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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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여성 버스기사를 만날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것이 어떤 편견일지도, 어떤 응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성이 기본값이 된 직업세계에 여성이 들어선다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주목받거나 특별히 대해지는 일이다. 이제는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라는 주제가 조금 흔해진 것 같지만, 아직도 남성이 주류로 존재하는 다양한 분야, 특히 강한 근력을 요구하는 일에서 여성은 소수로 존재한다. 문화란 생각보다 길게 남지 않는가. 아직도 많은 직업 문화나 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남아있고 이 세계에 진입한 여성들은 다양한 일을 겪는다. 


<나, 블루칼라 여자>는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고, 버텨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이기에 힘들었음을 어필한다는 서사가 아니다.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살아간 매우 현실적인 이이기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그들이 극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근력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고, 더 나아가 타인을 위해 직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화물 노동자 김지나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형틀 목수 신연옥

건설현장 자재정리, 세대청소 노동자 권원영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

주택 수리 기사 안형선

빌더 목수 이아진


힘을 쓰는 직업이란, 남성들만 존재하는 직업이라 할 정도로 여성이 적은 일이었다. 용접 노동자 김신혜는 여자용접사라는 이유로 임금을 덜 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에게 젖을 짜달라는 성희롱을 듣기도 했고, 일을 하기 위해서 생리의 부담을 줄이는 미레나 시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았고 그저 재밌어서 일을 한다고, 정년까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 말한다.


화물 노동자 김지나 또한 편견에서 살았다. '운전 못하는 여성'의 편견부터 맞서야 했다. 게다가 일을 하러 온 곳에서, 그를 우습게 보거나 고백도 받았다. 그는 무엇이 성희롱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어 화물연대 지부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전운임제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는다.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은 성희롱을 당해도 그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다. 그는 그저 자신만 만족하며 일하지 않았다.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도록 동료 여성노동자에게 기술과 살아남는 법을 잘 알려준다.


형틀 목수 신연옥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일반팀이 아니라 노조 팀에서 일한다. 노조 팀 속에서는 각종 범죄, 특히 성희롱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자재정리, 세대 청소를 하는 권원영은 여성뿐만 아니라 직업적 편견에 맞서며 살아간다. 그는 2030세대 친구들이 들어와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 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일뿐 아니라 노동환경 자체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은 사회뿐 아니라 집안 편견을 버텨야 했다. 그가 레미콘 운전 일을 한다는 소식이 가정에 들려오자 응원이 아닌 비난만을 들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그의 인터뷰에서는 운전하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들이 숨어있을까. 그는 유일한 응원자들인 아이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는 일을 못하면 여자 꼬리표가 달릴까봐, 여자라는 이유로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욱 열심히 했다. 일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의 도움도 거절하며 틈날 때 근력운동까지 했다. 하지만 장비 규격들이 남성에 맞춰져 있어 불편하다 말한다. 그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형님' 호칭을 부른다. 그게 그녀의 생존방식이었다. '오빠라는 호칭'의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오빠는 수동적 여성을 연상시킨다. 여성에겐 상사나 동료를 부르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은 딸에게 투자를 하지 않고 아들만 밀어주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의 한일합섬 방직공장에 입사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그저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끼며 일을 했다. 공장엔 기초적인 여자화장실 같은 시설이 부족했지만 버텨냈고, 발전하는 그 역사 속에 있었다.


주택수리기사 안형선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을 보면서 '여성을 위한 집수리 서비스'를 생각한다. 많은 집 수리기사들이 남성들이었고 의뢰자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모집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 여성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직접 나섰다. 일을 배우면서도 성적 편견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다. 누군가 그의 서비스에 살아남아달라고 했던 것처럼 그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빌더 목수 이아진은 집을 짓는다. 목수 일이 좋아 18살부터 현장에서 일을 했지만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편견들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어린 시절 호주 유학을 다녀왔던 그는 '노가다'라는 편견을 싫어한다. 호주에서는 여성이 목수와 같은 노동을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응원받을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블루컬러 노동은 노가다라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그런 방식으로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노동은 무시당할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장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혹시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부딪쳐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러워요.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70p


이들은 여성 노동자이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에 대한 긍지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모두 공통되게 말하는 것이 성희롱과 같은 성적인 편견과 학대였다. 남성 노동자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에 항의하기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혹은 참아가거나. 그래도 일이 좋거나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어느 여성 노동자들과 같이 중년의 여성들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들의 목표는 여성들을 위한 노동이나 서비스 같은 신세대 여성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정년까지 일하는 것, 가장으로서 일하는 것과 같이 다른 느낌을 내고 있다.


