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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blog.naver.com/debater3 책이 인쇄된 날을 보니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저자 사인본이라고 해서 샀었던 기억이 난다. 바쁜 일상으로 제쳐뒀던 책이 오늘 되살아 났다. 책은 결혼하면서 엄마집에서 지금 집으로 다시 가져다 놓았던 모양이다. 책을 다시 살린건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다는 소식이었다. 무슨 책이지 하는 호기심과 사다놓고 방치한 게으름을 탓하면서 책을 들었다. 어제 새벽까지 읽다 잠들었다. 커다란 울림과 슬픔을 머금으며... 공교롭게도 아침에 엄마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어제의 울림은 간데없고 잠에서 덜깬 목소리로 엄마를 또 퉁명스럽게 대한다. 늘 그래왔던거 같다. 엄마에겐 .... 좋게 말하기 보다 툴툴거리고, 불평하고, 엄마는 그런걸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덮으며 엄마와의 추억과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소설은 엄마의 부재와 부채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의 부재는 자식과 남편의 엄마에 대한 부채의식을 이끌어 낸다. 소중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을때 까지 그 소중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오고 가슴을 저미는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엄마의부재는 엄마가 존재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감정과 기억들을 증폭시킨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켜켜이 쌓아놓은 복잡한 감정과 기억들이 봇물처럼 한꺼번에 밀려드는 것이다. 유독 슬프고 애잔했던 기억들이 말이다. 이러한 엄마에 대한 기억들은 부채의식으로 전이된다. 그러나 그 부채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 엄마에 대한 부채는 희한하다. 부 채는 엄마에게 졌는데 원금의 상환은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식들에게 한다. 엄마가 해왔던거 처럼....사랑으로 말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인간의 본능일까? 부채에 대한 상환은 아래세대에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많은 딸들에게 엄마로써의 그 아픔과 고통이 이어진다. 끊을 수도 없는 아픔이기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동을 받았던거 같다. 자식들은 이기적이다. 엄마에게 부채의식이 있으면서도 엄마의 부재전까지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도 굳이 인식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엄마의 부재가 확실해지면 부채를 갚지못한 자기의 슬픔을 눈물로써 치유하려 든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서럽게들 우나보다. 엄마는 자식들의 모든 아픔과 욕망과 실패의 배설구이다. 마치 바다처럼 모든 것을 안아주고 모든 것을 내어주고 보듬어 준다. 삶의 안식처의 다른 이름이 엄마이기라도 하듯 말이다. 나를 품었던 따뜻했던 엄마의 뱃속이, 그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기라도 한걸까? 책을 읽다보니 나와 책의 화자들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엄마를 외롭게 하고, 강한 부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화자들은 나의 다른 현신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왔다. 아침에 퉁명스럽게 끊은 전화와 함께... 나는 소설속의 너고, 그고,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