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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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역사학의 진전된 연구에 따라 대항해시대의 유럽의 잔혹성이 비판을 받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대항해시대의 역사는 유럽의 시각에서 쓰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 시각은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야만의 해변에서>는 유럽중심의 사고가 아닌, 다양한 사료를 통해 인디저너스Indigenous(인디언이 스스로를 칭하는 정확한 표기)의 시각에서 대항해 시대를 바라본다. 우리는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콜럼버스를 포함한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본 땅이 인도인 줄 알고 붙인 이름이었다. 이 책에서는 먼저 원주민의 명칭의 문제를 건드리며 시작하는데, 국제연합적 용어로, 가장 중립적인 인디저너스(Indigenous)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인디저너스.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니 어떤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유럽과 아메리카가 처음 조우할 무렵, 수만 명의 원주민들이 유럽으로 향했다. 헨리 8세를 만났던 "브라질"의 왕부터 브리스틀의 에이번 강에서 오리를 잡았던 이누크인도 있고, 인간 제물로 카를 5세의 궁전에 전시되었던 멕시코인, 죽기 전 까지 런던 술집의 쇼에 세워지고 죽어서는 런던 하트 가의 성 올레이브 성당에 묻힌 이누이트 아기도 있다. 스페인인 아버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메스티소msetizo(백인과 인디저너스의 혼혈/역주) 아이들도 있으며, 유럽인 가정에서 노예로 일해야 했던 수천 명의 카리브 해 및 메소아메리카 주민들도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부 르는 지역과 유럽 사이에 놓인 거대한 바다를 건너고,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24p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유럽인들은 그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섬에 도착해 인디저너스를 스페인에 보낸다. 그들은 유럽대륙으로 강제로 이주당했으며, 납치되었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사벨 여왕은 곧바로 교황에게 자신의 새로운 대륙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인정받기를 원했고, 그것은 하나의 사업이 되어 무한히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인디저너스는 유럽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수동적인 '노예'로서 남아있었을까? 저자는 아메리카라는 공간에서의 역동성을 발견한다. 그들은 유럽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살길을 찾고자 했으며, 유럽에 끌려간 그들은 자유를 울부짖었다. 단순히 노예로서 정적인 역사를 쓴 것이 아니다.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살아있었다. <야만의 해변에서>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그들의 처했던 상황을 풀어나간다. 

그들은 제국의 특산품이며, 화려한 귀중품, 부자들의 분신, 저 먼 속지의 신비로움이었다. 여기에서 간과된 점, 즉 그들의 신분이 귀족, 외교관, 하인, 통역사, 가족, 연예인, 노예 등으로 다양했다는 점은 근대 초기의 탐험과 제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집는다.
25p


유럽인들은 인디저너스를 마주했을 때 그들을 상품으로 인식했지만 처우문제가 대두되고, 이사벨 여왕은 그들의 처우를 일반인과 같게 하라는 말을 하면서 이론적으로는 노예화로부터 보호되었다. 원주민 귀족들은 귀족 대우를 받기도 하며, 유럽인들과 결혼하게 되면서 동등한 지위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예외도 존재했다. 어린아이나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주로 담당했으며 노예지위에 있기도 했다. 이사벨 여왕의 사후엔 그 지위마저 위태로워지기도 했으며 인디저너스 납치도 성행했다. 특히 인디저너스 일반 여성은 계속해서 완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대체로 흑인과 다르게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시민들 사이에서 인디저너스들은 조용히 살 수 있었다. 16세기 중반에 원주민 여행자들은 흔할 정도라고 말한다. 이들은 외국어를 배우며 유럽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의외로 좋은 대접을 받은 인디저너스 귀족들도 존재했다.


