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도 말이 끊기지 않게 하는 대화법 - 어색함 없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기술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김현영 옮김 / 센시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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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도 말이 끊기지 않게 하는 대화법

어색함 없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기술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센시오, 초판 발행일: 2019년 8월 5일

 

 

 

 

말을 오해 없이 전달하기가 참 어렵다. 두서 없고 싶지 않지만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단순하고 명쾌하게 말하기가 더욱 힘들고.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면서도 적확히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발화에 대해 요사이 생각이 많다. 말로 사람을 얻기는 정말 어렵지만, 잃기는 참 쉽다고도 느끼고. 부족한 말로 상처를 주고 싶지도, 어린 말로 소중한 사람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언어의 나무를 심게 하고 싶지도 않아 요즘 말그릇 같은 책을 자주 읽으려 하는 와중 눈에 띈 이 책.

 

 

어색함 없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기술이 이 책의 부제. 호기심에 신청해서 읽어 봤는데, 짧고 굵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순간순간 적용하기 좋은 예시들이 담겨 있다. 그야말로 ‘실용서’란 느낌이 강하다.

 

 

크게 분류한 목차는 아래와 같으니

호기심이 생긴다면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 :)

:

[1]

'할수록 즐거운 대화'와 '하다가 지치는 대화'의 차이

[2]

꺼진 대화도 살려내는 비결

[3]

인생이 순탄해지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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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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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자음과모음,

초판 1쇄 발행: 2019년 2월 11일, 310쪽

 

 

잠깐의 포옹만으로도 긍정적인 감정은 온종일 지속된다. 아이의 성장과 심리적 안정은 신체적 접촉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는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촉각 시스템은 조용히 작동하며 날마다 영향력을 행사한다. 촉각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감각 체계다.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서문 중에서

 

 

기침과 몸살로 점철된 이번 한 주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콜록콜록 기침이 나고 겨우 멎은 열로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운 상태이니. 그러나 이 상황이어서 그러한지, 책의 중심이 되는 주제인 '촉각'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번갈아서 열이 나는 내 이마를 짚어 주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많이 건강해졌다는 증거이겠지만.) 그리고 시원한 손과 물수건이 번갈아 내 머리를 스칠 때마다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이 참 약해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님의 기쁨인 날도 있었을 정도이니까. 조금은 투 머치 인포메이션일 수도 있으나 그래서 개명도 했다. 지금은 그 이름에 담긴 바람대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한번 아플 때마다 이렇게 부모님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는 해서 그 두 분의 표정을 볼 때면 새삼 건강관리가 중요하지, 잘 챙겨야겠다 다짐하고는 한다.

촉각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비해서, 그 당시의 나의 상황과 느낌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곤 한다. 엄마와 아빠가 내 이마를 짚어주었을 때 내 몸에서 피어난 열꽃의 느낌, 서늘한 손과 물수건, 바짝 마른 입과 사각사각 부딪히는 이불의 소리까지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는 하니 말이다. 맛있다고 자주 마시는 음료수를 손에 쥘 때, 맛을 볼 때면 함께 이 음료수를 좋아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을이 되면 듣는 성시경의 '거리에서'와 은행 열매 터지는 냄새, 사각거리며 밟히는 낙엽의 느낌은 내 중학교 때 절친한 친구와 흥얼거리며 학원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한때를 추억하게도 하니까. 이렇게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은 다양하게 결합하면서 많은 심상들을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 기억이 아주 부드럽든, 씁쓸하든, 슬프든 상관없이 말이다.

 

 

 

 

책의 디자인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일하면서 수화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기에 그 안내서에 그려져 있던 손 그림 생각도 났고. 유광으로 처리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고. 여러 모로 신경을 쓴 흔적들이 책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책의 아래를 보면 SNS 100개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한 번의 포옹이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나와있는데, 그 말이 얼마나 각박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한 요즘 사람들의 상황을 잘 꼬집고 있는가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도 누군가와 있을 때는 핸드폰을 잘 만지려 하지 않는데, 그건 카페든 식당이든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앞에 있는 사람을 놓아두고 핸드폰만 만지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씁쓸했기 때문.

