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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초호화 스카이버 금장 에디션) - 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페스트>는 소리 없이 접근해 사람들을 장악한 질병, '코로나'가 만연한 사회에서 급작스럽게 판매량이 증가했다. 왜 이 책이 그렇게도 인기가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불러온 공포 때문에 이렇게 책이 미친 듯이 팔려 나간다고? 물론 바이러스 책처럼 현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책들의 판매량이 급부상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이런 책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마는 고전, 그것도 제목이 '페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나 손길을 준다니 (개인적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수차례 읽으려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던 이 책을 드디어 펼친 뒤, 이후 일주일 간 나는 수차례 몸을 떨어 가며, 책이 읽기 힘든 순간과 감정을 몇 번 겪은 뒤에야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끝까지 한 글자씩 곱씹어 가며 읽은 시간은 27일 새벽 2시. 쉽사리 넘길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느라 시간을 오래오래 잡아 먹었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가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외'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그 자신의 이야기를 쓴 건 아니었을까, 페스트에 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진 뒤에야 이 책을 써 내려 간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세밀하게 저술한 책이었다. 이 사람, 카뮈는 이 글을 쓰면서 그 긴 새벽들을 어떻게 지새웠을까. 그의 요동쳤던 감정을 나누고 싶기만한 감정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다. 질병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숨이 가쁘다. 계속 말하게 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수작'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집중해서 보아야 하는 부분, 그리고 책의 초반부에서부터도 두드러지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자 장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누가 이 책의 서술자인가" 라는 질문이다. 책에서는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지만(그렇다고 무슨 OOO연대기, 이런 느낌은 또 아니다), 이 인물 중에서 누가 서술자일까를 유추하며 읽다 보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나는 처음 리외가 서술자라고 생각했다. 이 서평을 읽는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게 될까? 정답은 책의 후반부에 있다. 그 인물의 시선 말고도 여러 시선들이 등장하는데, 생각보다 답을 찾기 쉬울 수도, 또는 어려울 수도 있다.

독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의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 외에도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 해충 박멸 관련 부서의 메르시에 과장, 예수회 신부 파늘루 씨, 코타르 씨, 관찰자이자 호텔 투숙객 장 타루, 예심판사 오통 씨 가족(까만 생쥐같이 자그마한 아내와 영리한 푸들처럼 차려입은 어린 아들 필리프, 딸 니콜), 오랑의 의사협회 회장 리샤르 씨, 시청 서기 조제프 그랑, 노(老)의사 카스텔 씨, 도지사, 호텔 지배인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야기의 곳곳에서 등장하며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숨쉰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을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한다. 몰이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페스트를 몰아내는 것보다 본인의 일상에서 떠나버린 무언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과거의 평온한 일상. 다시 볼 수 있을 줄만 알고 가벼운 눈인사나 입맞춤으로 떠나 보냈던 가족과 연인. 햇빛 아래에서 편안하게 즐겼던 해수욕 같은 것들을 더 먼저 기억하고 아쉬워하고 몸부림친다. 종내에는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해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절망해 버리는 모습이 또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우리가 1단계와 2단계를 넘나들면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방역 당국의 조처는 잊어버린 채 온갖 모임으로, 술집으로, 길거리로, 마스크 없이 방황하고 있는 동안... 또 누군가는 병상에서 싸늘하게 죽음을 맞고 있다는 현실을 잊는 것처럼 말이다. 뉴스 기사에서 사망자가 떴다는 보도도 이제 누군가에게는 그저 수치에 불과한가, 생각하면 참담하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에서 자유롭지 않고, 한국을 벗어난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감염자와 사망자 수치가 집계되고 보도되고 있다. 마치 <페스트> 속 간균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재현한 건 아닐까 생각하면 무섭기조차 하다. 이런 시기,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 내가 이 책을 다시 곱씹는 날. 그 날 나는 과연 코로나와 마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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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에 맞서 투쟁하던 이들이 조금씩 피로에 무너져 탈진했을 때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 사건이나 타인의 감정에 대한 무관심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방치하는 나태함이었다. 그들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거나 힘에 벅차 보이는 모든 행동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점점 더 자주, 자신들이 세운 위생 규칙에 소홀해지고, 스스로 시행했어야 할 소독 조치들을 까먹고, 심지어 페스트 환자의 집에 감염 예방 조치도 전혀 않고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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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점이 진짜 위험했다. 페스트와의 투쟁에 힘을 쏟을수록 그들은 페스트에 취약해졌다. 결국 그들은 운에 내기를 건 셈인데, 운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242~243pp.)
이 서평은 리뷰어스클럽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