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나면 그 안에서 여러가지 거래가 형성된다. 일단 전쟁수행국 정부와 군수기업사이의 거래, 그리고 전쟁 수행을 위한 보급과 관련된 각 업체와의 거래들, 그리고 그 보급품들이 전장이 형성되는 근처의 도시에 풀리면서 형성되는 암시장.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전에서의 미국 보급품과 관련된 암시장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독서교육과 관련해서 빨리 훝어보려고 잡았던 작품인데, 독서시간에 읽을 책이 정해지면서 그냥 개인적인 취미로 읽게 되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그래도 10시반, 11시에 와서 기어워나 위닝하기 전에 30~40분씩 꾸준히 본 것이 그나마 지금이라도 다 볼 수 있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여간 이번학기들어 처음으로 제대로 본 장편소설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안영규는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이다. 거듭되는 매복 수색 작전을 수행하는 중 우연히 다낭시내의 미합동수사대 소속의 한국 본부에 오게 된다. 거기에서 대위와 중사를 만나고 베트남인 파트너인 토이와 함께 베트남내의 블랙마켓을 수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팜민은 후안의과대를 다니던 전도유망한 의학도였다. 그의 형 팜 꾸엔은 베트남 정부 예하 성청의 실력자이다. 대학 때 해방전선(베트콩측)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전향한 꾸엔은 민 역시 의대를 나와서 순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은 해방전선의 게릴라를 지망하고 훈련 후 다시 다낭으로 돌아와 형을 속이고 형 꾸엔의 거래처인 구엔 상회에서 게릴라들의 보급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한다.
무기의 그늘은 황석영 선생의 92년작 소설이다. 그 당시에 한국소설의 범위를 베트남까지 넓혔다는 의의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낭만적인 경향의 작품보다 현실의 치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개연성 강하고 구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호하는데, 전쟁과 관련된 뒷거래를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고 할까? 그래서 재밌게 보려고 했지만 상하권 두권 보는데 2달 걸렸다...
당시 베트남의 지형과 전세와 상황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의 내용은 작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참 공들여서 조사를 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 베트남에서 존재했던 암시장에 대한 분석은 작가의 현실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A, B, C레이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A레이션의 유통으로 암시장의 물가조정이 가능하다는 점, 신생활촌 사업과 같은 여러 사업으로 미국에서 원조로 들어오는 무기들이 정부군 측과 해방전선 측 모두에게 조달되는 아이러니, 해방전선의 이념적인 바탕과 그와 관련된 조직 유지 방법(-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피식민지 지배를 벗어나려는 약소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과 같은 여러가지 내용들은 미국이 약소국에서 일으키는 전쟁의 이면이나, 더 나아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성격이 비슷한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너무나도 미국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인물 형상화에 있어서 전반적으로는 한국인, 베트남인, 미국인들을 각각의 입장에서 개연성있게 잘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단 걸리는 것은 영규가 탈영을 도우려했던 스테플리가 세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주인공인 안영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농촌출신 젊은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가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입장이나 치밀함은 그가 아무리 명민한 인물로 나온다고 해도 너무 예리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한다. 즉 '심청'의 후반부로 갈 수록 심청의 목소리가 작가의 목소리가 되듯, 무기의 그늘에서도 미국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대사에서는 영규의 목소리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투영된 것은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는 작품 형상화의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점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마지막에 영규가 떠나기 전, 토이가 죽음을 맞게 되고 분노한 영규가 자신과 토이가 차곡차곡 쌓아왔던 정보들을 이용하여 결국 팜 형제를 파멸에 몰아넣고 떠나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작가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회색주의자인 팜꾸엔을 파멸시키고, 팜민과 구엔타트 등의 해방전선 인물들은 어느정도 그냥 그렇게 투쟁을 계속해나가는 쪽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렇지만 그 형제가 죽고 다낭쪽의 해방전선 보급루트와 조직이 어느정도 손상이 되었더라도, 또다른 회색주의자들은 계속 전쟁의 암거래로 제3국행을 꿈꿀 것이고, 해방전선을 조직을 가다듬어 투쟁을 계속 해나가다가 해방을 맞았을 것이다.
종합해볼 때 '무기의 그늘'은 한국소설의 지평을 세계로 넓혔으며, 전쟁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인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특유의 치밀한 구성으로 2권 분량의 호흡이지만 꾸준히 긴장을 놓지 않게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끝맺는 솜씨가 좋은 작품이다. 다국적 인물들과 그들과 관련된 각각의 세계관과 상황을 파악하려다보면 상권 중반까지는 약간 지루한 감이 있지만 파악이 끝나면 탄력을 받아 꽤나 이야기에 몰입하여 볼 수 있다. 여유있으면 3번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