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동경하는 또 하나의 인간유형은 안정된 사람이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균형잡힌 이들. 그들 속에서 안일함 혹은 안주근성을 발견한다면 잠시 실망하기는 해도 이내 또 동경한다. 절대 안분지족하지 못하므로 언제나 불만이 많은 게 바로 나이므로... 더러는 말리고 더러는 우려속에 지지해준 생활을 선택한 이후 더러는 맘에 드나 또다시 안주하지 못하고 일어서버린 내게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차(궁핍해질때마다 불만은 더 커지고) 에너지는 불균형한 원자들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는 한마디가 귀에 팍 꽂혔다. 


지난 해 가을의 막바지 순간 혹은 겨울의 초입, 나도 회사도 겨우 숨돌릴 무렵 정말 어렵게 퇴사희망을 내보인 직후 내 가방 속에는 가을내 미뤄두었던 책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들어있었다. 가을내 들고 다니던 미완의 보도자료와 팩트시트가 아니라.

추천에 앞서 선배라는 소개가 없었다면 기자가 재밌다고 한 글, 더욱이 공 공포증이 있는 내가 야구소설을 들었을리 만무하다.

프로야구 시즌마다 아빠가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홈런과 도루의 사전적 정의 정도밖에 알지못했던 내게도 삼미의 야구이야기는 참으로 재미났다. 야구는 인생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감했으며, 책을 읽는 내내 장외홈런을 지켜보는 순간의 두근거림과 짜릿함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마치 삼미는, 이 소설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싶었다. 대단한 위안이었다. 작명에 약한 내게는 인호봉, 금광옥, 정구왕, 감사용, 김바위, 장명부 등 실재했다는 선수들의 캐릭터스러운 이름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오랫동안 '회사 가기싫어'를 입에 달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만두려니 아쉽고 막막했다. 경제적 불안감보다 일에대한 아쉬움이 더 컸고,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떠나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분야를 지망한다는게 더 없이 벅찼다. 하지만 어차피 승률은 1할2푼5리,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치고 싶은 공을 찾아 한번쯤 떠도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혹 어느순간에는 비웃음거리가 되어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불안함은 여전했다.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너무 일찍 프로의 무대로 뛰어들었다는 것, 그래서 덜 익은 과육의 떫은 맛을 톡톡히 본 것이었다. 나도 너무 일찍은 아닐까? 나도 덜 익은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에 불안.. 하지만 삼미를 아는 아빠와 그는 응원하는 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삼미를 높게 쳐주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래저래 그냥 관심이 갔다. 한동안 나를 들뜨게 하고 위로해주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한 선수의 이야기인데다, 이범수의 사람좋은 웃음에 괜히 한번 보고 싶은 영화였고, 2년쯤 전부터 이 영화 촬영소식을 간간히 알려오던 동기의 이름을 스크롤에서 찾아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친구를 만나서도 밥 먹고 수다 아니면 딱히 할 게 없어 불쑥 보러간 영화였지만, 소설을 읽을때처럼 맘껏 신났다.

감사용, 감사용, 감사용... 당신에게 정말 감사해용~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구박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정말로 진지하게 열심히 땀을 흘렸다. 한번만 자신을 써달라고 부탁했고 포기하지 않았고, 허풍을 칠지언정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 앞에 당당해지려 했다. 믿음을 보이는 사람은 진심도 알아줄 터이므로..

요 며칠 내 머리를 맴돌던 생각, 떠난 나를 여전히 필요로 하며 찾는 이들속에 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답을 알수없는 그 생각에 우울하던 차, 감사용이 왼손투구로 던진 공이 내 머리를 툭 건드린 기분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면 됐다고. 그걸로 됐다고.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한번도 제대로 땀흘리지 않았으니까! 내 꿈을 위해서 진하게 땀흘린 적 없으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나를 믿는 사람,
이 차이를 알게 되었으니 가을 핑계를 댄 우울함과 평생 지녀온 우유부단함과 게으름은 잠시 접어보자고!!!!!!!
잘한다! 할수있어! 괜찮아!를 연신 외치던 감사용 선수처럼!!

 

 

 

 
2003. 가을 / 200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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