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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골드러시 Gold Rush, 주로 19세기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돼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러 갔던 사건을 말한다. 이 당시 많은 동양인들도 미국으로 갔다. <골드러시>는 호주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서수진 작가의 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으로, 일종의 '희망'과 그에 따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 특히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두려움과 걱정을 나타낸다.
등장인물들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호주 이민자로 사는 한국인, 즉 호주에서 아시아인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각종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자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주체다.
<입국 심사>는 주인공 유미가 이태원에서 만나 남자친구가 된 에디를 보러 미국 입국심사를 받는 상황이다. 입국심사를 위해 인터뷰하는 사람은 갈색 피부의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편견을 가지고 질문했다. 그녀는 유미가 미국에 와서 살림을 차리지 않길 바라며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추궁한다.
에디는 어느 날 유미에게 쓰레기 섬 소설을 쓰고 싶다 말했는데, 그것은 쓰레기 더미가 있는 자신의 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것을 편견이라 말하고 있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캠벨타운 임대주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주로 이민자들이 사는 캠벨타운 임대주택 보수 관리자로 일하는 다니엘 리는 집을 어지럽히는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한국인 부모 아래서 자란 여자아이가 찾아와 옛날 집에 놔두었던 물건을 찾아달라 말하지만 다니엘 리는 편견을 가지고 미친 여자로 취급하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다니엘 리의 일을 도와 방문 청소를 하는 그의 부모는 반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집회에 나갔다. 이민자로 들어온 이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반난민 정책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한국인은 전쟁이 나도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한국인은 강하기 때문"에. 강한 한국인이란 뭘까.
나중에 벽을 파보니 조약돌 세 개뿐이었다. 조약돌은 아이의 세계였겠지만 다니엘 리의 마음의 크기는 손에 집히는 조약돌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조약돌로 그 마음을 형상화했다. 아니면 강한 한국인이란 그 조약돌 같은 것일까. 여자아이에게 돈을 쥐여준 아버지처럼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저 먼 이야기가 된다면 생각이 올바로 서지 않게 된다.
소설집의 제목과도 같은 <골드러시>는 연인인 진우와 서인이 차를 몰고 가다 다친 캥거루를 보며 시작한다. 서인은 골드러시 체험 상품을 알아보고 진우에게 통보식으로 같이 가자 말한다. 셰어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결혼한 지 7년이 된 둘이다. 호주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일한 둘이지만, 홀에 들어왔던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서인은 떠날 거라 말한다. 진우는 비자 문제로 1년만 기다려 달라 말하지만 계속 같이 지내며 둘은 장기주택자금을 얻어 단독주택을 산다.
체험 상품은 사기에 가까웠고, 금광 체험을 한 후 둘은 다시 차를 타고 가다 캥거루를 차로 치게 되는데, 진우는 편하게 가라고 죽이지만, 서인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캥거루는 감정을 형상화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감정을 억누르고 죽이는 삶인지, 그저 그대로 두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삶인지.
진우는 금광 체험에서 실수를 해 주저앉아 버리고 바지가 젖는다. 그는 예쁜 돌을 발견해도 서인에게 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에겐 많은 상황들이 압박이었을지도 모르고, 서툰 삶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감싸 이해가 필요했던 것일까. 둘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충격의 순간들은 있었어도.
<졸업 여행>은 졸업여행을 떠난 아들 잭이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한 엄마 미연이 주인공이다. 아들이 졸업 여행을 간다고 말했던 곳이 아닌 친구네 할머니 집에 가게 되고, 그 지역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 승수에게 아들을 찾아가라 말한다.
미연은 비자 문제로 끙끙대며 억지로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승수는 돈을 벌기 위해 한식 가게를 운영했다. 잭이 호주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거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인 것이다.
모래폭풍이 가게를 덮쳤고 전기도 나갔다. 잭을 찾으러 간 승수는 친구들과 코카인을 한 잭을 발견한다. 불이 번지는 것은 마음의 불이 번지는 것이었으리라.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 일탈은 괜찮지 않냐는 말.
우리는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 정도 했으니 끝내야 하는 것인지, 이 정도까지 했는데 계속할 수 있는지. 현실에 의해 메말라버린 감정에 불이 붙으면 확 퍼져나간다. 꿈은 현실과 다르다. 꿈이 현실을 움직이게 하겠지만, 그 결과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헬로 차이나>는 부동산 에전트 일을 하는 혜선의 이야기다. 혜선은 자신의 딸이 중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마당에 자신이 걸어둔 국기 중에 누군가 티베트 오색기만 잘라갔고 혜선은 그 범인을 찾고 있었다.
혜선은 호주에 와서 생활할 때 중국인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집을 구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경매에 좋은 물건이 나오면 중국인 얀에게 알려주며 중국어도 연습했다. 자신의 고객이자 싱글맘인 얀과 친하게 지냈다. 얀의 딸은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다.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분명히 다른 나라의 사람이었다. 의뢰받은 집의 주인인 한국인은 인도인 세입자를 거절했다. 같은 아시아인 끼리도 선을 그었다.
