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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독서모임에서 보통 고전들을 읽지만 요즘 베스트셀러가 어떠한지, 사람들이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주기별로 베스트셀러를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해 읽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성해나의 <혼모노>를 골랐다. 도서관에서 대여하려고 했는데, 예약 순번이 7번째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결국 독서모임 조원분이 책을 사서 읽은 후 나에게 보내주셨다. 먼저 말하지만, 내 글의 제목은 배우 박정민이 쓴 추천사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를 읽고 따온 것이다.
소설집 <혼모노>의 소재들은 한국적이고 흥행으로의 주제의 매력도는 높다. 전반적으로 무당이나 토속신앙, 풍수지리, 정과 같은 동양적 요소들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먼저 말하면 깊이는 없다. 잔여감도 없고 찝찝함조차 없다. 굉장히 소재의 미적인 포인트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텔링은 있지만 애착이 가는 인물이 없다. 통일성도 부족하다. 특히 혼모노의 주인공은 자신이 신빨이 떨어졌지만 기도를 드리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열등감이 지배하면서도 핵심 고객을 뺏어간 어린 무당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끼면서도 신(할멈)을 원망하고 할멈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가짜가 되었다는 울분을 푸는 것인지 광기가 가득한 작두 타기를 시전한다. 독재 정권에 부역하면서도 인간성을 말하며 제자의 사고를 비판하는 <구의집>의 여재화의 말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물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지만 몰입도가 떨어지며 그 모습들을 이어줄 서사가 부족했다. 더불어 조금 더 나아가서 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또한 부족했다.
현실적이고 일상의 흥미로운 사건과 배경을 소재로 삼고 그 사이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단편집일 뿐인 느낌이다. 나는 스토리들이 조금 더 깊고 확장되었으면 하길 바랐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느낀 것은 스토리의 핵심 포인트들을 짜놓고 내용을 욱여넣는 느낌이었다. 또한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들을 자극적이지 않게 현실과 화해시킨다. 그러니 미적 포인트가 강조되고 그 내면의 심리와 갈등이 부각되지 못한다. 소설이 나름대로 잘 쓰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일상적 소재와 더불어서 기술적 요소들을 잘 배치했기 때문이다. 소설 <우호적 감정>에서의 딤섬, <혼모노>에서 작두, <스무드>의 뱃지와 같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사물들이 감정을 담아냈지만 그저 어디까지나 기술적 느낌이 들 뿐이다. 그러니 소설들이 비슷한 느낌을 띈다.
작가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은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 개인의 감정과 사고가 어느 부분에서라도 드러나며 저자의 의도라는 것이 대강이라도 그려지기 때문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해설에서는 굉장히 장황하게 소설의 포인트들을 짚어낸다. 특히 <구의집>을 설명하면서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거대한 살육 체계에서의 기구'로서의 부역자가 아니라, 고문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여재화와, 그 설계를 제자에게 맡긴 사건으로 축소되어 그려진다. 해설의 말이 옳다면, 아이히만의 스토리에서 그 형식만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포인트가 다른 것이, 여재화는 자신이 제자에게 그 일을 맡겨놓고, 즉 목표 전달자가 된 후에 갑자기 제자가 목표에 맞게 잘 설계한 것에 대해 인간성을 대입하며 평가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문제는 제자가 아이히만이 된 것이 아니라, 여재화가 아이히만의 요소를 가지고 인간성을 챙기는 척하는 모순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비판점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부역한 사람은 처벌도 받지 않은 채로, 어떤 흐릿한 과거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것도 아는 사람만 아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현대 소설이라면 '남영동 대공분실'보다 차라리 <길티클럽>처럼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소재를 가져오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무사유'를 다룬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해설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으나 깊이 들어가서 까발려 놓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 독자의 몫은 아니다. 작가가 <혼모노>를 읽고선 역사적 사건을 찾아볼 것 같은가? 한강의 소설을 <혼모노>에 갖다 대는 것은 결례될 정도지만 둘을 비교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견이 한스푼이라도 담겨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되려 <스무드>에서 언급된 제프 쿤스와 같은 작품이 된다. 그저 현대적 방망이로 두드려 만든 스무드하게 읽히는 소설인 것이다.
