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랑베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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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문학 공부하는 사람들 속을 꽤나 석였겠다. 생각한 책이다. 그래도 초반이랑 중간중간만 그랬을 뿐이지 집중하고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니까 술술 잘 읽혀서 그건 다행이었다.

보통 두 명의 소년이 나와서 사색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을 보면, 나도 모르게 헤르만 헤세가 떠오른다. 이 작품은 분명 헤르만 헤세 보다는 훨씬 먼저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두 소년, 사색이라고 하자마자 자연히 그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내가 헤세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결과적으로 헤세가 표현하는 방식과 발자크의 방식은 너무나도 달라서 그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버렸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루이 랑베르와 화자는 발자크 본인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발자크가 겪었던 경험, 발자크의 사유와 그가 느낀 고뇌와 절망, 생각…….

루이 랑베르는 두뇌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한 아이로써 일찌감치 사유하는 것에 대해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읽은 것에서 경험을 얻는데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사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화자는 방돔 학교에서 그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를 동경하며 방돔 학교 시절 그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책은 화자가 루이 랑베르의 어린 시절과 방돔 학교 졸업 후의 시절, 그가 파리로 간 이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진행되는데 처음에 나는 이 책이 한 천재의 고뇌와 절망, 마지막에는 파멸까지를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과연 랑베르의 마지막이 파멸에 가까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신과의 거리를 인간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림으로써 좁힌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파멸이 아니라 축복이 아닐까.

문득 인간이 태어난 이유와 존재하는 까닭, 인간 위에는 누가 있으며 그가 인간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운명을 거스를 수가 없다면, 과연 인간에게 운명을 쥐어주는 것은 누구일까. 신의 손길일까.
랑베르는 계속해서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사유를 통해 증명하려 하지만 그의 지적인 삶 중 세번째, 파리에서 좌절당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들에 회의를 느낀다.

그가 자신의 삼촌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가 느꼈을 절망과 슬픔과 인간과 물질에 대한 불신들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사유하는 여자. 행동보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 다른 남자들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그 여자를 랑베르는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랑베르는 그 순간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보는 관점에 따라 랑베르는 천재일 수도, 괴짜일 수도,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랑베르가 과연 행복해졌는지도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랑베르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말을 하고 못하고도 있지만 바로 사색하는 데에 있다.

내가 언제나 고민하는 한 가지는, 우리는 왜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 하는 거다. 만약 인간이 태어나고 일하고 죽는 단위의 1차원적인 행동만 한다면 신이 우리를 만든 것은 단지 소모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랑베르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유하는 랑베르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인간답다.

선생님이 불쑥 물었다.
"여러분, `고귀한`이라는 단어에
정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나요?"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루이는 얼이 빠진 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스탈 부인께서 귀족 출신의
고귀한 가문을 뜻하는 단어를
자네가 잘못 해석한 것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선생님보고 바보라고 하시겠지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불행히도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이렇게 응수했다.
"시인 양반, 일주일 동안 감옥 신세 좀 져야겠군."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정다운 시선을 내게 보내면서
루이는 부드럽게 말했다.
"고귀한 정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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