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행렬로 이끌었던 최악의 병인 흑사병, 즉 페스트가 한 마을에 창궐하면서 그 마을이 폐쇄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병이 우리를 놓아줄 때까지 멈출 수 없었던, 그 순간들에 관한 소설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주민들.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
어느 날, 그 속으로 끔찍한 병이 잔혹한 살인마처럼 침투한다.
아무 대책도 없는 가운데 힘없는 사람들은 속속들이 쓰러져 갈 뿐이고 어떤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전염병 소설에 관해 읽다 보면 정유정 작가님의 「28」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전염병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기간이 거의 그 정도 된다고 했던가
「28」이 사건 중심으로 긴박하게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면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건은 빠르게 흘러가지도 않고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죽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구나, 나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많은 죽음을 보고, 많은 죽음을 접하고,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그 이후에는 죽음에 무덤덤해지는 걸까. 그게 아니면 눈물을 흘릴 힘마저도 전부 소진해 버리는 걸까.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던 그가 문득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소설 내에서 가장 아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음에 공허함만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보이던. 혹은 병이 그의 모든 마음을 송두리 채 가져간 것일지도 모른다.

병이라는 건, 확실히 무언가를 변하게 한다. 어쩌면 병 속에 존재할 때만 누군가를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마을이 폐쇄되었을 때는 그렇게나 빠져 나가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막상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나자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싹 트는 것처럼.

진실한 것은, 죽음의 행렬 속에만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리외의 어머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사는 잠자코 있다가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고,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고통이
새삼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달 전부터,
그리고 이틀 전부터 계속되어온
바로 그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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