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0
막심 고리키 지음, 이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막심 고리키의 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이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제목부터 마음에 든 「은둔자」였지만 다른 소설들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서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막심 고리키의 책은 이것으로 처음 접해 보았는데 어렵지도 않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서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이, 글을 참 예쁘게 쓰는 작가라는 것이었다. 단어들이, 문장이 정말로 아름다워서 부드러운 호수 속에 내 몸을 온전히 내맡긴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에서 구병모 작가랑 언뜻 비슷하게도 느껴지는데 그 작가님은 기괴하면서 어딘가 일그러진 동화 같은 소설을 쓴다면 막심 고리키는, 설화나 우화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차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판타지적인 요소는 거의 전무하면서도 판타지적인 느낌이 묘하게 풍겨 나오고.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유의 그런 소설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이제르길 노파」였는데 흡사 나이 든 사람에게서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 속에서는 이제르길 노파라는 늙은이가 자신의 과거에 겪었던, 들었던 일들을 하나씩 말해준다. 그 모든 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온전히 옭아맬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소설이 다 끝나고 나서도 노파에게서 아직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영원히 듣지 못할 그 이야기들이 나는 무척이나 듣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마음이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운한 감정이 들 정도로.

「거짓말하는 검은 방울새와 진실의 애호가 딱따구리」는 진짜 딱 우화 같은 이야기였다. 상당히 짧은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한 동안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진 이야기였다.
역시 이 이야기 또한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는 딱히 단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앞에 뭐가 있든 한 걸음 정도는 내디뎠을 것 같기도 하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는 거지만.

고리키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는데 이야기 자체는 읽기가 참 수월하면서도 그 안에 내포된 무언가는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설령 찾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말로써 입 밖에 내놓기에는 어딘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정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달까.

뭔가 잡히는 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물 위에 떨어진 잉크처럼 한순간에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벽하게 막심 고리키 라는 작가를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훗날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그 때는 또 다른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 모든 것은 절대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모두 진실이다.
그 모든 일이 진실이라는 걸 난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는 다른 어딘가에서 상황을 관찰하면서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호기심만 가진 채.
‘그래, 카라모라! 이제 우측으로 돌아서시겠다, 대행진이군?’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내게 소리쳐주기를
내내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멈춰! 너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나 소리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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