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 하였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시대는 또 얼마나 행복하였던가'

헝가리의 철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이며 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의 말이다. 세상과 문학이 한 없는 순수함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가. 작가는 작품을 '작가의 영혼'이란 표현한다. 그러므로 다른이의 작품을 모방하고 도용하는 행위를 작가의 영혼을 짓밟는 파렴치한 행위로 모독이라 생각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가의 영혼은 어떠할까? 아마도 쥐스킨트는 이 소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통해 세상에 대한 길과 자신만의 소설에 대한 향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우 기형적인 삶과 모습을 가진 한 살인자의 내면은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과 좀더 아름다운, 좀더 완벽한 향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의 인생이다. 소설가의 인생도 그러하리라. 쥐스킨트가 살고 있는 현대세계사는 좌판의 썩은 생선냄새와도 같은 고약한 악취만이 풍겨나는 이데올로기들의 시장이다. 그 속에서 작가의 문학과 작품에 대한 열정은, 루카치가 말한 '별이 빛나는 창공'이 아닌 오직 억압과 굴레만이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에 좌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우리 80년대의 시절처럼 문학과 예술은 심의되어, 절단되고, 사장되고 꺽어지고,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은 펜을 꺽고 거리의 최류탄 가스에 몸을 던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쥐스킨트의 내면을 대변하는 그르누이의 향수에 대한 열정은 그와 닮아 있다. 악취만이 가득한 인간의 울타리에서는 완벽한 향수의 완성은 고달픈 고행일 뿐이기에 인간을 떠나 도피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데올로기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결국 습한 동굴속에서 그르누이가 깨달은 것은, 다시 말해 쥐스킨트가 깨달은 것은 문학에 대한 완벽한 향수는 세상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쥐스킨트는 붓을 꺽고 칩거할 수도, 세상에 맞서 싸워 이겨낼 수도 없었으며, 완벽한 소설의 향수에 도달하였다 해도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에 매우 자포자기하지 않았을까. 결국 세상에 대한 눈속임에 고통스러워 해야만 했고, - 광장에서의 향수에 취한 사람들의 광경 - 완벽한 소설의 완성을 위해서 행했던 살인과 실험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도, 광장에서의 몽매한 이데올로기의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향기를 전혀 맞을 수 없는, 작가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없는 무력한 현실에 대한 것도 반성만이 남아있다.

고뇌하는 작가의 영혼은 결국 아무보잘 것 없는 묘지기들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듯이, '길'을 비춰줄 '별빛'도 없는 세상에선 작가의 영혼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일 것이다. 작가의 순수함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절망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향수에 대한 그르누이의 끝없는 열정과 쥐스킨트의 소설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 그렇게 아름다운 소설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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