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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기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3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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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

— 장 주네, 『장미의 기적』


이 악한 세계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꽤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살아남을 테지만, 그러나 그게 내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선한 사람인 척을 하면서, 훔치거나 때리거나 죽이지 않고 (혹은 적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물론 주네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덧붙여 보자면.......

나는 가급적이면 선한 사람으로 살아남고 싶다. 선한 선택을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느낀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렇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매혹적으로 묘사하는 아름다운 ‘악의 세계’가 이 삶 너머에 너울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악에게 발목 붙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그러지 않고 싶은데, 아르카몬의 장미가 흐드러진 세계를 상상하면, 또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여기까지 쓰고 보니 작가에게 당했다....... 는 생각이 든다.

선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이 마음을 언제까지 잘 붙들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이리라. 손에 힘을 줄 수 있을 뿐.

늘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문예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이 무시무시한 책은 문예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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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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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하는 심장으로 🪶」 — 황모과, 스위트 솔티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는 걸 매일 실감하고 있다. 용기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얻거나 만들고 발휘하는 순간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그 아름다움에 비해 너무도 압도적이다. 나는 넉다운을 자주 택했다. 이런 세계에서 용기를 발휘하고 희망을 만들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럴 때 이 소설을 만나 반가웠다. 황모과의 소설들은 실재하는 우리의 세계를 다르게 해석하면서, 통념적 서사에 새로운 인과를 이식한다. 그로써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통용되는 서사의 흐름을 뒤집는다. 사실 우리가 모두 이 세계에 우연히 머무르는, 둥둥 떠다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안다. 이런 세계에서 사는 일, 살아남는 일에는 모험하는 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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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고백들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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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몸이 당신에게 말 걸어온다 🫵」
— 이서수, 『몸과 고백들』
나의 신체와 나는 친밀한 관계였던 적이 별로 없다. 글에 너무 몰두해 있을 때면 몸으로 느껴지는 실감 같은 것이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 그래서였던 건지 단지 운동 신경이 별로여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실재의 몸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으며 지내왔다. 쓰인 활자를 몸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그 이전까지는, 활자 속에 머물면 안전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신체와의 오래되고 어색한 관계 탓에, 나는 가끔 내가 사는 몸을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이 몸이 가끔 무언가를 말하기도 하는데, 내게 들려주는 그 말이 대체...... 대체 무엇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때로는 외부에서 내 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한다. 폭력적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쉽게 더러워지고 더럽혀지는 나의 몸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직 미지의 세계 앞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은 당신이 여기에 있다고, 특히나 당신이 당신 몸과 함께 여기 있다고 선언한다. 몸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성/남성 등의 경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우스운지를 말한다. 경계라 여겨지던 것을 흐트려놓는다. 화자들은 줄곧 절실하게, 스스로를 설명한다. 나를 오해하지 말라고, 나는 그것 아닌 이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알고 그것을 공유하는 시대이지만, 정체성 혹은 정체화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여백이 언제나 있다. 그 빈 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설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를 절실히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 이 책은 상상력을 줄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다시금 내 안에서 이해해야 할 때, 혹은 나를 이해받아야 할 때, 이 책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늘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현대문학께, 감사드립니다. 이 고운 책은 현대문학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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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24.겨울 - 6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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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동료가 될 수 있을까요? 🎵⌟

