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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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일어나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었다.---그들의 삶에서 매일 저녁 일어나는 일이(165)

 

어느 날씨 좋은 1920년대 유월 중순, 런던의 어느 하루.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사오겠노라고말하고 집을 나선다. 그녀의 눈에 비친 런던의 풍경과 파티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 이 소설 서사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가 마흔 살의 나이에 쓴 감정소설(흔히들 의식의 흐름이라 일컫는 소설 기법으로 쓰인 작품)로 마음먹고 읽으면 더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다. 클라리사의 산책길을 따라 런던과 그곳에 살고 있는(혹은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자. 그녀처럼 나도 거리를 걷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므로.

 

그녀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건너며 생각했다. 왜 그렇게 삶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삶을 그렇게 보는지, 삶을 꿈꾸고 자기 둘레에 쌓아 올렸다가는 뒤엎어 버리고 매 순간 새로 창조하는지, 하늘이나 아실 일이다. 더없이 누추한 여인을, 남의 집 문간에 앉아 있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이들도 마찬가지야. 저 사람들도 인생을 사랑하거든. 바로 그 때문에 의회 법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거야.(6면)

소설은 오십 대의 안방마님 클라리사, 전쟁 후유증으로 환각 상태에 빠져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셉티머스, 클라리사의 옛 구혼자 피터 월시 이야기가 나란히 삼각구도로 진행된다. 처음엔 빅벤의 종소리를 기준점으로 세 인물의 인상(印象)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시계가 시간을 알린다. 한 점, 두 점, 석 점……. 점점 소설에 빠져들수록 인생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연결하려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신이 보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 삶이, 런던이, 유월의 이 순간.”

 

젊은 시절의 열정을 그리워하는 클라리사는 왜 그렇게 무의미해 보이는 파티를 열려고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그녀는 자기 파티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루하게 되어 간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녀는 파티에 온 사람들의 면면을 관찰하고 심리를 꿰뚫어본다. 매번 파티를 열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자기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가 되는 듯한 느낌,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이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훨씬 더 현실적인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그녀를 버지니아 울프가 피터의 목소리를 빌려 우아하게 묘사한다.

 

파도 위를 노닐며 머리채를 땋는 듯이 보이는, 그녀는 여전히 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저 거기 존재하는 재능, 지나가는 순간 삶 전체를 집약하는 재능을. () 거물처럼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디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저 금줄 두른 사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는 뭐라 말하기 힘든 위엄이 있다. 극히 섬세한 따사로움이 담겨 있다. 마치 온 세상에 복을 빌면서, 이제 모든 것의 막바지에서, 작별을 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198)

 

이 책에 밑줄 그은 문장들을 따라가 보면, “지나가는 순간 삶 전체를 집약하는버지니아 울프의 집요함에 지칠 때도 있다. 온갖 소리와 색깔, 대화와 웃음소리, 지나가는 차의 경적 소리, 노신사가 신은 양말까지 그녀는 세세히 묘사하고, 풍부한 표현으로 그 순간순간을 소설에 아로새긴다.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과 교류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은 파티를 묘사하는 후반부에 더욱 빛을 발한다. 클라리사가 바라보는 리처드, 피터가 바라보는 클라리사, 샐리가 바라보는 피터, 여자들이 바라보는 여자들, 남자들이 바라보는 남자들 등 다양한 시선이 겹치고 겹쳐서 하나의 파티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결정적인 셉티머스의 자살.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 파티장을 덮친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극적인 자살이 소설에서 예견이라도 된다는 듯이.

 

인생이란 참을 수 없다. () 그런데(바로 오늘 아침 그녀 자신도 그랬지만) 두려움이라는 것도 있다. 부모가 손에 쥐어 준 이 인생이라는 것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평온하게 지니고 가야 한다는 것에 덮쳐 오는 무력감.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210)

 

이런 두려움에서 클라리사는 벗어났다. 하지만 그 청년은 자살했다. 그녀는 그가 자살은 했지만 불쌍하다고 느끼진 않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나이들어감을 찬양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었으리라.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해가 뜨는 것과 날이 저무는 것을 바라보며 기쁨에 떠는 끔찍하게 예민한 작가의 한숨……. 쉽지 않은 책이다. 쉽게 읽고 싶은 않은 책이다. 나의 젊은 날과 연관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천천히 감상하고 싶어진다. 결혼식을 치렀지만, 그 때 나를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다. 언제나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신부가 아니라 그날의 음식이라는 진실만이 남았다. 그날의 풍경을 하나하나 묘사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하고 언젠가 그녀는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새하얀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면서.(210)

 

작가는 대단히 매력적인 클라리사에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질투심이 강한 샐리의 시선대로 그녀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광부의 아들과 결혼했기 때문일까. 속물근성이 묘하게 섞인 그 친절함은 정말 거짓일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 좀 더 성숙해진 피터는 안다. 이제 그녀는 늙었지만,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느끼는 힘은 더 강해졌다고. 클라리사에게 정원, 나무들, 응접실 벽지, 브람스를 노래하던 남자, 깔개들의 냄새와 같이 샐리와 피터는 언제까지나 젊은 시절의 일부일 것이다. 정말 싫은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 지금과 달리, 그 때는 그렇게 그립고 살가운 것들이 넘쳐났다. 지난날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온몸에 생기가 돌았던 댈러웨이 부인은 그렇게 하루를 조용히 마감할 것이다. 그녀는 아주 젊은,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이 나이가 든 기분이 들었다. “단 하루라도 산다는 것은 아주,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를 둘러싼 죽음의 냄새는 강하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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