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열린책들, 초판 1쇄 발행일: 2017.10.20, 402page
이 도시 전체가 프로이트적 실언(무의식 속에 숨겨 둔 속마음이 말실수로 들키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이자 미국의 행적과 악행에 흥분한 콘크리트 페니스다. /12p
고대 로마든 현대 미국이든 사람은 시민 아니면 노예다. 사자 아니면 유대인이다.(고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콜로세움에 사자 밥으로 던져주었다.) /13p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로 기소당하고, 임신 중절을 거부당하고, 국기를 불태우며, 수정헌법 5조를 들먹이며 법정 증언을 거부한(인종 차별, 임신 중절, 국기 훼손, 증언의 의무는 모두 미국 헌법의 인권 보장 문제와 관련해서 논란이 되어 온 쟁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재심을 요구하라고 해라. 내가 이 땅에서 가장 높은 법정에서 마리화나에 취해 더 높이 붕 떠오르고 있으니까. /15p
내가 드레스 스콧의 직계 후손인지 확인할 것이다. 자유주에 살던 유색인 노예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주인에게 자유를 달라고 고소한 인간이었지만, 헌법 기준으로는 인간이 아니었던 드레스 스콧 말이다. /17p
<법 앞에 평등한 정의!>
대법원 앞에 ‘그렇게 태평하게 써 붙여 놓은 <법 앞에 평등한 정의>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다 죽어 갔지만, 무죄든 유죄든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여기까지 와보지도 못한다’. 특히 흑인들은 ‘엄마들이 울면서 주님의 은총이나 할머니 집 대출 융자 2차 상환액을 외치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의 대부분이 유죄 판결을 받고 나면 그에 항소를 제기하거나 본인이 무죄임을 밝힐 어떤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야 마는 현실을 책 초반에서부터 작가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었다는, 본인이 선택하거나 본인의 ‘노-오력’으로는 되돌이킬 수도 없는 사유로 인해 죄인처럼 살아가는 흑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작가는 매 문장문장마다 신랄하게 꼬집고 있으며 이런 비판 하나하나가 미국의 역사와 흑인 탄압 사건, 인종 분리 정책, 인종 혐오에 대한 표현 등과 어우러져 읽은 동안에는 그야말로 ‘문학적인 꼬집기’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를 내가 옆에서 바로 지켜보고 있는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지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들. 햄프턴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 너무 가난해서 케이블 TV 값을 낼 수 없고, 너무 멍청해서 케이블을 보지 않아도 잃을 게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장발장이 나를 변호사로 삼았더라면 <레미제라블>은 6 페이지밖에 안 됐을걸. 빵 좀도둑질-기각.” 그는 곧잘 이렇게 말한다.
-
형사재판에 자신만만한 변호사 햄프턴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려는 주인공 미(mee). 처음부터 재판을 받을 미가 마리화나를 피며 몽롱한 상태로 있던 모습이나, 본인의 마음 속 생각과 그것이 실제 다른 사람에게 들리게끔 중얼거리는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던 나. 그리고...
아버지는 내게 주머니에 1달러 지폐를 잔뜩 꽂고, 최신 헤드폰을 쓰고, 목에는 힙합 금목걸이를 걸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혼다 시빅의 바닥 매트를 웨이터가 타월을 걸듯이 팔에 걸치고 근처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교차로에 서 있게 했다. ... 아버지는 구경꾼들 앞에서 나를 쳐서 쓰러뜨렸는데, 그 구경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 날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아버지를 도와 팔꿈치로 나를 가격하고, 레슬링 선수처럼 집어던졌다. ... 아버지는 공격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타주의 실천을 위해 힘을 쓴 뒤라, 얼굴은 땀범벅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있었고...
-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을 본인의 심리학 연구를 담은 논문의 생생한 증거이자, 이론의 결과물로 생각한 채 미의 탄생 이후부터 본인의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온 순간을 아들은 단지 연구를 통해 본인의 이론을 증거할 연구 대상으로만 여기고 대할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너무 끔찍하고 읽기 힘들었다.
인종차별은 현실적으로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백인과 흑인은 절대 통합될 수 없는 것 아닐까... 미는 그 생각으로 <인종 분리>를 떠올리며 적극적으로 ‘그들만의 공동체 감정’을 형성하는 것이 더 빠른 것 아니느냐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리한 생각이지만 왜 그렇게까지 생각할수밖에 없었을까. 아, 저 생각이 도출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끄덕이며 납득할 수밖에 없는 장면장면...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이는 비단 흑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서로가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타고난 생리적 특질로 인해 차별받는다면 그는 너무 슬픈 일 아닐까 여기는 동시에 왜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 교류의 시대에도 이런 차별과 비공감은 여전한 것일까... 읽으면서도 못내 안타까운 느낌이 계속 들었던 폴 비티의 <배반>.
흑인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때는 우리가 정말로 뭔가 잘못했을 때뿐임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흑인이지만 동시에 무죄라는 인지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교도소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
읽는 동시에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철학과 미국 전반의 역사, 인종차별과 우월주의, 광고나 쇼 혹은 유명인사의 이름 등... 사소한 것부터 어려운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문화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이 내용을 한 번 틀어놓거나 꼬아놓음으로서 조소 혹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듯한 '블랙 코미디'를, 각주 없이는 당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부족함이지만 좀 더 능동적인 독자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책. 그런 의미에서 맨부커상 심사위원회의 심사평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고 공감되었다.
문학은 진정 편안하기만 해선 안 된다.

-
모든 사회적 금기와 정치적 올바름을 건드려,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책이다. 문학은 읽는 이에게 편안하기만 해선 안 된다. 진실은 아름답기 어려우며, 읽는 이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한다. 이 책은 너무 재미있고 고통스럽다. 이것이 진짜 <우리 시대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