혜선은 딸 에이미와 남자친구 케빈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매우 닮았다고 느끼며 낯섦을 느낀다. 주립 도서관에선 홍콩지지의 반중국 집회가 열렸고 혜선과 얀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얀은 중국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한다. 돈을 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티베트를 지지하진 않았다. 그저 어떤 정의나 가치가 중요하지 않았다. 얀의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또다시 깃발은 사라져 있었고, 혜선은 에이미와 같이 있는 케빈에게 집에서 나가라 말한다. 혜선은 마음속에서 수많은 경계를 아슬아슬히 타고 있었다.
<한국인의 밤>에 등장하는 클로이 최는, 한인회 임원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한국 휴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복 모델을 하는 등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요받는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도 말이다. 아버지는 일식집을 운영하며 말을 포함해 모든 것들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아버지는 호주의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과 이하로 나눴다. 클로이의 친구들은 중학생 때까지 모두 다 같이 놀았지만 고등학교에선 인종에 따라 무리가 나뉘었고, 친구들은 너를 호주인이 아니라 아시안이라 말했다.
'앤잭데이' 행진에서 한 참전 노인을 만나 이야기한다. 노인의 훈장엔 Korea가 쓰여있는데, 이를 보는 클로이는 자신에게도 이 korea라는 딱지가 붙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인은 "우리를 누가 기억해 주겠나?"라고 말한다. 패션쇼를 한 후 노인을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그러다 한 노인이 쓰려져 cpr을 하게 된다. 행사에선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쓰러지는 한 노인들처럼 과거는 잊히고 있었다. 기억은 경험 속에서만 증폭된다. 누군가에게 과거의 정체성이 살아가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사고 기사를 쓰지 말아달란 영사관 직원의 말은 행사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이었겠지만, 그 동력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애써 생각해 본다.
먹고살기 위해 정체성을 바꾸는 삶과, 나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삶. 기억하고 싶어 하는, 잊지 않고자 하는 욕망이 교차한다. 하지만 클로이가 느낀 한국의 정체성이란 껍데기뿐이었고,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게 된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외출 금지>는 레즈비언 커플 희율과 은영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호주로 가서 살기로 하는 내용이다. 둘은 바다가 보이는 호주의 숙소를 예약하지만 실망한다. 호주에 가기 전 이태원 클럽에서 놀다 나왔는데 전 남자친구가 버스킹 하는 걸 보게 된다. 희율은 남자를 좋아했었다.
희율은 은영에게 시드니 퀴어축제에 참여하자 말하지만, 한국의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적대적인 시선을 받았던 은영은 부담을 느끼고 둘은 다투게 된다. 은영은 축하받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아도, 그저 미움받지 않고 외면당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희율은 술에 취해 선택적으로 레즈비언 한다고 말한다.
희율이 전 남자친구의 노래를 틀고 있었고 맛없는 와인 때문에 또다시 싸우게 된다. 따로 나가서 살 방을 구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호주 전역에 외출 금지령이 떨어진다. 같이 살지만 희율은 울고 은영은 미안하다 말한다. 둘은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사며 화해를 한다.
정체성의 외출 금지다. 사랑의 외출 금지랄까. 둘이 마트에서 돌아오다 검은 터널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처럼, 사랑이란 때론 캄캄한 곳으로 들어가 질척한 물속에서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끔 살다 보면 어쩌다 이만큼 멀리 왔나, 무엇을 향해 왔나,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때가 있다. <배영>의 주인공 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우현을 만난 여진은 임신을 하지만 낙태하고 둘은 졸업 후 취직해 동거한다. 우현이 캠핑을 좋아해 캠핑 갈 날짜를 잡지만 여진은 전날에 회식으로 늦게 들어오게 되고 둘은 다투게 된다. 결국 캠핑을 같이 가고 수영을 한다. 둘의 과거를 회상하고 문득 바다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며 잠기는 여진. 텐트에서 잠을 자다 너무 추워 자지 못하겠어 집에 가자 말한다. 도착한 집은 한결같았고, 우현 또한 한결같았다. 괜찮다고 말한 우현의 상처만 곪아있을 뿐. 여진은 주저 앉아 운다.
저자는 환상과 부딪히는 현실을 그려낸다. 저자 스스로가 호주의 삶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환상, 이민을 통한 성공이나 행복한 여행과 같은 환상을 가지고 호주에 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기를 당하거나, 비참한 현실을 겪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다.
밝고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소설이라기보단 찜찜함을 표현하는 소설에 가깝다. 우린 잘해보자고 생각해 거창하게 시작한 일이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일지도, 먹고사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창한 마음은 어느 순간 변해있거나 꺾이게 되어있고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주저앉으면서, 때로는 화를 내면서 갈등을 겪으면서.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왔을까.
<골드러시>는 대체로 이민자의 정체성으로, 경계에 있는 정체성들을 다룬다. 환대 받는다면 그 나라에 속하는 것이겠고, 또 마음속으로 환대 받는다면 그것은 사랑에 속하는 것이겠다. 이 소설들은 그 경계에 서있는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딱지같이 붙어있는 것이라 상대도 의식하고, 나 스스로도 의식하는 것이다. 이 두 의식 중에 더 강하게 밀려오는 것은 무엇일까. 밀어내고 밀림 당하기란 꽤 어려운 것이다. 축축한 것 같기도 하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