하는 내용과 석회 제거 수술을 받고 입원한 주인공의 엄마의 이야기가 함께 서술된다. 주인공의 엄마는 글을 쓰고 싶었고 퇴직 후 원하는 삶을 산다. 엄마는 블로그에 평소에 떠오르는 단상과 딸과의 추억을 포스팅했다. 주인공은 엄마의 글을 읽으며 티라미수를 먹었던 기억을 회상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지만, 약간의 허구로 자신이 바라는 결말로 바꾼다. 주인공은 여러 글들을 짜깁기해 편집하는 일을 했지만 자신만의 글을 따로 써 같이 출간하고 있었다.


현진은 소설을 현실적으로 써야 하는지 허구로 써도 괜찮은지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좋은 내용의 글만 읽거나 쓰는 것이 좋은 일일까 또한 고민하는데, 그의 글쓰기를 응원하는 선배는 "글에 대해 선배는 짜깁기한 것은 자신만의 글이 될 수 없지만 꾸며쓰는 건 다르지 않냐고. 거짓말에도 진실이, 그리고 진심이 깃들지 않느냐고" 말한다.


'거짓말'을 단순히 윤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단 그 속에 있는 심리를 표현했다는 점. 거짓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의 발현 혹은 소망이라는 것이 있음을, 그것은 동심으로써 가장 잘 나타나지만, 인간은 절망하거나 아쉬운 현실의 대안을 만들어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밑바닥을 직접 구성하고 싶어 하는 소망이 있으며, 그것을 거짓말로라도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소설이다.


정회웅의 <기다리는 마음>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르러 가다 자동차 바퀴가 구멍 나 렉카를 기다리며 벌어지는 연인 간의 이야기다. 두 연인 사이에 멀어졌다 다시 좁아지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제목 <기다리는 마음>에서 '기다림'은 여러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도로에서 렉카를 기다리던 둘은 마실 것을 사기 위해 한 가게에 들어가는데, 동물 형상의 목각인형을 닦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목각인형을 파는 것이 아니라 '처리'하는 것이라 말한다. 송주는 할머니가 화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자신이 렉카 기사에게 자신의 반려동물 모모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공격적으로 말한 것과 같이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처리는 그저 버리거나 떠넘기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소설의 주요 틀은 모모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정이지만,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송주가 렉카 기사에게 화내는 부분에서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로 송주의 행동이 배려 없이 느껴지기도 하며 각각의 사건과 이야기를 잇는 연결고리가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후회의 감정이 남는 것과 사랑의 묘함, 기다리는 감정 또 그 감정의 소화 과정을 적절히 섞어 표현했다.


세 작품을 읽으면 누군가를 보살피고 사랑하고 관계 맺는 마음이란 깊으면서도 어렵고 이해해야 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것임을 느낀다. 살짝 건드려도 분수처럼 솟아나는 것이 감정이기도 하고. 그저 보듬고 봐주는 것 또한 감정이기도 하다. 좋은 소설이란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들을 읽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이 열매의 <입주민 외 주차금지 외>의 시는 과감하게 시작한다. 그의 언어는 추천의 글에서처럼 직관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추상적이며 머리로 한 번 더 그림을 그려보게 만든다. <입주민 외 주차금지>에서는 몰려다는 것들이 쏟아지는 형상을 개구리와 돌과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태어나는 것과 제목의 입주민을 등치 시키는 것으로도 비친다. 몰려다니는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우르르 뭉쳐 다니는 것을들 배제하거나 지양해야 하는 구조 혹은 현실적 이유들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는 채집통에서 개구리 알이 시작하거나 성의 모습을 표현하며 어느 정도 소통과 해석의 단서를 놓지만 독자보다는 자신과의 소통으로 비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그렇기에 독자만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지혜의 <부산집 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운율과 대사의 흐름이 느껴진다. 의식의 흐름대로 가는 것 같으면서도 그 형상은 재치 있게 표현하는데, 그 표현에서 추억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황해담의 <웰컴 투 디 애프터눈>의 시는 감정과 상황의 간질간질함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 이지혜의 시와 더불어서 한 감정을 어떤 언어로 담아내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굉장히 재치 있는 시도들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애인의 장례식에서 / 조문객이 신었던 구멍 난 양말 같은 / 조심스러운 빙그레"같은 표현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말똥말똥한 상상력이 돋보이는데, 직관적으로 다가오다가도 멈칫하며 웃음 짓게 만드는 시다. 기분 좋게 여운이 남는 시였다.