 

 

특히 태아에게 촉각이 미치는 영향력은 참으로 크구나, 생각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그리고 전혀 몰랐던 기본 상식은) 태아에게 체모가 무척 발달해 있어서, 모체 내에서(양수에서) 살아갈 때 아주 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얼마나 산모와 태아가 민감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세상에 엄마와 태아만큼 가깝고도 가까운 존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체모에 대한 내용까지 알고 나니, 태아가 산모 뱃속에 뻗치고 있는 그 레이더를 생각하니 더 귀하고 조심스럽게 산모를 배려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언젠가 나도 결혼하고 나면 태아에 대해 좀 더 세심하고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산모가 스트레스 받을 때의 아이의 움직임이나 비명에 대한 구절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손에 진땀도 났다.

그런 태아의 체모는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우고 나면 없어지게 된다고 하나, 간혹 조산이나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세상으로 나와야 할 경우 인큐베이터 안에서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고통스러워 한다고도 하니 안타깝기도 했고,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는 신혼 부부나 아이를 가진 산모와 아빠가 함께 읽으며 준비하는 책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섬세함은 얼마나 잘 공부하고 알았느냐에 따라서도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체모를 성인이 되면 불필요, 라기 보다는 미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해 밀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나, 이것이 접촉에 대한 민감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충격이었다. 생각해 보면 쓸모 없이 우리 몸에 생겨난 것이 어느 하나 있을까. 또한 접촉에 대한 남녀 성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나이나 몸의 발달 정도와는 다르게 그저 개인 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점도 흥미로웠다.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상황에 맞게 접촉을 하면 그에 따라 감정이 다르게 클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크게 줄이고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촉각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력을 짚은 부분도 집중해서 보았다. 비단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촉각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과 아주 짧은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촉각에 대한 인간의 반사 신경이 놀라웠다. 얼마나 인간이 촉각에 쉽게 속을 수 있는지도 짚어주기까지 하는 이 책에 새삼 그 동안의 나의 생활도 돌아보게 되었다. 햅틱이건 화장품이건, 포장재이건 촉각이 인간에게 알게 모르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당연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많지 않나, 몸이 아프고서 이 책을 읽으며 한번 더 곱씹을 수 있었다. 건강하게 숨쉬고, 걷고, 말하고(일단 목소리가 나오고부터 시작하는), 보고, 냄새 맡고, 마지막으로 만져서 감각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아프고 나니 새삼 이런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에,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부터 감사하기를 요즘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요새 운동하면서 마치 내가 원래 건강해서 그렇다는 듯, 자신만만했었는데 아프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달라진다. 인간이 느끼는 바에 얼마나 취약한 동물인지를 내 경우를 통해 한 번 더 돌아보며, 촉각이 인간 심리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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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권하는 사회 - 주눅 들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 두려움 없이 타인을 생각하는 심리학 공부
모니크 드 케르마덱 지음, 김진주 옮김 / 생각의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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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를 권하는 사회>, 지은이: 모니크 드 케르마덱, 옮긴이: 김진주,

출판사: 생각의 길(아름다운 사람들), 초판 1쇄 발행: 2019년 2월 15일, 페이지: 254쪽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요즘 한창 유행했고, 얼마 전 종영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었다. <혼자를 권하는 사회>의 제목만 보면 관계에 치여 정말 혼자 있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의 개인 심리에 대해 다루고만 있을 것 같은데, 읽다 보면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현실 상에서도 내가 학생이었을 때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마스킹 테이프로 밑줄을 주욱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실은 '소확행'과 나만의 '캐렌시아'에 집중했던 2018년부터 이런 마음을 지니고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 스스로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다른 감정도 받아들일 마음자리가 준비될 것이라고 여겼던 시기가 꽤 길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고독 또한 우리가 발전하고 정신을 꽃피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며 책을 폈고, 덮을 때 역시도 한 번 더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책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 없이 이루어지는 고찰도 없거니와 그런 고찰 없이 발전한 자아·관계일수록 사상누각이기 때문에. 어떠한 자극이 주어져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고독은 필수적이다. '타인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욕구이지만, 이런 욕구를 누리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인 시간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서적인 성숙이 일어나야 하나의 개체로, 제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다는 견해에도 굉장히 공감하는 바이고.

