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별한 너와 나 - 대체불가한 것의 품격
<나는 예술이야>
나는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나는 매일 근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 작품이 근사하게 보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예술 작품이란 보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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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 예술 작품의 현존 이유라고 했을 때, 누군가에게 나는 오늘 하루 어떤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을까?
작품을 작품답게 하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작품이다'라고 느껴지게 하는 요소에는 그 작품의 타고남도 있겠지만 상대에게 느낌을 전달하는 표현 방식이나 은연중 드러나는 그의 사고, 태도, 습관도 한몫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와 나의 용기>
지친 하루의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내일 다시 해봐야겠어." 라고 말하는 용기, 비겁하게 도망을 치다가도 머뭇거리며 다시 뒤를 돌아보는 용기, 막막한 마음에 주저앉아 울고 난 뒤 다시 주섬주섬 자리 를 털고 일어서는 용기, 어이없이 변해버린 사랑에 마음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고서도 다시 사랑을 믿어보는 용기, 지난날의 부끄러운 순간들을 인정하고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용기. 보통의 우리들이 가진 아주 특별한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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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호되게 당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고 부끄럽고 떠올리면 괴롭지만 또 한 번 손을 내미려 하는 어찌 보면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에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는 그 태도를 <용기>라고 칭할 수 있는 그 시선은 되려 너무나도 힘들고 견디기 속상하고 아팠던 시간들을 감내한, 아니 감내해 본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과 '공감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새삼 생각해보는 밤.
<쓸모 있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
나의 '필요'가 꼭 '쓸모'와 동의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굳이 '쓸모'는 없을지라도 곁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 좋은 것도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세상에 있는 것 만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에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함부로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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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꼭 연락을 일정 시간 이상 신경써서 하지 않아도, 예쁘고 좋은 옷을 입거나 공들여 화장하지 않아도, 생각이 날 때나 힘이 들 때 툭 연락하고, 트레이닝복 혹은 집에서 편히 입는 반팔에 무릎 조금 나온 바지와 슬리퍼 직직 끄는 차림으로 "야 나와" 해도 마치 어제본 것처럼 나와주는 친구들과, 못생겼다 타박해도 예쁘다는 눈빛으로 보는 부모님과, 어떤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연인이 있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고 내가 쓸모있어서가 아니다.
<나에 대한 정의의 품격>
그릇 안에만 있어서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출렁이며 밖으로 넘쳐흐를 때, 비로소 사람들은 나를 '정의'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보여주는 웃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나를 규정하는 것들입니다. 나의 품격있는 '정의'를 위해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릇의 품격이 아니란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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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표현할 수 있는 '정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다. 실은 여자라는 젠더도, 경기도에 산다는 지리적 위치도, 어떤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학과에 소속되고, 어떤 회사에 취업했다는 그 흐름도 실은 '온전한 나' 자신을 표현해내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정보에 불과하다고. 실은 나를 표현하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노력을 하고,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살아낼까 하는 기대는 또 어떻게 가지고 있나 하는. 정말 '나만의 생각'이 중요한 거라고.
<진짜 샤넬>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언제나 남들과 달라야 한다." 20세기 초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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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아와
대체 불가능한 독특함, 개성... 이 둘은 한끗 차이 아닐까.
<사자는 하이에나를 질투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신감은 애초부터 자신을 그 누구와 비교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남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잘 알기에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주위의 상황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이에나가 사자 주위를 돌며 아무리 기괴한 소리로 킬킬거려도 사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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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자신감은 꾸준한 연습과 시행 착오를 거쳐왔던 시간들, 노력 여부가 합쳐지면서 더욱 단단하고 커지는 것이라면 책에서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그런 나 자체가 괜찮은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감이라는 시각. 재미있는 시각이다.
<나의 구원자는 바로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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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있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은 답을 외부에서만 구하려고 했었는지. 현자가 썼다는 글귀와, 종교와, 수많은 투덜거림 혹은 상담 속에서 내 마음을 대면한 적이 실은 몇 번이나 있을까?
<나에 대한 예의>
남에 대해서는 한껏 할 도리를 다하면서 나를 대하는 일에는 '그냥 대충하면 돼.' 하고 넘어갑니다. ...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면서 자신의 못난 점은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며, 남의 가난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 하면서 나의 가난은 단 한순간도 그 비루함을 참을 수 없고, 남을 위해서는 아무리 귀찮아도 오첩반상을 차려내면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자신을 위해서는 차가운 편의점 김밥이 전부라면, 나는 나의 인생에 사과부터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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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최선을 다해 상대를 대하려 노력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이렇다 저렇다 할 평가를 내릴 필요가 없었기에 느긋하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실은 그 느긋함은 무책임함이면서 동시에 자기 존중이 없는 삶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특히 최근에 회사 자리 이동과 세미나 준비, 정산 같은 일들로 무척 바빴는데, 추석 명절이 중간에 껴있어 내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요청이 들어오면 다른 일들을 같이 쳐내주기 바빴고, 결국 추석이 끝나고 한 주 내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 내 일을 해내야 했다. 이외에도 나를 위해 쓰지 않은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실은 나는 나 자신을 존중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존중하며 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책 속 글귀가 와닿았다.
<가끔 나의 개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사소한 것들>
때로는 그저 먹고 자고 해도 괜찮아요. 누가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아요.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요. 내 덩치가 크건 작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싸워야 할 상대를 만나면 용감하게 덤비고 보는 거예요.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지간에 귀여움을 떠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내요.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요. 세상은 궁금한 일과 궁금한 사람 투성이에요. 낯선 이에게조차 다정하게 굴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집에 오면 무조건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가서 반갑게 맞아줘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건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을 파고드는 것만큼 좋은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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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보며 떠오른 사소한 깨달음이라지만, 은은하게 마음 속에 있던 기억들을 건드리는 글귀였다. 아주 어렸을 땐 아빠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문 앞까지 나가서 해맑게 맞이하곤 했었고, 지금보다 타인에게 좀 더 마음이 열려있었을 이 때엔 거절당할 두려움에 움츠러들기보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손을 내밀어서다.
최근 러닝이 끝나고 서울숲 한 켠에서 쉬고 있는데, 태어난지 네 달 되었다는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의자에도 인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인사하고..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해 마구 돌아다니다 나에게도 다가와 애교를 부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결같은 반가움과 행복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강아지의 태도에서 사소한 기쁨을 다시금 되찾아야겠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