<셋셋>을 읽으면서 소설과 시 쓰기, 또 그것을 읽는 것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무명임에도 글을 잘 쓰는 이들이 존재하며 단지 유명하지 않아서 읽히지 못하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훌륭한 문학가는 훌륭한 심리학자라고도 하지 않나.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에 발을 디딜 때 다양한 경로에 따라 다양한 감정이 발화되며 그 발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한 작품을 읽는다. 문학작품을 읽고 또 찾는다는 것은 개인이 뿜어내는 파동과 조응하는 작품을 만나기 위한 시도이다. 누군가에게 <셋셋>과 같은 책들은 그 조응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하나의 선물세트가 되지 않을까.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림트를 해부하다 - 〈키스〉에서 시작하는 인간 발생의 비밀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부학 의사인 유임주는 신경과학회에서 클림트 그림에 정자와 난자의 아이콘이 있다에릭 캔델의 말을 듣고 클림트 연구를 시작한다. 저자는 먼저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사상)를 설명한 후 클림트의 작품들을 분석한다. 클림트를 포함한 당대의 화가들의 작품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단순히 에로티시즘이나 금과 같은 화려함으로만 느끼기 쉽지만, 해부학적으로 분석한 글을 읽고 나서는 클림트의 그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해부학자의 관점에서 클림트의 그림은 단순히 두 연인의 에로티시즘만을 보여주는 그림은 아니다. 1900년대 전후의 과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피부밑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의과학적 예술작품인 것이다.

8p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인 1900년대 빈은 다양한 사상가들과 지식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살롱, 카페 문화와 김나지움 문화는 문화적 생산성이 폭발하도록 만들었고, 프로이트, 비트겐 슈타인, 말러, 쇤베르크 등등의 학자들이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특히 과학계에서 다윈의 진화생물학 바람이 불었는데, 다윈이즘을 바탕으로 윌리엄 다이스, 요제프 볼프, 가브리엘 폰 막스 등등의 수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지형과 생물들을 정교하게 표현하거나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을 그림에 표현했다. 클림트 역시 이런 시대의 과학적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1890년대 빈은 보수적이었지만 클림트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클림트는 기존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빈 대학교 본관의 그랜드볼룸 천장을 꾸밀 그림을 화가 프란츠 마치가 맡았는데, 마치는 천장 중앙과 <신학> 부분을 맡고, 클림트에게 <철학> ,<의학>, <법학>부분을 맡겼다. 클림트는 상식의 틀을 깨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에 보수적이었던 빈 사람들에게 나체의 이미지와 삶과 죽음을 함께 다루고 있는 클림트의 그림은 당연히 혹평의 대상이었다. 의학과 같은 주제에서는 그 발전 양상을 보여주기보단 의학의 한계인 죽음의 의미를 넣었기에 사람들에게 더더욱 반감을 샀다. 하지만 클림트는 이 사건을 겪은 뒤로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클림트의 그림은 대체로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그림의 패턴 속에 정자, 난자, 자궁, 세포 알 등등의 아이콘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클림트는 생물학적인 도상을 넣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몸, 노화, 죽음과 삶 자체와 같은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클림트의 그림에는 수많은 생물학적 도상이 나타난다. 클림트 작품에 이러한 도상들이 들어가게 된 배경을 분석한 미술사가 에밀리 브라운은 <종의 기원>을 집필해 인류의 사고와 과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찰스 다윈과, 다윈의 진화론을 독일어권 국가에 적극적으로 퍼트린 에른스트 헤켈이 클림트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한다." (p.89)


대표적으로 클림트 작품 중 <키스>를 뽑아 생물학적 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남자의 몸에 있는 네모난 검정 그림은 정자와 남성성을 상징한다. 확대하면 작은 점이 나열된 미토콘드리아까지 묘사돼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몸에 있는 동그란 도상은 착상 혹은 수정한 세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생물학적 도상은 그의 다양한 작품에서 나타나는데, 저자 유임주가 그 해석을 도와준다.