이들은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성적 편견과 제도를 고쳐야 할 노동 환경이 많다. 물론 남성의 진입 또한 편리한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남성이 기본으로 깔린 노동 사회에서는 여성이 견뎌야 할 몫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여성들은 어떤 직업이든 의지만 있다면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들이 희망이고,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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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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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30년 동안 문학 전문기자로 일한 최재봉이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하며 덧붙인 글이다. 작가들과의 인터뷰, 저자의 서평과 부고들이 담겨 있다. 문학계의 시대적 문제와 고뇌들, 문학사의 논쟁거리, 가령 단편 위주의 창작 문화, 서구 중심의 노벨문학상, 신경숙 표절 문제 등을 넘나든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6p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 중 하나는 창작이기에, 문학사에서 크게 논란된 사건은 표절 사건일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은 2015년 이응준 작가가 신경숙의 표절을 폭로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이후에 신경숙은 다양한 작가의 글을 표절한 걸로 드러났다. 당시에 출판사 창비는 신경숙의 표절을 감쌌는데, 많은 논자들이 창비가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지닌 상업적 가치에 눈멀었음을 비판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문단에 만연했던 '문단 보험 카르텔'을 비판한다.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문학잡지를 내는 출판사의 상업적 이익을 챙겨 주려는 평론가들의 이해관계와, 문학상으로 상징되는 문단 내 평판을 좇는 작가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그런 카르텔 구조가 나타났다는 것이 비판적 관찰자들의 견해다."(153p) 출판문화에는 물론 출판산업을 위한 상업적 가치를 쫓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식이라는, 정직이라는 바탕을 두고 있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 그는 비판적인 서평을 시도했다가 작가나 출판사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사이가 나빠진 경우를 언급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비평과 후기는 그저 좋게만 작성해야 하는가 질문한다. "비평의 가치는 타당성과 설득력의 다과로써 판단되어야 한다. 타당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비평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생존 근거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건강한 토론 문화다." (143p)


그의 책은 2000년대에 쓴 글을 모은 것이기도 하기에 과거의 쓴 글을 돌아보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2007년 그는 한국소설이 독자와 더불어 호흡하는 데에 단편보다는 장편이 요구된다 말하면서도 장편이 나오기 힘든 문학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타까워했지만, 현재엔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현재에 와서 돌아본다. 


한때 많은 학문에서 언급되었던 노벨문학상에 관한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서구 중심적인 현실이지만, 최근 한국을 포함한 비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이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현실을 보고 최선을 다해 보면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이라 희망한다. 조금이 지난 후, 우리 문학계를 돌아본다면 그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카뮈의 <페스트>에 관한 글을 쓰며 주인공 의사 리외의 말,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는,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면서 그는 문학과 문인들이 사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찰한다. 


과거 그의 글에 언급된 작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박태순의 장례식에 찾아오지 않는 문인들, 마땅히 얼굴을 비쳤어야 할 이들을 비판한다. 부고를 읽으며 문인이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작가들은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었고, 나름의 지향점들을 제시했기에 우리는 이 의미들을 따라가본다.


조세희, 박완서, 안도현과 같은 고전 작가들부터 김초엽, 최은영과 같은 최근에 흥행한 작가들까지 작가 최재봉은 한국 문학사를 훑는다. 그의 글에서 아는 책이 나올 때면 평론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과 문학사 및 문예 창작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책장에서 빛나는 문학 작품들과 몰랐던, 기억될 미래에 존재하는 책들이 새로이 반짝인다.  이렇게 이야기는 오래 산다. 가장 좋았던 황현산의 말로 마무리한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자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설사 밖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세상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건 이미 세상에 그런 물질적 기반이 조성돼 있기 때문인 것이다.

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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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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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Gold Rush, 주로 19세기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돼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러 갔던 사건을 말한다. 이 당시 많은 동양인들도 미국으로 갔다. <골드러시>는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서수진 작가의 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으로, 일종의 '희망'과 그에 따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 특히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두려움과 걱정을 나타낸다.

등장인물들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호주 이민자로 사는 한국인, 즉 호주에서 아시아인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각종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자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주체다.