유럽인들은 기독교 전파를 강하게 내세우며 이를 잘 따르는 종족과 외교적 관계를 맺는 등의 전략을 구사했는데, 특히 식민지에서 강제적 세례와 교역을 통해 토착문화를 말살시키는 행위를 지속했다. 주로 사적 관계를 통해 외교를 유지하는 것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외교에는 그들을 도왔던 인디저너스들이 존재했다. 아즈텍을 정복한 코르테스의 편이 되어 통역사가 된 된말린친의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언급되는데, 당시의 유럽 침략자와 식민지 이야기를 쓴 작가들의 성공 뒤에는 인디저너스 조력자가 존재했다. 인디저너스의 조력을 통해 식민지 통치 방법과 자연에 대한 이해,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한편으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다 부족으로 돌아간 완체세와 계속해서 영국에 충성한 만테오의 사례를 비교해 본다면, 식민지 상태에 처한 민족의 입장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아메리카 외교의 상황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스페인의 착취에 맞서서 영국과 협상을 맺는 부족도 존재했으며 정복자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 유럽 왕궁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책 후반부에는 유럽인과 대비되는 인디저너스의 세계관이 소개된다. 저자는 이미 인류학에서는 유명한 포틀래치의 사례를 들며 유럽의 무역과 다른 인디저너스의 '나눔관행'을 보여주고 그들이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말한다. 흡연과 카카오의 유럽 전파에는 인디저너스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흡연은 인디저너스에게 공동체 의식이었으며 카카오는 결혼 계약과 동의어로 쓰였다. 유럽에는 아메리카의 감자, 호박, 옥수수, 콩, 토마토만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들의 습관과 기호, 언어도 스며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담배나 카카오와 같은 물건들에 담긴 의미들을 이해하지 못한채, 상품으로서 받아들였다. 콜럼버스는 인디저너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첫 거래엔 바보같은 거래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류학자 린다 투히와이 스미스의 말이다.


무역'이라는 용어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최소 두 방향의 거래를 가정한다. 이는 또한 인간과 다른 문화적 문물들도 '판매'가 가능한 상품 혹은 물건으로 본다. 인디저너스들에게 이러한 가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인디저너스의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과 그들의 소유물은 도난당한 것이지, 거래된 것이 아니다.

239p


인디저너스들이 유럽을 볼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그들이 보기에 유럽인들은 매우 불평등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인디저너스들을 오해하면 안된다. 우리는 흔히 인디저너스들을 이야기 하면서 사유재산 개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편견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호성과 자연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 했다는 것이다. 인디저너스들은 단순한 무사유를 제시한 것이 아니다. "상호주의와 지속가능성의 윤리에 기초한, 대지와의 관계"(207p)의 필요성을 항상 이해해 온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했으며 공동체 내에서, 또 공동체끼리 상호간 부를 증식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러한 인디저너스의 사고와 단순한 이득을 추구한 유럽인들의 모습의 대비는 현대인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할 때 그 복잡성을 살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디저너스들에게 배타적인 사유재산 개념이 없다는 생각은 그들의 권리와 영토를 찬탈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동원되었다. 그러나 사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같은 학자들은 16세기에도 인디저너스들이 자신들의 땅에 대해 "완벽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그들에게는 소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고, 그 가치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인들과 달리, 그들은 상품에 굴정하지 않았다. (...)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인디저너스들은 과거에도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것이 공유되고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6-207p


브라질엔 왕실의 오락을 위한, 모의 전쟁쇼를 진행하기 위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인디저너스들은 왕족을 비롯한 관중 앞에서 전시되었고 특히 이누크인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해부되었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물건과 문화재를 쉽게 가져갔으며 이익의 추구 대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인디저너스의 기록은 유럽의 문서에서 매우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혹은 '포카혼타스적'인 미화를 거쳐 당시의 인디저너스들의 이미지가 재탄생 되거나. 유럽엔 수많은 인디저너스들이 묻혀있다. 저자는 그 인디저너스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 일으킨다.

흔히 알려진 아타우알파와 피사로의 이야기와 헨리8세와 투피남바 족장의 만남과 침략자와 결혼한 왕실 가족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니 대항해 시대에 흥미가 있는 이들에게 <야만의 해변에서>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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