아울러 책의 내용 중 스카이 캐슬과 연결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용 중 하나를 언급하자면, 아무래도 '미디어가 제안하고 있는 이상적 모델'이다. 스카이 캐슬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등생'이나 '재벌가'라는 단어에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에 맞게 고급스럽고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연출(소품부터 시작해 삶의 모습, 그리고 사람의 외모나 성격에 이르기까지)들이 이어지는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그 '사실'에 오히려 괴리감을 더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드라마를 보는 동시에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왜 저게 정상일까?' '왜 저런 모습을 당연하게 연출할까?'

아주 예전에 방영했던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를 볼 때,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있다. 왜 여주인공은 빈곤한 가정 살림에 우는 소리를 하면서 메고 다니는 가방이나 입고 다니는 옷은 왜 하나 같이 명품이냐고. 귀여우면서도 꾸미고 나면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에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까지 장착하고 나면 이건 정말 '사기캐(릭터)'다. 그와 다르게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에서의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또 사랑에 쉽게 울고 웃고 망가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공감했었나. '꽃보다 남자'와는 달리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혹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꽤 흡사했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우리네 삶과는 사뭇 다른 스카이 캐슬 주민들에 그리도 뜨거운 반응을 보낸 걸까.

 

스카이 캐슬 안에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그리고 그에 맞는 형식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이어지고 있다. 스카이 캐슬 입주민은 당연히 돈이 많고, 당연히 학벌도 좋고, 당연히 그에 따라 혜택을 누려 입주의 권한을 얻었다.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기 위해 아이는 당연히 전교 1등을 해야 하고, 희생자가 있음에도 몇 억을 들여 제 아이를 과외 선생에게 보내 공부시키는 모습이 이어지는데도 떨떠름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드라마니까, 하며 허구라고만 생각한다기에는 무언가 반응이 남달랐다.

순위권 안에 드는 아이의 족보나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학부모(거의 대부분 엄마이지만) 사이에 촘촘히 벌어져 나열된 서열. 심지어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 술 뜰 때도 순서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기까지. 드라마가 너무 과하게 연출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아! 이건 현실을 그린 드라마구나, 그래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로구나, 갑작스레 실감이 났다. 심지어 이 드라마를 보고 과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는 이야기도 놀랍지가 않았다. 놀랍기도 새삼스럽다. 그들이 (비록 그 금액이나 삶의 모습이 서민과 사뭇 다를지언정) 주고받는 양적·질적 교류가 우리네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첫 직장에서 일하며 학구열이 뜨겁기 그지 없는 입학 설명회를 두세 번 돌아보고도 이런 반응에 의아해 했다니. 나도 참…….

 

서두가 스카이 캐슬 이야기 뿐이라 지루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고독감과 이런 심리는 아주 당연하게도 맞닿아 있어 이야기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개인으로 사회에 발돋움하기까지, 아이들은 가정 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빨아들인다. 양분이라 함인 즉슨, 가족이 부어 주는 사랑과 관심이다. 나 자신이 세상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족과 나의 관계가 건강하게 맺어져야 또 다른 타인과의 관계도, 그것이 확장되어 세상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맺어질 수 있다.