<입국 심사>는 주인공 유미가 이태원에서 만나 남자친구가 된 에디를 보러 미국 입국심사를 받는 상황이다. 입국심사를 위해 인터뷰하는 사람은 갈색 피부의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편견을 가지고 질문했다. 그녀는 유미가 미국에 와서 살림을 차리지 않길 바라며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추궁한다.

에디는 어느 날 유미에게 쓰레기 섬 소설을 쓰고 싶다 말했는데, 그것은 쓰레기 더미가 있는 자신의 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것을 편견이라 말하고 있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캠벨타운 임대주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주로 이민자들이 사는 캠벨타운 임대주택 보수 관리자로 일하는 다니엘 리는 집을 어지럽히는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한국인 부모 아래서 자란 여자아이가 찾아와 옛날 집에 놔두었던 물건을 찾아달라 말하지만 다니엘 리는 편견을 가지고 미친 여자로 취급하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다니엘 리의 일을 도와 방문 청소를 하는 그의 부모는 반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집회에 나갔다. 이민자로 들어온 이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반난민 정책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한국인은 전쟁이 나도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한국인은 강하기 때문"에. 강한 한국인이란 뭘까.

나중에 벽을 파보니 조약돌 세 개뿐이었다. 조약돌은 아이의 세계였겠지만 다니엘 리의 마음의 크기는 손에 집히는 조약돌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조약돌로 그 마음을 형상화했다. 아니면 강한 한국인이란 그 조약돌 같은 것일까. 여자아이에게 돈을 쥐여준 아버지처럼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저 먼 이야기가 된다면 생각이 올바로 서지 않게 된다.

소설집의 제목과도 같은 <골드러시>는 연인인 진우와 서인이 차를 몰고 가다 다친 캥거루를 보며 시작한다. 서인은 골드러시 체험 상품을 알아보고 진우에게 통보식으로 같이 가자 말한다. 셰어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결혼한 지 7년이 된 둘이다. 호주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일한 둘이지만, 홀에 들어왔던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서인은 떠날 거라 말한다. 진우는 비자 문제로 1년만 기다려 달라 말하지만 계속 같이 지내며 둘은 장기주택자금을 얻어 단독주택을 산다.

체험 상품은 사기에 가까웠고, 금광 체험을 한 후 둘은 다시 차를 타고 가다 캥거루를 차로 치게 되는데, 진우는 편하게 가라고 죽이지만, 서인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캥거루는 감정을 형상화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감정을 억누르고 죽이는 삶인지, 그저 그대로 두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삶인지.

진우는 금광 체험에서 실수를 해 주저앉아 버리고 바지가 젖는다. 그는 예쁜 돌을 발견해도 서인에게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에겐 많은 상황들이 압박이었을지도 모르고, 서툰 삶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감싸 이해가 필요했던 것일까. 둘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충격의 순간들은 있었어도.

<졸업 여행>은 졸업여행을 떠난 아들 잭이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한 엄마 미연이 주인공이다. 아들이 졸업 여행을 간다고 말했던 곳이 아닌 친구네 할머니 집에 가게 되고, 그 지역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 승수에게 아들을 찾아가라 말한다.

미연은 비자 문제로 끙끙대며 억지로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승수는 돈을 벌기 위해 한식 가게를 운영했다. 잭이 호주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거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인 것이다.

모래폭풍이 가게를 덮쳤고 전기도 나갔다. 잭을 찾으러 간 승수는 친구들과 코카인을 한 잭을 발견한다. 불이 번지는 것은 마음의 불이 번지는 것이었으리라.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 일탈은 괜찮지 않냐는 말.

우리는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 정도 했으니 끝내야 하는 것인지, 이 정도까지 했는데 계속할 수 있는지. 현실에 의해 메말라버린 감정에 불이 붙으면 확 퍼져나간다. 꿈은 현실과 다르다. 꿈이 현실을 움직이게 하겠지만, 그 결과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헬로 차이나>는 부동산 에전트 일을 하는 혜선의 이야기다. 혜선은 자신의 딸이 중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마당에 자신이 걸어둔 국기 중에 누군가 티베트 오색기만 잘라갔고 혜선은 그 범인을 찾고 있었다.

혜선은 호주에 와서 생활할 때 중국인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집을 구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경매에 좋은 물건이 나오면 중국인 얀에게 알려주며 중국어도 연습했다. 자신의 고객이자 싱글맘인 얀과 친하게 지냈다. 얀의 딸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다.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분명히 다른 나라의 사람이었다. 의뢰받은 집의 주인인 한국인은 인도인 세입자를 거절했다. 같은 아시아인 끼리도 선을 그었다.

