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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ㅣ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19
이억배 글.그림 / 보림 / 2008년 8월
평점 :
우리 그림의 전통을 잘 살리는 작가, 이억배선생님의 그림책이 나왔다. 바로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다. 서정오 선생님은 『우리가 알아야 할 옛이야기 100가지』에서 '이야기 귀신'이라고 소개했는데, 귀신이라는 어감보다 훨씬 아이들에 친숙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이야기 주머니'라는 제목의 설화를 2편 찾을 수 있는데(한국구비문학대계 7집 6책(경상북도 영덕군) 한국구비문학대계 2집 6책(강원도 횡성군)), 특히 경상북도 영덕군의 설화는 샘물, 산딸기, 청실배, 구렁이가 나오는 것으로 이것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차이점은 신랑이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는데, 구렁이가 나타나자 몸종이 가지고 온 두꺼비를 방에 들여보내 난관을 이긴다는 점이 다르다. 올 초 강의를 통해 이억배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때 이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스케치한 것을 몇 장 만났는데, 색을 입혀 그림책으로 만나니 참 반갑다. 여러 번 그리고, 여러 번 덧칠했을 그의 수고와 고민을 잘 읽어내야 할텐데.......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후에 책을 대하면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것 같다.
앞표지와 뒷표지는 주머니만 다를 뿐이지 똑같다. 샘물과 청실배, 뱀과, 산딸기가 종이 두루마리와 함께 제시되어 있고, 이것들은 모두 주머니에서 연기처럼 피어 오른 것처럼 보인다.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것들인데, 그림은 적당히 무섭고, 그러면서도 밝은 기운도 느낄 수 있다. 속지는 붉은 한지색. 예로부터 붉은 색은 벽사를 하는 기능으로 쓰였으니, 이야기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색이다. 속표지에는 파란 박쥐문양의 주머니가 문갑위에 올려져 있다. 매듭은 잘 풀릴 수 있는 반매듭인데, 입구는 잘 오무려져있다. 박쥐무늬가 들어가 있는 것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고, 서양에서는 드라큘라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는데, 이억배선생님이라면 머슴의 입장에서 이 주머니가 열려야 '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자세히 본문으로 넘어가자. 옛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이야기를 쫓아 어디든 다니는 모습이 한 폭에 자연스럽게 들어가있다. 6군데에 모두 등장해서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나오는데, 한 장에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적어 주머니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 벽장에 넣어둔다. 문갑의 책이 늘어나고, 문방사우도 조금씩 늘어나고, 촛대위의 양초는 작아질만큼 세월이 흘러, 더 흘렀는데도 벽장문은 잠겨져 있다.
그리고 아이는 장가 갈 나이. 군불을 때는 머슴의 모습과, 옷매무새를 다듬는 신랑과 어머니, 그리고 주인 영감의 모습이 양분되어 그려져 있다. 기와끝장식의 도깨비모양도 재미있다. 방에서 소리 나는게 이상해 안을 들여다보는 머슴. 촛대밑의 장식(해치모양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도 눈이 벽장을 향해있다. 벽장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무시무시한 음모답게 어둡고 무서운 그림이다. 엿듣는 문쪽만 밝은 색인데, 그 문뒤로 머습의 모습이 그림자로 보인다.
이튿날 신랑을 기어코 쫓아가려는 머슴과 말리는 주인영감. 주인영감은 머슴을 야단치려고 버선발로 나와 담뱃대를 휘두르고, 그 모습이 무서워 마루밑에서 자던 강아지마저 도망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가려는 머슴이 미덥다. 그리고 머슴과 신랑은 차례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샘물, 산딸기, 청실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 곁에 있는 돌멩이나 바위가 모두 해골모양이다.
그리고 도착한 신부의 집. 초례청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고, 전통 혼례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져있다. 그런데 한 장 넘기면 상이 엎어지고 난리가 났다. 신랑, 신부의 눈동자는 희미한데, 오직 머슴만이 다부진 입과 까만 눈동자가 빛나고 있따. 그리고 밝혀지는 방석밑의 비밀. 그 모습이 자못 무서울까봐 얼른 도망가고 꼬리만 보이게 한 작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그리고 신랑은 보따리를 열어 이야기를 풀어준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도 있고,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도 있고, 반쪽이도 반갑고, 팥죽할멈 이야기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가로등불 아래 큰 나무아래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과 함께, '자, 이제 너희는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 줄래?'라고 묻고 있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뭐든지 빠르게 배운다지만, 오히려 그 때만큼 이야기를 잘 하지는 못한다.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굳이 듣지 않아도 보고 읽을 책과 다른 영상매체가 너무도 많다. 어른들도 굳이 시간내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쏙 빠져들어 귀담아 들으면서, 중간 중간 함께 호흡하고 끼어들어가며 이야기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 역시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른이 함께 소리내어 읽어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에서보다 글을 매만져 입말로 자연스럽게 살려 쓴 작가의 글솜씨가 늘은 것도 반갑다.
세 살 난 우리 딸래미도 오자마자 읽어달라고 하여 몇주는 이 책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 좀 더 크면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주라는 숙제를 내줘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숙제는 이 책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