스카이 캐슬 안에서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를 하는 아이, 상장의 수와 출결과 독서와 성적 전반을 관리하고 감독하며 전교 1등을 무사히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아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모습이나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지금의 마음·심리 상태는 어떠한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독하고 싶은 때는 없는지' ... 등을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부모의 과정은 드러나 있지 않다. 그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한다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성공가도를 달리며 분명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했던 부모의 마음을 읽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려 아이들을 열심히 피라미드 끝자락에 올리려 노력한다. 그러나 부모도, 아이도 모두 외롭기 그지없다.

본인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보면 자연스레 고독해진다.

 

영재들이 호소하는 고독은 그들의 인생에 공유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타인의 말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타인의 이해와 사랑, 경청으로 얻는 위안, 자신의 고통조차 경청해주는 존재에게서 얻는 위안이 없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타인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는 사람의 일시적 또는 지속적 상태'로서의 고독. 과연 영재보다 고독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혼자를 권하는 사회, 139~140쪽.

 

 

이것이 비단 영재라고 표현되는 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뿌리깊은 고독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들이 요즘 얼마나 많은가. 200쪽을 조금 더 넘기다 보면 이런 고독을 타파(?)하기 위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제안이 빼곡히 적힌 페이지들을 읽을 수가 있는데, 너무 쉽고도 당연해서 왜 이런 내용이 써 있을까...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한창 러닝과 요가, 필라테스 등에 빠져 사는 나로서는 이 방법들이 꾸준하게 지키기 어려운 것들로 차 있다고 생각했다. 난이도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에 가깝다. 그러나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겠지. 어떤 일이든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 만큼, 딱 그만큼 얻어낼 수 있다.

그래서 요는, 나와 거리 두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가족에만 국한하지 않고) 평등하게 교류하라는 것. (자칫 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SNS와 같은 간접적인 정보들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지금보다 줄이고, 걷고 뛰면서 내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체감하고 운동을 통해 내 몸과 직면해보기도 하는 시간들을 가져 보라는 것. 그 과정 속에서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감각을 하게 된다면, 타자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좀 더 열렬하게 관계 맺게 되리라는 것.

사회가, 미디어가, 주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서려면 진정 혼자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성에 기대어 쓴 당연한 이야기들에 물렸고, 통계와 수치를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낸 단단한 글-그중에서도 심리학-을 읽고 싶다면, <혼자를 권하는 사회>를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또 스카이 캐슬과 어느 면이 맞닿아 있는지도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으시리라, 살짝 귀띔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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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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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저자: 강화길 외 28인 (구체적인 작가명은 하단에서 소개), 출판사: 작가정신,

초판 1쇄 발행: 2019년 1월 30일, 페이지: 335쪽

 

 

故박완서 선생님(1931~2011)의 8주기. 선생님의 문학 정신을 기리며 스물 아홉 명의 작가가 모여 단편 소설을 한 편씩 써 냈다. 한국대표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 그를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묶어 낸 책이 바로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다. 저자의 소개가 상단에 무척 빈약해 한 분씩 이름을 읊어 본다. 강화길, 권지예, 김사과, 김성중, 김 숨, 김종광, 박민정, 백가흠, 백민석, 백수린, 손보미, 오한기, 윤고은, 윤이형, 이기호, 이장욱, 임 현, 전성태, 정세랑,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조남주, 조해진, 천운영, 최수철, 한유주, 한창훈, 함정임. 총 스물 아홉 분의 쟁쟁한 작가들이 한 데 뭉친 저력은 '박완서'라는 이름 세 글자다.

 

***

 

 

 

 

 

***

 

나에게 박완서 선생님은 어릴 적 책으로 만난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당시의 내가 뵌 박완서 선생님은 물론 소녀는 아니셨다. 그러나 그 당시를 회고하며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서술하는 그 시점에서는 어린 소녀이기도 했다가, 젊은 대학생이기도 했다. 억척스럽지만 살림을 묵묵히 이끌어 가는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했던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질만큼 몰입력이 강했던 그 글.