그럼에도 <스무드>에서 어느 정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한국계 이민자 3세대로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주인공이 태극기 부대 사이에 들어가서 미국인의 상징이 됨으로써 나름의 호의를 받는 것으로, '그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길 시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까발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 내에서 받는 호의'로 둔갑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우리가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은 그들 사이로 들어가길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공유하고 있고 기초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인간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독자도 어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 우리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너와 나, 그들와 우리를 구분하는 것은 끝없이 이어져온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이 소설집 <혼모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어느 정도 잘 풀리지 못한 느낌이 든다. <길티클럽>에서 보이던 친절함과 쉬운 공감력이 <메탈>에선 불친절로 다가온다. <메탈>에선 소재 선정도 흔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자신들만의 가수들의 나열로 여겨지고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나의 글로, '그들'만의 이야기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길티클럽>에선 용어에 대한 각주로 친절히 설명까지 했는데 말이다. 또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그 집단의 사고방식을 나의 방식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저 아는 척하는 부르주아의 소설이 된다. 집단 내에서의 나름의 서사를 인지하고 갈라지는 지점을 파악하는 저자의 강점을 더욱 잘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성해나의 특징이 관찰적 서사나 감정의 절제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단순한 관찰은 그저 사실 나열일 뿐이며, 소설의 강점을 담아내지 못할 뿐이다. 시도를 했으면 나아가야 한다. 독자에게 찜찜함을 남겨줄 정도로.
잠시 혼모노를 혼모노라는 틀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해 보자.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본인이 진짜임을 자처하며 타인을 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엇인가 엄청나게 바라고, 집착하는 것은 내 속에 그에 대한 열망과 관련된 지식들이 채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딸에 대한 통제권에서 고부와 갈등을 겪는 내용인 <잉태기>에서는 진짜 내가 엄마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물론 동서양 사고관의 충돌이나 고부갈등 등의 쟁점들도 존재한다), 엄마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내 아기라는 소유욕이 매우 강조된다. 욕망, 고부에게 욕지거리까지 하게 되는 그 욕망. 그것이 애초에 '진짜와 가짜'라는 틀을 만들어 내는 기제인 것이다. <혼모노>에서도 진짜 팬인가 아닌가의 구분을 넘어서면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옹호하는 '팬으로서의 콩깍지'가 씌는 부분이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라는, '경계'에 대한 의식보다 '개인에게 무엇이 빠져나가고 채워지는가'가 핵심 포인트로 읽혔다. 오히려 진짜와 가짜의 구분으로 흔한 포인트를 잡으면 소설의 매력도를 한층 떨어트리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 속에 어떤 지향성이 있고 무엇으로 채워져있는 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구의집>에서 말한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신빨이 떨어져 다른 무당을 질투하는 것, 회사 직원이 프로젝트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서 갈등을 겪는 것,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 건물 계단을 나선형으로 건설한다는 것과 특이하게 계산된 건물을 지었다는 설정, 학창 시절 메탈에 빠지는 스토리는 다른 매체에서도 소개되거나 이용된 설정이다. 물론 흔한 소재도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지만, 내가 왜 성해나의 특별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다.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해외의 정체성을 계속 섞는 것은 조금 혼탁한 느낌이 든다. 앞선 세 소설을 위해 작품성이 아쉬운 소설들을 뒤에 채운 느낌도 난다. 어떤 의미로는 '잘 쓴다' 혹은, 잘 읽힌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겠다. 대중소설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의미로의 '잘 쓴다'는 것은 모르겠다. 그리고 넷플릭스에 질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차라리 나는 넷플릭스를 보겠다. 18,000원보다 저렴하게. 가끔은 과한 추천사가 소설의 매력도를 더 떨어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