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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에서 온 아이 ㅣ 큰 스푼
이규희 지음, 백대승 그림 / 스푼북 / 2020년 6월
평점 :

"강우는 그저 이쪽도 저쪽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죽고 죽이는 전쟁이 죽도록 미웠다."
한국 전쟁. 6월 25일에 일어난 이 전쟁이 벌어진 지 70년이나 되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아직도 휴전 국가인 우리나라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뉴스를 비롯하여 신문 기사,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오고 있다. 24일, 어제 장진호와 평남 개천, 평북 온산 등지에서 전사한 국군용사 147위의 유해들이 고국땅으로 돌아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았을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아른거리지 않았을까.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을까. 휴전 상태이긴 하지만, 전쟁을 몸소 겪어 보지 못한 우리 세대는 감히 이렇다 추측하는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요즘 아이들은 전쟁이 무어라고 여길까.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면 전쟁을 어떻게 그려 냈을까? 미화할까? 혹은 아주 적나라할까?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어느 정도까지는 잘라 내기도 했을까? 누구의 입장과 시선으로 썼을까? 책을 읽기 전에, 특히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면 더욱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고 읽게 된다.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느냐에 따라서도 이야기의 결은 아주 달라지기에. <장진호에서 온 아이>는 장진호에 살았던 '강우'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한국 전쟁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시간 순으로 저술된 동화이다. 아이의 시선이기에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적나라하지도, 전장 한복판의 참혹함이 드러나지 않는데도 책을 읽는 내내 이곳저곳에 많은 사람의 슬픔이 묻어난다. 1950년은 참으로 그러한 시대였다.

장진호는 한때 아이들의 웃음꽃이 가득한 놀이터였다. 그러나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이 벌어지고, 이곳에는 아이들의 발자국과 썰매 자국 대신 군인들의 발자국이 찍히기 시작한다. 총소리와 대포 소리, 날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날마다 장진호 아랫마을인 하갈우리를 뒤덮었고, 미군과 중공군은 장진호를 에워싸고 서로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다.
삼팔선이 가로막히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사이좋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공산주의를 좋아하는 무리와 싫어하는 무리로 나뉘더니, 아이들마저도 편이 갈리고 말았다. 강우 가족 역시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함흥목재'를 빼앗기고 형까지 강제로 인민군에 징집된다. 아버지 역시 인민위원들에 쫓겨 달아나다 인민군에 끌려가셨고, 할아버지는 인민재판 중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만다. 할머니는 돌아올 가족 생각에 피난길에 오르지도 못한 채 홀로 고향에 남았고, 강우는 어머니, 동생인 강희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길을 떠나다 다리가 끊어져 졸지에 혼자가 된다. 그리고 길고 긴 피난의 여정이 시작된다.
한 뉴스 기사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이제 북한에 남은 국군포로는 대부분 90대라고 한다. 몇 명 남지 않았다고도 한다. 휴전이라는 말에 가리어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버렸다. 삼팔선으로 갈린 남한과 북한. 불타 버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대남 전단 살포. 복잡한 사건사고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쟁의 이면에는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이 실은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형이고 오빠... 가족이라는 사실이 <장진호에서 온 아이>를 읽으며 한번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 비록 아이들이 읽는 동화이지만, 오히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의 모습이 더 적나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같은 시기이기에 더더욱, 이 동화 안에 이규희 작가가 담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손과 발이 추위에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피난길에 올랐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슬픔, 두려움, 그리움이 이 동화 안에 녹아들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