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금까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는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가 책을 읽어온 것은,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질지언정,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이다. _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문학과지성사 p103~104 |
|
|
|
|
정리하면, 책읽기는 '즐거운 도망'이고, '즐거운 저항'이다. 도망치면서 저항하는 것인지, 저항하면서 도망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도망치고 한없이 저항한다. 아니, 도망치기 위해서, 저항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페나크에 따르면 그것이 책읽기의 의의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것. 만약에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즐겁지 않았다면, 당신은 제대로 도망가지도, 저항하지도 못한 것이 된다. 그건 당신이 변변찮다는 얘기다. 그러니 책은 무조건, 절대적으로, 악착같이 즐겁게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애초에 그럴 만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중요하다.
p30
천둥이 치고, 우중충한 기분을 한방에 날려준 책.
이 책의 저자 '이현우'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블로거이기도 하다.
(로쟈의 저공비행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mramor/)
책표지와 내부디자인에도 꽂혀서 한참을 뒤적뒤적 끼적끼적이고 있다.
인문학 서재이다 보니, 학부때 꽂혀있던 책들의 목록이 스치기만 해도
꺄르륵 웃어버릴 것 같다. (조금 격양되어 있다...지금....)
오랜만에 사르트르-바슐라르-바르트-블랑쇼의 계보를 보고 있자니
가출했던 열정이 책을 타고 돌아오는 듯하다.
참여-> 상상력-> 언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 사상의 유연한 흐름.
무조건 즐겁지 않았다면, 나는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도망이든 저항이든 상관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의 블랙홀 아니던가.
빵굽는 타자기대신 날아다니는 키보드이다.
위의 책에서 소개한 <소설처럼>의
쳅터 4 ‘무엇을 어떻게 읽든……’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책을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에피소드 10개는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도 든다.
Written by. ego2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