『자음과 모음, 2024 겨울 ⏐ 63호』


이번 호가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순전히 “동료”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나는 내내 동료를 구하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동료를 구하는 수업>을 운영하고 있으니까. <동료를 구하는 수업>의 이름을 붙일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 동지, 같은 유사어들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 사이의 단어가 필요했다. 왜 하필 동료여야 했을까? (나는 친구도 동지도 다 없는데......) 이름을 붙인 이후로도 내내 확실히 해명되지 않아 궁금했다. 그러다 이번 계간지의 머리글의 일부를 읽고, 동료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동료’는 특정 직군에 속하거나 특정 업무를 협력해 수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동료’는 제도화된 성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한 비평가가 짚어주었듯 오로지 공적이지만은 않은 사적인 성격을 지닌 관계를 포착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되기도 한다. ‘동료'는 사무적인 용무로 얽힌 중립적이고 추상적인 관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같은 뜻을 공유한다고 기대되는 실체 없는 기표로 호명되기도 한다. 반면 ‘동료’는 창작이나 감상, 비평, 정치적 행위를 함께 수행하는 존재, 애착의 대상이 되면서도 분노를 일으키기도, 기어이 상처를 주고받고야마는, 몸으로 육박해 오는 실체이기도 할 것이다.” 8p
내가 왜 동료라는 단어를 마음 속에 품었는지를 말해 주는 부분이었다. 나는 알고 지내는 동종업계 사람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친구가 아닌, 동료가 필요했다.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인, 그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관계가 필요했다. 읽기와 쓰기라는 행위는 특성상 홀로 수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고 쓰는 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인지하는 일을 절실하게 여기게 된다. 학교를 벗어나고 소속감을 잃은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내가 동료를 구하고자 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을 테다.
그렇기에 반가웠다. 다섯 명의 필자를 통해 문학장에서 동료라는 개념은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값진 일이었으나,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누군가가 동료라는 단어를 또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 기뻤다. 이것을 읽으며 내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손 흔들고 싶어졌다.
특히 이여로 작가의 글과 김영희 선생님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이여로 작가의 글에서는 동료와 패거리를 구분하면서, 동료를 통해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밀고 나가는 방식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김영희 선생님의 글은 작지만 단단한 조약돌처럼, 교사 집단이 갖는 느슨한 연대와 동료성으로 귀결되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후의 부분들도 흥미로웠다. 김유태 기자가 다룬 '작가의 골방' 이라는 키워드는 아주 흥미로워서, 나의 골방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소 어쩔 수 없이...... 소설 파트에 집중해 읽은 면도 있다. 권여선 선생님 소설은 최근에 다른 문예지에 실린 소설과 많이 겹쳐 읽혔다. 간병하는 여자와 아픈 여자, 모녀 키워드가 중심으로 보였던 것 같다. 작가에게 모티프나 키워드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쓰이는 것이므로, 작가 본인께서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향해 가고 계시리라 짐작하게 되었다. 믿고 읽는 권여선....... 💙 이번 호에서는 김채원 선생님 소설인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가장 좋았다. 반짝반짝 슬픈 소설이었다.
늘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자음과모음께 감사드립니다. 이 고운 책은 자음과모음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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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볼드 - 그래픽 디자이너를 위한 페미니스트, 포용주의, 반인종주의, 비이분법 현장 가이드
엘런 럽튼 외 지음, 정은주 옮김 / 안그라픽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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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베티카의 세상에서 🧭」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으로 디자인에 입문했다.

나는 애초에 좀 다르게 생긴 책들을 좋아해 왔고, 내용과 책의 형태가 훌륭히 결합될 때 텍스트가 그 힘을 받아 더욱 잘 읽힐 수 있다고 믿으며, 할 수만 있다면 (국판 혹은 신국판인 이상적 ‘소설집’ 아닌) 다른 걸 만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의 방식을 이해하고 일종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내게는 필요했다. 이제는 어떤 책을 만나도 내용만 살피지는 않는다. 종이, 폰트, 판형, 제본 같은 북디자인의 큼직한 요소부터, 인쇄와 유통 과정에 이르기까지, 책에 대해서라면 살피고 고민할 내용이 많으므로.

북디자인에도 일종의 계보가 있다. 한 북디자인 수업에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그리드를 치’는 법이었다. 여백과 흐름을 만들기 위해 레이아웃이 쓰이는 방식을 주로 배웠다.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던 현대 북디자인 자료들은 매우 아름다웠고, 나는 그걸 조금은 따라 해 보고도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료들이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때 가졌던 묘한 의구심은 이 책을 읽으며 해소되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우리는 헬베티카의 세상에 사니까.

헬베티카는 1957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산세리프 폰트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산세리프 글꼴로 알려져 있다. 헬베티카는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브랜드들의 로고에 쓰였고, 헬베티카를 의식해 만들어졌거나 흉내낸 폰트도 많다.

같은 글씨체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없듯, 일관된 폰트와 포맷은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 『엑스트라 볼드』는 지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80% 이상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명명되지 않았던 작업과 역사, 사람들을 소환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과 디자인 작업, 역사와 계보를 만나게 되었고,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으며, 결과적으로 페미니스트이자 퀴어이며 작업하는 아시안 여성으로서 내가 가지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했다.

나는 디자인을 배우며 어떤 책의 정확히 어떤 부분이 아름다운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써 책을 더욱 열렬히 좋아하게 되었다. 디자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을 나는 이제 믿는다. 우리에게는 획일화된 방식보다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늘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안그라픽스께, 감사드립니다. 이 고운 책은 안그라픽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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