나는 당시 유행했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선생님의 책도 접했고,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등을 읽으며 어린 내가 살아가는 삶과 너무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본드 냄새(?) 매캐한 골목골목을 폭력적인 아버지가 잠드실 때까지 수도 없이 돌며 침을 뱉어내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도 이렇게 골목을 돌고 있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몸을 떨었던 저녁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박완서 선생님이 그렸던 모습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가족을 잃었던 슬픔 어린 이야기, 당시 대학생의 신분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며 목도했던 우리나라의 현실... 그 모두를 덤덤한 문투로, 그러나 힘 있는 서술로 풀어 낸 사람. 그래서 (앞에서 언급했듯) 마냥 '소녀' 같지만도 않았던 사람.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에 살아숨쉬는 또 한 사람의 박완서가 되어 같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

 

 

 

***

 

 

책에서는 저마다 다른 인생들을 그리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나 저마다의 작가는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입장도 다른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그 자신이 되어 서술하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군가와 연애도 시작하고, 반대로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를 잃은 자식이 되기도 하고, 곧 입양될 곳을 맞이할 소녀가 되기도 한다. 커다란 냉동실에 애착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반짇고리를 고르며 맥주를 살까말까 고민도 하고, 햇빛도 들지 않는 철학과 과사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홀짝이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고민하며 '펑 예정'인 글을 올리며 소수 의견에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가, 누군가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치환하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밤을 바라 보며, '그렇게 매끈하고 윤기 나고 달콤한 겉모습 속에 이런 걸 숨기고 있었어?' 생각한다.

나는 그 모두가 (성별과 나이 같은 조건들과는 또 상관 없이) 내 모습과도 일면 겹쳐져 있어 때론 씁쓸하고 때론 착잡하고 가슴 아팠다. 그와 동시에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 속, 평범한 일상에서 나는 그런 누군가들과 끊임 없이 스쳐지나가겠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마음을 모를 것이고 그들 역시 나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도 씁쓸해졌다. 아마 우리는 이런 무심함과 비공감을 타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의 소소한 슬픔과 기쁨을 읽어내기 위해서 또 다시 책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저 치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고, 깔깔 경쾌하게 웃는 이 사람 뒤에 감춰진 그늘을 몰래 읽기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또 그렇게 생각해 봤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점점 잘 읽게 되면서 '나는 어른이구나' 감각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은 오묘하게도 내가 읽었던 소설 어느 한 장면과 맞물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주인공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가 있다. 읽기만 한다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응, 괜찮아, 이해했어. 지혜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힘든 건 그동안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사람들 잘못이니까,

뭐든 무리해서 극복하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 당분간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어떨까?

그냥 앞으로도 사사건건 부딪치고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서로 못할 것 같아서…….

 

 

멜랑콜리 해피엔딩, 윤이형, 여성의 신비, 173쪽.

 

 

나는 이 대사 하나에 눈을 고정하고 숨을 고르며 여러 차례 읽었다. 나에게 여러 사람들이 해 주었던 말과 너무도 흡사해서. 자기 자신을 탓할 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 순간에는 누구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모질게 다그칠 때 오히려 나보다도 나를 더 많이 안아 주었던 사람들의 말. 그것과 참 닮아 있었다.

10년 넘게 친구 관계를 이어오면서, 단 한 차례도 비추지 않았던 친구의 속마음과도 일면 닮아 있었던 이 말. 정말로 하고 싶은 말.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멀리 떨어져 점점 헤어지고 싶은 이가 있었으나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던 그 말과 닮아 마음이 아팠던... 그 순간의 말과 참 많이 닮은 글이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을 적재적소에 해 주기도 참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말을 또 얼마나 쉽게 내뱉고 참지 못했나 생각하면. 그래서 그 말이 가시처럼 그네들의 마음에 박혀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또 깊은 마음까지 닿아 힘이 되기도 하고 그럴 것을 생각하면. 말이라는 것이 참 얼마나 이중적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난 또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살았나. 그 말을 하며 나는 오롯이 나와 마주하고 있었나. 나는 얼마나 그들과 거리를 두었을까. 그 순간에 했던 말은 정말 나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가. 여러 번 곱씹어 본다. 그리고 살짝 몸을 떨었다.