혜선은 딸 에이미와 남자친구 케빈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매우 닮았다고 느끼며 낯섦을 느낀다. 주립 도서관에선 홍콩지지의 반중국 집회가 열렸고 혜선과 얀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얀은 중국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한다. 돈을 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티베트를 지지하진 않았다. 그저 어떤 정의나 가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얀의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또다시 깃발은 사라져 있었고, 혜선은 에이미와 같이 있는 케빈에게 집에서 나가라 말한다. 혜선은 마음속에서 수많은 경계를 아슬아슬히 타고 있었다.

<한국인의 밤>에 등장하는 클로이 최는, 한인회 임원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한국 휴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복 모델을 하는 등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요받는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도 말이다. 아버지는 일식집을 운영하며 말을 포함해 모든 것들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아버지는 호주의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과 이하로 나눴다. 클로이의 친구들은 중학생 때까지 모두 다 같이 놀았지만 고등학교에선 인종에 따라 무리가 나뉘었고, 친구들은 너를 호주인이 아니라 아시안이라 말했다.

'앤잭데이' 행진에서 한 참전 노인을 만나 이야기한다. 노인의 훈장엔 Korea가 쓰여있는데, 이를 보는 클로이는 자신에게도 이 korea라는 딱지가 붙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인은 "우리를 누가 기억해 주겠나?"라고 말한다. 패션쇼를 한 후 노인을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러다 한 노인이 쓰려져 cpr을 하게 된다. 행사에선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쓰러지는 한 노인들처럼 과거는 잊히고 있었다. 기억은 경험 속에서만 증폭된다. 누군가에게 과거의 정체성이 살아가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사고 기사를 쓰지 말아달란 영사관 직원의 말은 행사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이었겠지만, 그 동력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애써 생각해 본다.

먹고살기 위해 정체성을 바꾸는 삶과, 나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삶. 기억하고 싶어 하는, 잊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교차한다. 하지만 클로이가 느낀 한국의 정체성이란 껍데기뿐이었고,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게 된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외출 금지>는 레즈비언 커플 희율과 은영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호주로 가서 살기로 하는 내용이다. 둘은 바다가 보이는 호주의 숙소를 예약하지만 실망한다. 호주에 가기 전 이태원 클럽에서 놀다 나왔는데 전 남자친구가 버스킹 하는 걸 보게 된다. 희율은 남자를 좋아했었다.

희율은 은영에게 시드니 퀴어축제에 참여하자 말하지만, 한국의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적대적인 시선을 받았던 은영은 부담을 느끼고 둘은 다투게 된다. 은영은 축하받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아도, 그저 미움받지 않고 외면당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희율은 술에 취해 선택적으로 레즈비언 한다고 말한다.

희율이 전 남자친구의 노래를 틀고 있었고 맛없는 와인 때문에 또다시 싸우게 된다. 따로 나가서 살 방을 구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호주 전역에 외출 금지령이 떨어진다. 같이 살지만 희율은 울고 은영은 미안하다 말한다. 둘은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사며 화해를 한다.

정체성의 외출 금지다. 사랑의 외출 금지랄까. 둘이 마트에서 돌아오다 검은 터널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처럼, 사랑이란 때론 캄캄한 곳으로 들어가 질척한 물속에서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끔 살다 보면 어쩌다 이만큼 멀리 왔나, 무엇을 향해 왔나,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배영>의 주인공 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우현을 만난 여진은 임신을 하지만 낙태하고 둘은 졸업 후 취직해 동거한다. 우현이 캠핑을 좋아해 캠핑 갈 날짜를 잡지만 여진은 전날에 회식으로 늦게 들어오게 되고 둘은 다투게 된다. 결국 캠핑을 같이 가고 수영을 한다. 둘의 과거를 회상하고 문득 바다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며 잠기는 여진. 텐트에서 잠을 자다 너무 추워 자지 못하겠어 집에 가자 말한다. 도착한 집은 한결같았고, 우현 또한 한결같았다. 괜찮다고 말한 우현의 상처만 곪아있을 뿐. 여진은 주저 앉아 운다.