앞서 말했듯 클림트가 살던 시기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교류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예술가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지식을 나눴다. 클림트뿐만 아니라 뭉크, 에곤 실레,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같은 화가 또한 당대의 과학적 발전과 작품이 함께 했다. 이런 시대를 설명하는 저자의 글을 읽는다면 작품들이 새롭게 해석됨은 물론이고 사회와 예술의 유기성, 과학 발전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듯 저자는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통해 기존의 예술 작품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며 사회와 예술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예술은 수많은 교차점에서 생겨나고 풍부해진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는 영화기자로 일해온 저자 이다혜, 이주연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 10편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다. "책 제목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야기를 담은 민용근 감독의 책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언급되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

최익환 감독의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

신아가, 이상철 감독의 <봉구는 배달 중>

정지우 감독의 <4등>

오멸 감독의 <하늘의 황금마차>

이광국 감독의 <소주와 아이스크림>

민용근 감독의 <얼음강>

박정범 감독의 <두한에게>

신연식 감독의 <과대망상자(들)>


영화라는 특성상 감독들은 흥미를 이끌어야 함은 물론이요, 날카로운 주제 선정과, 연출 방법에 대한 고민들로 머리가 뒤섞였을 것이다. 책에 언급된 영화들은 청년, 교육, 노인, 죽음, 군대, 장애, 감시 등의 사회 문제가 되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인권 영화는 말 그대로 인간의 권리를 말하는 영화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의 시야를 밝힌다. 보는 이들에게 한 인간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어떤 특별한 이야기거나 극복하고 구해줘야 하는 삶이 아니다. 그저 한 주체로서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한 인간의 삶을 이해할 때 모든 이들의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며 타인들과 교차할 수 있다.

 

실버택배기사인 봉구가 학교에 빠진 6살 소년 행운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신아가, 이상철 감독의 <봉구는 배달 중>은 사회 속에서의 노인의 위치와 그에 따른 절망을 드러낸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에서는 늙음이 사회로부터 점점 배격당한다는 과정임을 말한다. 어린 소년과 노인을 대비하며 보호받으며 가능성으로 취급받는 아이와 달리 배척받고 의심받는 노인의 삶을 드러낸다. 영화 끝에서 나오는 로또번호의 마킹 실수 또한 노인의 성공(3등 당첨)을 노인의 한계 안에서 그려낸다. 나름대로 면벌부가 주어지는 '방황하는 젊음'과 달리 '방황하는 늙음'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일까. 세대 간의 갈등은 소년 행운에 의해 풀린다. 밀려 나가는 삶이 밀고 들어오는 이에 의해 이해된다면 그 늙음의 과정은 끝을 향해 가기보단 하나의 흐르는 물결이 될 것이다.

 

간암에 치매까지 진행 중인 큰형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내용의 <하늘의 황금마차>는 죽음의 유쾌한 해석을 제시한다. 큰형은 여행을 같이 가는 이에게 집문서를 준다 선언하며 3명의 형제를 끌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병원도, 집도 아닌 어디론가 향하는 과정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현실과의 간극이 있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지만, 멈춘 영화와 달리 살아있는 관람객은 그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다. 저자 이주현은 <하늘의 황금마차>를 통해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로 논의를 확장한다. 존엄한 죽음은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자신으로 정의한 자신으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죽음의 순간에서 나답게 그저 자신으로 남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중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답게 살고 있는가가 죽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가 더 정확한 말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과거를 후회하며 나답게 살지 못한 삶을 부정하거나 후회하기도 하지 않나. 그렇다면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나란 무엇인지,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를 알며 살아가고 있을까. 되려 죽음이 나에게 물어본다.

 

우리가 영화라는 방식으로 현실을 마주할 때 그것은 음미 가능한 대상이 된다. 우리는 마음속에 어떤 영화를 그리고 있을까.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를 읽으며 또 다른 삶과 조응해 보자.

 

세상을 바꾸는 건 뻔한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다. 엉뚱한 상상이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상상하는 건 중요하다. 영화는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가끔은 서로 다른 조건과 서로 다른 신념과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인권을 생각한다는 건 이 험한 세상 다 함께 아름답게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담긴 열 편의 인권영화를 통해 더 따스한 세상을 상상하고 희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8p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