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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ㅣ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기획: 안전가옥, 발행일: 2020년 4월 13일, 페이지; 166쪽
인스타그램에서 연인에게 맞거나 협박당했던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 낸 '아리' 작가의 그림도, 네이버 웹툰에서 아버지에게 친족 성폭력을 당했던 딸의 경험을 그린 <27-10>이라는 작품도 본 바 있었는데, 이 두 작품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무겁게 느끼게 해 준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한 편이 그저 듣고 넘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관심을 가질 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도 이 작품들을 통해 보기도 했고.
그래서 이 책을 집어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소설은 소설로 읽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고 그냥 탁 덮어 버리고 말기에는 이 소설이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칵테일, 러브, 좀비>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 집에 살거나 / 내 옆집에 살거나 / 길을 지나가다 보는 어떤 이의 회고록일 수도 있고, 또 신문이나 방송에 나는 단신(짧은 보도)이나 기사, 뉴스에서 보고 넘어가는 일이기도 하며, 실제 벌어지는 일에 허구의 것이 가미된 상상력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한국이라는 공간에 사는 여성, '나'라는 인물이 겪는 일들이 크고작은 공감대를 형성하게도 하고, 회사에 다니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사는 중년으로서의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도 되고, 가족을 부양하며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지친 '어머니'의 쓸쓸한 상을 녹여 냈다는 데에도 시선이 간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못 마음이 불안하고, 안타깝고, 힘들어지기도 했다. 아마 그 인물상이 저 멀리 허구의 것에서 따온 것만은 아닐 것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야기에는 깜깜한 골목길을 걸어가다 뒤를 여러 차례 돌아보았던 내 모습도 있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고단하게 일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있고,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 지친 몸으로 함께 먹을 저녁상까지 보아 내 오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기억'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힘듦과 고단함만 느껴지는 것 같던 '일상'의 모습에서 역설적이게도 따듯하고 좋았던 기억까지 함께 떠올리게도 된다. 이 작가, 조예은의 이야기에는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같은 생각이라도 어떻게 글을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메시지는 다르기에, 나는 이런 작가도 있구나,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며 끄덕끄덕 글을 읽어내렸다.
요새 참 많은 사건 사고들이 터지고 있다. 계속되는 코로나19와 함께, 떠들썩하던 선거철이 조금 지나고 나니 속칭 N번방 사건이라 불리우는 성 범죄와 청소년 범죄, 이천과 고성에서의 화재, 엎드려 사죄하는 시공사 대표의 모습, 노모와 아이의 잔혹한 죽음과 한 달 간의 공백 동안 아무도 그들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현실, 노모와 아들의 살인에 대한 유력한 혐의를 받고 내연녀와 함께 붙잡힌 아들의 속보... 온갖 이야기가 뉴스를 휩쓸고 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안정적이고 영원할 것 같았던 가정이 한순간에 끝나고, 신뢰 없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또 그 사이에서 상처받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삶이란 뭘까. 책에 나온 이야기와 무엇이 또 크게 다를까. 책에서는 한때 사랑하였으나 술에 취해 의식을 반쯤 잃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고, 그 아들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다시 살해했다. 재개발로 여기저기 파헤쳐 놓았던 흙더미와 나무가 폭우에 무너져내려 하천과 주변의 땅이 모두 매몰되었다.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였던 회 한 점이 평생의 가시로 목에 걸려 있고, 적당한 가식으로 평범한 척 살았던 어떤 집에는 좀비로 변해 버린 아버지가 살고 있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사랑했던 남편이 다른 여성과 바람피는 것을 묵인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그려지고, 아들 '준영'이가 부모님의 이혼 후 불안 심리를 다른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푸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삶이란 정말 무엇일까. 한 손에 들리는 가벼운 책 한 권에 담긴 짧은 몇 가지의 이야기들은 실은 우리네 삶을 관통하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곳을 비추며 불편하게도 하고, 또 그 일부는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쉽게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한편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언제쯤 잘 구분하게 될까 하고. 동시에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울고 있을 누군가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누군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누군가, 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누군가 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 또 생각이 든다. 내 위치는 어디일까. 내 마음자리는 어디에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자리는 또 어디에 있는지, 그걸 나는 잘 살피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