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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나
스티브 헬리 지음, 황소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각성은 우연찮은 곳에서 시작된다.
소개팅 자리에서 글 쓰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허황된 꿈이라 했지만 어쩌면 나보다 더 진지한 지 모른다. 나보다 더 많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엔 일상에도, 자기 삶에도 꾸준히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
예상밖의 진지함을 도도한 척, 당당한 척 넘겼지만 실은 폐부 깊숙히 찔렸다는 거.
그러니까 각성이랄 것도 없이 누구든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내 스스로 내 폐부를 찔렀을 지 모른다.
다만 그게, 전혀 생각지 못한 자리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해맑은 표정이라서 그렇지.
아마 그래서 였을 거다.
아마도 그냥 휙 넘겼을 책 소개, 굳이 들어가서 보고 바로 산 것은.
그렇지 않았다면 대필 작가 출신 소설가의 흥망성쇠기,
그 리얼리티 때문에 더 피했을 지 모른다.
아무튼 워크숍 오가는 기차 안에서 딱 적당한 내용인 것 같았고, 진로에 대한 혼란에 휩싸인 이 시기에 적절한 것 같았다.
예상보다 책은 훨씬 재밌었다.
통쾌했고, 실용서 혹은 작문법 책보다 유용했으며, 짜릿하다가도 반성케했다.
소설 속 소설의 문장은 나무랄 데 없이 '서정적'이었다.
비록 번역투가 걸리긴 했어도.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빼어나도 헐리우드, 방송작가 출신이라는 건 못 속이는 모양이다.
출신을 못 속이는 게 아니라, 습관을 못 속이는 거겠지.
통쾌한 이야기 후 안전한 봉합.
결국은 문학은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고, 도발은 결국 미숙한 치기라는 것.
너무 안전하게 현실 속 문학권력, 출판권력의 정답 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그래서 실컷 신나게 읽고는 마지막에 힘빠졌다.
그래도, 누군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그 길을 찾는다면, 나는 아마 이 책 추천할 꺼다.
글을 쓰려고 작정하고 시간을 만들어도 쓰지 못하게 되는 현실적인 구차한 핑계들,
글로 도망치는 것조차 비루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현실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글쟁이가 누릴 달콤한 환상, 은근과 끈기로 써대기보다 그 환상의 단맛 먼저 즐기는 나약함
차마 남사스러워 일기에조차 담지 못하는 그 미끌거리는 마음들이 명랑하게, 가볍게 담겼으니까.
한 번이라도 '작가'라는 이름을, 그 타이틀이 주는 권위와 부와 우러름을 마음으로나마 탐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나약함, 비굴함, 허영 따위 모두모두 이해하고도 남을 테니.
그러니 때로 각성은 아프지만, 즐겁기도 한 일이다.
그런데, 각성하면 뭘 해. 삶이 안 바뀌는 걸.
2010. 7. 17~18
> 피트 타슬로(나)의 <회오리바람 장례 클럽> 중에서 (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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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란 그런 거야." 그녀가 말했다. "마음속에서 파르르 떨리는 거, 그게 노래야. 작은 새의 날개처럼 떨리는 거."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그는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녀가 느낄 수 있을 만큼 보드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란 그런 거야. 너의 심장을 한 마리 새로 변하게 만드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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