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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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저마다 다르게 말할 수 있겠지만, 철학과 과학에서는 상당한 논쟁적 주제였고, 지금도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흔히 데카르트의 자기 인식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서구의 자아 인식은 그 존재 자체의 유무부터 존재의 조건까지 수많은 학자들의 주장으로 이루어진다. <아웃사이더>는 이런 자아와 관련된 논쟁을 주로 '뇌'의 기능과 연결시켜 자아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신경과 의사로 일하는 마수드 후세인은 환자들을 진료하며 느낀 점들을 풀어낸다. 환자들은 뇌졸중과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에 차질이 생겨 자아 인식의 어려움을 느꼈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뇌의 상태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정체성 또한 결정짓는다. '자아'와 '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책에는 7명의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트래시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는 남편 스티브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시간대가 다른 기억들을 뒤섞는, 일종의 편집증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진단받은 내용과 과거의 일을 잊고 되묻기도 했고,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쾌활한 모습을 보였다. 검사를 통해 그녀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숫자의 단기 기억과 공간적 위치의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마루엽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마는 최근의 특정한 일화에 속한 정보들을 통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 기억을 어떻게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해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사람이 기억하는 방식, 특히 단기 기억은 뇌세포(뉴런)들 사이의 연결 강도 변화인 시냅스가 얼마나 튼튼하게 연결되느냐와 관련이 있다. 뉴런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하는 지점이 시냅스다. 두 뉴런 사이의 틈새에서 정보가 건너가는데, 이 전기 충격이 화학신호로 전환되어 신호를 주고받으며 특정 뉴런이 자극되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 먼 과거의 일들은 다른 뇌 영역들에 통합되어 떠올릴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인간이 정보를 자신에게 친숙한 도식에 끼워 넣고 기억을 재창조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인간 자체의 기억이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래시는 과거와 현재의 일을 뒤섞으며 대답했는데, 이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해마와 마루엽의 손상으로 이런 재창조의 경향이 심해졌고, 기억은 물론이고 시공간적 인식 또한 어려워진 것이다.


트래시는 진료 내내 자신이 괜찮다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의 면담에서 그녀는 너무 두려워서 자신의 병을 부정했다고 말한다. 남편뿐 아니라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후세인은 말한다. 트래시가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부정하는 것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고. 그녀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알렸다. 병은 단순히 병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병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사회적 낙인과 연관돼있고, 자신에 대한 신뢰, 자아와 연결된다.


마수드 후세인이 만난 환자들 중에는 적절한 치료제가 있어서 이전의 삶을 되찾은 경우도 있었지만, 치료제가 없거나, 치료제가 효과가 없을 정도로 병이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삶이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병에 걸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평생을 함께한 연인과 자신의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어떤 마음일까. 모든 병에서 예외가 아닌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 해본다. 그러다 보면 일종의 씁쓸함과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우리가 실제로 몸에 대해 얼마만큼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지도 묻는다. 이 부분에서 인간은 신경계 체제에 놀라움과 더불어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트래시의 사례를 들면, 로크와 같은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자아에는 기억의 연속성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 물을 수 있다. 트래시의 경우처럼 기억을 잃어간다면 자아도 사라진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인식론적 질문들에 뇌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라고 할지라도 자아를 반드시 잃지는 않는 경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자아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만약 존재한다면 뇌 어디에 있는가, 어떤 부위가 어떤 작용을 하는가 등의 질문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데카르트에게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계보에 속하는 일부 사상가들은 자아가 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리 몸이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다른 자아들의 몸과 다른 공간적으로 한정된 대상-즉, 우리 몸-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는 이 사실이 우리 자신의 지각, 행동, 기억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인지 과정들이 체화한 자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즉, 몸이 없이는 자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325p


동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민으로 영국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인 삶을 살았던 저자는 뇌의 기능도 이야기하지만, 사회적 정체성의 중요성에도 집중한다.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누군가와 가까워짐과 동시에 멀어짐을 느끼며 나의 집단과 너의 집단을 구분한다. 그러나 그의 관찰은 우리가 흔히 배제하며 차별하는 근거가 정말로 뇌의 문제일 수 있다는, 대상의 비자발적 요소이자, 차별이 근거가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의미 또한 전달한다.


우리의 자아는 사실상 이런 다양한 인지 과정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인지과학자이자 인공지능의 개척자인 마빈 민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인지 과정은 마음을 세우는 토대이다. 즉 그것들은 "마음의 사회"를 구성한다. 그 "사회"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길 때, 사회는 여전히 존속하지만 다른 사회가 된다. 개인 정체성이 달라진다.


그러나 정체성이 개인 정체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사회 정체성도 자아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본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헨리 타이펠과 존 터너는 사회 정체성이란 우리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을 포함하여 남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개인 정체성이 자아("나")와 다른 자아들과의 구분하는 방식을 정의한다면, 사회 정체성은 자 신이 속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개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가리킨다("우리") 350p


뇌과학을 다루는 책이지만, 매우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이다. 또한 단순히 질병의 뇌과학을 말하지 않고 자아와 사회적 자아와의 연관성을 찾는 책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아란 무엇일까'라는 것은 철학이든 과학이든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뇌의 작동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된 흥미로운 질문들을 7명의 환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책에서 묻고 나름대로 답하고 있으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까치글방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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