저자는 환상과 부딪히는 현실을 그려낸다. 저자 스스로가 호주의 삶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환상, 이민을 통한 성공이나 행복한 여행과 같은 환상을 가지고 호주에 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기를 당하거나, 비참한 현실을 겪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

밝고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소설이라기보단 찜찜함을 표현하는 소설에 가깝다. 우린 잘해보자고 생각해 거창하게 시작한 일이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일지도, 먹고사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창한 마음은 어느 순간 변해있거나 꺾이게 되어있고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주저앉으면서, 때로는 화를 내면서 갈등을 겪으면서.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왔을까.

<골드러시>는 대체로 이민자의 정체성으로, 경계에 있는 정체성들을 다룬다. 환대 받는다면 그 나라에 속하는 것이겠고, 또 마음속으로 환대 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에 속하는 것이겠다. 이 소설들은 그 경계에 서있는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딱지같이 붙어있는 것이라 상대도 의식하고, 나 스스로도 의식하는 것이다. 이 두 의식 중에 더 강하게 밀려오는 것은 무엇일까. 밀어내고 밀림 당하기란 꽤 어려운 것이다. 축축한 것 같기도 하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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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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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22년 2월 1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군대를 전진 배치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조차 설마 했는데, 러시아는 진심이었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며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깊어지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나며 세상은 중국과 미국의 신 냉전과 더불어 또 한 번의 긴장 상태와 전쟁에 놓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노자 교수는 <전쟁 이후의 시대>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원인(푸틴의 의도와 세계정세)을 분석한다. 미국 패권의 약화를 바탕으로 중동지역까지 포함한 세계적인 긴장관계 또한 분석하는데,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서 우리나라(한국)의 대응 방향도 제시한다.박노자는 먼저 푸틴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 프로파간다'는 과거의 평등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외쳤던 모습과는 굉장히 멀어져있음을 비판한다. 현재 푸틴의 행보는 극우의 행보이며, 푸틴은 레닌이 아닌 스탈린의 후계자로, 소련 시절의 연합체가 아닌 오스트리아를 포섭하려는 국가주의적 사고를 보인다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야만"이 있다면, 푸틴주의는 바로 그 야만을 대표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러한 국가주의, 군사주의, 교권주의, 팽창주의 속에는 계급적 정의나 약자, 환경, 기후에 대한 배려란 추호도 없습니다. 푸틴주의가 지향하는 미래 세계는 강국들이 약소국을 지휘, 통제하는 서열적 세계이지, 평등의 세계는 절대 아닙니다.

35p


러시아 내에는 현재 이를 극복할 만한 대중적인 좌파 세력이 부족함은 물론이고, 지식인과 대중, 중산층마저 국가와 연관돼있는 군수산업체에게서 이익을 얻기 때문에 국가에 저항하는 것은 곧 자신의 밥줄을 끊는 것이라 말한다. 여론 상황도 폐쇄돼있어 친 러시아 성향의 목소리만 노출된다. 그렇게 '제국주의적 사고'가 자체가 러시아 현대 문화에 녹아들어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고 하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은 더욱 강렬히 저항하고 있다. 푸틴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스탈린의 후예로서 하나의 통합된 제국을 원하고 있다. 몇몇 지식인들은 나토의 영향력 확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도했다고 주장하는데, 박노자는 그 주장을 거부하며 러시아의 침공이 궁극적으로 푸틴 주의 집단이 추진하는 일종의 "국가 주도 개발 전략"이라고 말한다. (139p) 전쟁을 통해서 국가의 경제적 목적을 포함해,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전쟁'은 '돈'과 함께한다. 세계의 많은 열강들은, 특히 미국은 전쟁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냈다. 러시아는 군수물자가 곧 국가의 부의 원천이며 우리나라 또한 군수물자로 돈을 버는 나라의 순위권에 올라섰다.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선에는 돈 없는 청년들이 나선다. 상대를 그저 적으로만 인식한다. 계급적 사고나 인권을 바탕으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프로파간다에 선동된 악의 세력을 처벌하러 나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그 시대, 그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자유주의적 격차 사회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옛 소련 공민들과 그 자녀들이 이제 "고액의 보수"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가서 같은 소련 유민과 그 자녀들을 죽인다는 사실은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비극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쟁의 주력 부대가 된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계급의식이나 계급 조직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 갔을 때에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같은 계급에 속하는 형제"가 아닌,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가르침대로 "서방이 유혹하고 매수한 배신자"로 보는 것입니다.