 

***

 

 

단편 소설 모음집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하나하나 읊어드리지 않음을 양해 바란다. 글은 또 저마다의 경험과, 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 만나는 사람, 하고 있는 일, 읽고 있는 책, 듣고 있는 노래... 그 모든 조합에 따라 다른 맛으로 읽히기에,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며 이 소설을 읽으시길 바란다. 박완서 작가를 위해 바치는 글이라고는 하나 그 한 편 한 편이 모두 작가들의 땀이고 눈물인 것을 잊지 말고 읽으시기도 감히 바라 본다. 편집자들의 공력이 많이 들어갔을 이 책에, 그리고 이런 기획을 통해 책을 만들어 주신 작가정신 출판사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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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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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자음과모음(네오픽션),
개정판 1쇄 발행: 2018년 9월 14일, 463쪽

 

미야베 미유키. 애칭, '미미 여사'의 <고구레 사진관>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 했다. 읽어본 적 없는 책이어서 기대가 됐고 곧장 서평단에 참여하겠다는 신청글을 올렸다. 대중의 호응이 좋다면 그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싶었고 이전에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는 또 어떻게 다르게 전개될지도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왜 개정판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로 홍보가 되었는지를. 한 마디로 (개인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담담한 문체로 빚어내는 인간애'라는 말로 이 책을 정의하고자 한다. 부족한 정의이겠지만, 그녀의 책을 꼼꼼히 읽은 독자로서 참 사랑스러운 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 정이 가고, 또 나이나 성별이 나와 다를지라도 일면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 좋았다고. 상상 안에서 통통 튀며 숨을 쉬는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고. 다만 상(上)편과 하(下)편으로 나뉘어 있어, 그 다음 이야기를 연이어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간략하게 <고구레 사진관>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우선 주인공인 '하나비시 에이이치'를 빼놓을 수 없다. 하나비시 가(家)의 장남으로 애칭 '하나짱'. 아버지(하나비시 히데오)와 어머니(하나비시 교코) 그리고 죽은 여동생(하나비시 후코)과 막내인 남동생(하나비시 히카루, 애칭 '피카짱')을 합해 총 다섯 가족이다(여동생의 영혼이 항상 함께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해 이렇게 소개한다). 거의 가족과 다름 없이 그의 곁에 공기처럼 머무는 친구, 다나코 쓰토무(애칭 '덴코')와 데하루치 지하루(애칭 '탄빵')은 빼놓을 수 없는 감초라 하겠다.

