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근육 켜켜이 쌓인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내려앉는 눈꺼풀에도 불구하고

잠들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익숙함 탓인지 모른다.

 

사실 서점에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언니 만나서 달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굳이 사무실에 앉아있다

서점으로 간 것은,

갑자기 널럴해진 일과가 심심하고 지루했던 탓도

아는 사람의 책 정도는 서점에서 구입하는

성의를 보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어떤 위로같은 걸 기대했던 거 같다.

근육통이 보장해 줄 달고 깊은 잠에도

굳이 책을 손에 든 것은 아마 그 때문인가 보다.

 

 

내가 아는 서령언니는 좀 까칠한 사람으로 기억되는데,

문창과 사람 특유의 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촌스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웃기지만 까칠하고 따뜻하지만 냉소적인. 그래서 마음에 담기는.

문창과 사람 특유의 그 집요한 구석들.

언젠가부터 어떤 소설들에서는 이물감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그런 게 없다.

까칠하고 거치적거리고 질척대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작가가 소설을 그렇게 느껴서 그런지 '다정했다' '내 벗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안아주는 듯. 

선배들 글이야... 대체로 늘 그랬지만,

(한때 내가 받았던 유일한 칭찬이었던) 우리 말을 찾아쓰려는 가상한 노력과 상징이 살아있었고,

빠르게 읽어넘기는 눈길과 달리 손은 자꾸만 페이지를 말아쥐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페이지 페이지마다 손가락 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한번 날렸다고 멈춰버린 사전 만들기, 다시 시작해야겠다.

 

먹먹하던 요 며칠, 편안하게 잘 읽었다.

요 노란 책 덕에 잠시 잠시 편히 쉬었던 듯.

 

2007. 4.


책 속으로

"단 것들은 기억을 희미하게 해줘. 피로하고 아픈 것을 잊게 해준다는 거야." (108쪽)

/ 무화과잼 한 숫갈

 

다들 외는 노랫말을 나만 모르는 기분. 공연히, 서운해졌다.(178쪽)

지나간 시간의 대부분은 왜곡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혹은 그 시간들이 가여울 때가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나를 자꾸 간질였다. 나는 몸을 긁었다.(179쪽)

/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사소하거나 혹은 길게, 자주 떠났다. 낯선 풍경과 차가운 사람들을 한참 본 후 돌아오면 오래 비워두었던 광화문 집에서는 먼지가 풀풀 날렸다. 떠나기 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사진이나 지우지 못한 이메일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의아했다. 그 곳에서 내가 버리고 온 것은 그럼 무엇이었던가.

....

얼토당토않은 사랑에 또 빠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아주 오랜후에도 소설ㅇ르 쓰고 있을 것이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그리운 것은 여태 그리울 것이니까. (285-286쪽)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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