128-129p


박노자는 이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서 제국주의 세력들에 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열강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환상도 갖지 않고 실리적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견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애매한 줄타기 외교를 펼친 문재인 정부에서 미국을 추종하며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원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더 이상 세계정세가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미국 스스로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의 살길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친우크라이나 행태에 대응해 러시아는 북한과 회담을 가지며 더욱 가까워졌고 북한이 소련에 무기를 수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한다. 만약 위에서 언급했듯 '전쟁'이 경제를 포함한 세계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면, 우크라이나처럼 우리나라도 언제든 열강의 대리전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단순히 다른 나라의 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노자는 제국주의나 미국, 러시아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자기' 체제 속에서 인권과 민주, 평등의 이상을 실천하려는 투쟁" 또한 절실하다 말한다. 서구 세계와 달리 러시아나 중국 같은 체제에서는 이런 운동 자체가 굉장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지는 않지만, 결국 전체주의적 흐름과 신자유주의적 체제 자체의 모순이 생길 가능성을 제시하고 시민사회를 통한 독재에 저항하는 세력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함을 말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자살골'이었다고 말한다. 이제 그 주도 세력이었던 미국(혹은 일본)의 위상은 떨어졌고, 미국과 러시아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전쟁이 흘러가지 않았고, 우리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맞았다. 전쟁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박노자의 글과 함께 생각해 보자.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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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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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준일은 40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같은 일을 전전하다 응급구조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고, 2년 넘게 노력을 거듭해 시험에 합격하면서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응급구조사(Paramedic, 파라메딕)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에서 다양한 일화와 함께 자신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써내려간다. 그는 죽음의 현장을 마주하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삶의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길 권유한다.

"모쪼록 독자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숨어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 한편, 혹은 여유를 마련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13p


저자는 응급구조사로서 일하는 모습을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응급 현장이 매번 극적이진 않으며, '비응급 환자'들의 잦은 신고와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응급 구조는 시간을 다투며 정신없이 벌어지기 때문에 밥을 거르며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응급구조는 체력보다 정신력이 더욱 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살릴 수 없는 환자를 만날 때면 혹시라도 죽는 모습을 보기 싫어 그저 넘겨주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고백한다. 동료는 트라우마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구조대, 소방관, 경찰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트라우마로 일을 그만두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았다. 신고 전화를 응대하는 과정에서도 트라우마가 생긴다. 전화를 받으며 신고자의 고통, 절규를 듣게 된다. 전화 통화 도중에 극단적 시도를 하는 사람도 있으며, 위급 혹은 사망을 전하는 목소리, 떨림과 공포의 상황을 느끼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정신건강 사각지대에 선 최초대처자들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8376)

"내가 하는 일의 무게란 무엇일까?
어쩌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나에게 일상이 된 것이며, 죽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견뎌내는 일에는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9p


사고는 우연적으로 발생하고 그는 기적을 바란다. 환자가 제발 살길 바라는 마음.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처럼, 보호자와 다투더라도 환자가 살길 바랐다.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자신도 그 공허함을 똑같이 느꼈다. 저자는 휴가를 보내거나 쉬는 시간에도 끝내지 못한 일이 많다고 생각해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점점 죽음에 무뎌갔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저자는 자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더욱 힘들었다 말한다. 자기 손으로 자신을 죽이기는 어렵다. 많은 이들이 자해 후 고통이 심했기 때문에 혹은 후회를 하면서 신고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길 원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 말하는 법. 저자 스스로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응급 상황을 마주하면서 죄책감을 가졌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고통의 상황을 직접 바라보며 사람 사는 세상을 느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있고, 응당 그래야 함을. 또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인간이란 원래 약한 존재임을.


늦은 나이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체력 시험에서는 기절할 만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그도 실습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고 계속해서 배웠다. 이제는 신입 구조사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실수를 교정해 준다. 그는 직업에 의해 성격이 바뀌었다 말한다. 응급구조사 일을 하고 난 뒤 타인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혹시 모를 일들, 비상 상황을 상상한다. 또한 겸손함을 배운다. 인간은 약하며 언제들 도움을 받고, 또 줄 수 있는 존재임을. 결국 세상의 많은 일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배우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생채기 나고 찢긴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위로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우리들은, 사람들로부터 오지랖 부린다고 핀잔을 들을지언정 스스로 나서서 남을 돕는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따뜻함으로 우리의 다친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174p


우리가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현실 뒤엔 수많은 노력이 있다. 김준일의 글을 읽으면 타인을 구하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된다. 그는 수많은 상황에서 얼마나 간절했을까.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를 읽으며 그의 솔직하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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