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 사흘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재즈에는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
<지속의 순간들>의 작가 제프 다이어의 신간 <그러나 아름다운>은
이런 재즈 속성을 담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쓰여진 책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다이어는 재즈로 시를 썼다. 아름답고 슬픈 음악에 대한 시를."이라고 평했다.
특별하거나 유별난 점들을 다리미로 쫙쫙 펴 없애며
슬퍼도 기쁜 척, 기뻐도 덜 기쁜 척 보이도록 살아가는 이들에게
'재즈'는 그저 우주의 미녀처럼 수억 광년 멀리 떨어진 존재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남과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한 번도 표현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과
자신만의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은 설령 재즈를 한다고 하더라도 한낱 은행원이나 배관공보다도 못하다고 말한다.
(은행원과 배관공 앞에 '한낱'이란 수식어를 달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끝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통증들이 예술가에게 약이 되는 이야기는 넘치고 넘친다.
그러나, 제프 다이어가 연주하는 '재즈'란 예술은 "자기 분열 일등급"으로 분류된다.
몽롱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앞서 나왔던 인물이 지금 페이지에 또다시 존재하는 착각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래서 문장을 다시 읽으며 타이핑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재즈가, 제프 다이어가, 궁극엔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요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만의 테크닉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에 안심하면서도 방만해지는 자기 분열이 일어났는데,
그 까닭은 단순히 자신이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를 거의 의식하지 않을 때 가장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떤 지점에 이르러 그의 연주는 테크닉 따위는 모조리 잊어버리는 상태에 도달했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알고 있은 그는 지금,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여, 자신에 대한 감각들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로,
거의 자동적으로 자신을 넘어선 연주를 들려준다. 모든 음들은 블루스의 위안을 전달하고,
가장 단순한 선율조차 장엄한 레퀴엠처럼 당신의 심장을 찢어놓는다. 그도 이를 알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궁금해 했고, 의심했으며, 희망해왔던 그 무엇을 감각한다.
자신이 탕친 삶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이 낭비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예술가이며 유약함이란 그에게 본질적이었다는 것을.
약함은 그의 연주에서 강함의 원천이 되어주었다."(278)
약함이 강함의 원천이 되어주었다는 희망.
테크닉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천재성.
무조건적으로 다른 연주자들을 재해석하게 되는 운명.
그들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될 때 전통의 일부가 되는 지속성.
듀크 엘링턴,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쳇 베이커 등 선배들을 따라 비오는 날마다 듣던 재즈 선율은
그렇게 살아있는 '비평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무식이 '죄'가 되던 시절이었다)
책은 듀엣, 트리오, 퀘텟, 빅 밴드처럼 서로 다른 재즈 포맷들과 용어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 어떤 재즈 입문서(설명서)보다 재즈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화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고주망태, 폐물, 감옥생활, 인종차별, 정신분열, 헤로인 중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 뮤지션들은 일찍 죽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남들보다 빨리 늙을 뿐이었다"
실제 요절한 뮤지션도 많지만, 음악으로 불멸한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리고 재즈가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제프 다이어는 '궁핍함'을 꼽는다.
뮤지션들은 일주일에 여섯 번에서 일곱 번이나 밤을 새워가며 공연했고,
즉흥 연주도 수없이 시도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다.
영감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기에, 직업적으로 재즈를 연주했다.
그러면 갑자기 '새로운 음악'이 일어나는 순간도 온다. 그 순간이 모여 재즈 페이지를 채운다.
나같은 재즈 문외한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글쓰기적으로) 매력적이다.
즉흥 연주로 자신만의 연주를 완성해가는 재즈 뮤지션만큼 부러운 작가이다.
똑같은 에피소드도 제프 다이어란 '재즈 라이터'를 통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하는 과정이 놀랍다.
부록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역자이자 소설가인 한유주의 '옮긴이의 글'도 예술이다.
거친 음색과 불안한 눈빛도 이들을 통한다면, "정오의 황혼"처럼 황홀할 것이다.
('한낮의 섹스'라 적고 '정오의 황혼'으로 바꾼 나는 재인용에 적잖이 목숨 걸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