주인공 '하나비시 에이이치'의 생각은 처음에는 약간은 무미건조하게 보이는데, 책을 몇 장 넘기며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병에 걸려 지금은 세상에 없는 '후코'를 함께 한다고 여기는 부모님을 보며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동생 피카짱의 마음을 항상 살피려 하는 형이고, 부모님의 마음을 고려해 습관처럼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수더분하게 따르는 아들이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저자의 전작들을 참고하면 추리 소설인가, 선입견(이라고 하면 좀 과한 표현인가도 생각한다마는)을 가지는 독자들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고구레 사진관>은 읽는 이의 감정을 마구 헤저어 놓는 긴박감, 피가 낭자하게 흩어지고 누군가를 쫓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쫓겨 달아나야만 하는 잔인함이나 공포 심리를 주된 정서로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독자들이 주인공 '하나비시 에이이치'가 친구들 혹은 부동산 사장님, 학교 선배 등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그 감정선을 따라가게 만들고, '그 사진에는 왜 저런 표정이 담겨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한다. 불안감을 자극할 만한 '어둠' '심령사진' '귀신' 등의 단어는 나올지언정, 그것이 독자들의 공포심을 연달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그 사진의 행적을 주인공과 함께 밟아가면서 쓸쓸한 (마음이거나 혹은 실체로서의) 방 안에서 옹그리고 앉아 있는 각 인물들의 팔다리를 풀게 하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안정을 찾게 한다. 그래서 책 속 인물과 읽는 이 모두가 단단히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고, 내가 겪었던 감정, 혹은 겪지 못했지만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없던 감정에 대해 '아' 하고 소리 내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네가 혹시 피카짱한테 '형아, 달님은 왜 높은 데 올라가면 작아져?'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야.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
형님의 책임감이라고 했다.
"의미를 모르겠다. 그럼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있는 녀석은 모두 그렇다는 거야?
덴코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아니야. 하나짱은 특별한 예지, 안 그래? 피카짱은 너보다 훨씬 어려. 그 점이 다른 거야. 넌 피카짱이 철들면서 세상 온갖 일들에 '왜? 왜?' 질문을 던지게 된 후로 언제든 대답할 수 있게 준비하는 사람이 된 거라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더라도 언젠가 대답해줄 수 있게. 까맣게 모르는 거라도 왜 모르는지 대답할 수 있게."

/* 79쪽

 

 

 

그리고 하나비시 가(家)에 전(前) 고구레 사진관이었던 오래된 건물을 팔도록 중개했던 부동산의 사장(스도)과 여직원(가키모토)도 초반의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점차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모하는데, 그들의 캐릭터가 점점 매력 있게 보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납득이 되어서 (그러려고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눈길이 간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특히 그들의 심성, 그리고 심리 상황이 잘 드러나는데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 이들에게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으리라는 생각. 아래는 대표적인 발췌 두어 가지.

 

 

"최근 일 년간 가키모토 씨를 보고 느낀 점인데……."
사장이 팔짱을 끼고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그렇게 공격적인 건 사실은 두렵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든 강하게 나가야지 안 그러면 금세 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야. 상처 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려는 거지. 그런 인간관계밖에 모르고 산 것 같아, 지금껏."
… 미스 가키모토는 살아 있는 인간을 두려워한다. 탄빵은 유령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탄빵도 살아 있는 인간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으니까.
:
"중요한 건 평범하게 대하는 거야, 평범하게."
어쩌면 이 스도 사장과 부인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인(大人)이라고 하던가.

/* 319~320쪽

 

 

"당신 말이지, 자각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외투 자락 밑으로 피카랑 비슷할 정도로 가녀린 손이 엿보였다. 뼈만 앙상한 희고 가는 손가락은 이쪽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잡아서는 안 될 뭔가를 잡으러 가버릴 것처럼 보였다.
"스도 사장님과 사모님 댁의 툇마루에 앉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
"당신이 툇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이 사장님이랑 사모님에게도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툇마루는 가족이 사는 장소는 아니라 해도 역시 집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당신이 거기서 드러눕거나 하면 사장님도 사모님도 걱정하잖아."
:
"설교 좀 하시네, 하나비시 댁 아들."
:
다음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난 이제 전차를 탈 거야."
"어디 가는데?"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일 끝났으니까."

/* 458~460쪽

 

 

 

누군가의 앞에서 마구마구 위로의 말을 쏟아낸다고 해도, 그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는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가닿지 않는 진심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무뚝뚝하게 들리기도 하고 툭하고 지나가듯 던진 말 한마디에 닿는 진심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담담함을 담고 있다. 잔잔하게 흘러 가는 시간 속에서 각 인물들의 진심이 서투르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뭐랄까, 참... 평화로운 마음이 든다. 추리 소설의 전통적인 맥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는 않으나 또 얼핏 비슷한 맥락을 가져 가고 있는 이 책의 흐름이 묘한 나른함과 따뜻함을 담고 있기에 살아가며 이 책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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