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틀로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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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단계이고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이 부농과 부르주아에게 갖는 적대심이 대단하다. 사유재산을 가지고 자유롭게 산 것도 죄인가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한다.
빈농과 프롤레타리아들은 그들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위해 코틀로반을 파며 모두를 위해라는 말을 내세워 부농들의 자산을 가로채고 내쫓는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가 러시아의 조지 오웰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사회주의 소설이니 1984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대배경이 그래서인지 두 작품이 언뜻 비슷한 느낌을 풍기기는 했지만 분위기 자체는 완전히 달랐다. 1984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름끼치는 충격과 날선 두려움이 코틀로반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느껴지는 회색 연기 같은 공허함이 진득하게 풍겼다.

소위 노동자계급이라 불리는 이들은 잠을 자고 먹고, 집을 짓기 위한 코틀로반을 파는 일을 반복하는데 계속해서 깊어만 가는 이 구덩이가 왜 내게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걸까.
어느새 희망을 상상하는 걸 포기해버린 이들은 그럼에도 어떤 희망을 위해 코틀로반을 파지만 따지고 보면 그 자체가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집을 짓는 초석을 열심히 쌓지만 결국에는 그 아이가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것처럼.

희망이 사라져 버렸음에도 계속해서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일까.

어쩌면 코틀로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끝에는 절망밖에 없으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까 파고파고 또 파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코즐로프는 살해된 채로 입을 꾹 다물고
계속 누워 있을 뿐이었다.
불만이 없어 보이는 사프로노프도
마찬가지로 말이 없었다.
그의 붉은 수염은 힘없이
반쯤 벌어진 입을 덮고 있었고
입술 위까지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생전에 키스 한 번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 주위에는 눈물이 말라
소금기로 변한 것이 보였다.
치클린은 소금기가 배어 있는
그 자국을 지우며 생각했다.
‘사프로노프와 코즐로프는 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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