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늘 피범벅이던 위화가 이번엔 똥칠 가득한 얘기를 들고 나왔다.
피와 똥, 어찌나 원초적이고 냄새 가득한지. 근데 그게 본질이다. 인간은 결국 핏덩이로 태어나 배냇똥을 싸며 죽어가는 존재니까.
동네 공용화장실에서 여인의 아랫도리를 훔쳐보다 똥통에 빠져죽은 이광두의 아비를 건져낸 인연으로 송범평과 이란은 결혼을 하고, 이광두와 송강은 형제가 된다. 죽고 못살던 이광두와 송강도 그 열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환경에 순응하게 된다. 배려가 앞선 오해, 혹은 질투 내지 자격지심. 그들은 그렇게 후회할 인생을 살고 만다. 열심히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으되 남은 게 없는 삶. 이광두는 형수와의 마지막 불륜을 신나게 준비하다 형의 자살 소식을 듣고, 송강은 아내와 동생의 추문과 유방확대수술의 부작용과 폐병으로 망가진 자신의 몸을 비관하며 기차에 깔려 두동강이 난다. 아름다운 형제애고 나발이고, 스무살 이후 그들의 삶에 기쁨이 있었을까. 그렇게 만들어버린 현실이 과연 세상의 변화 탓만일까? 물질의, 물질의 의미와 물질의 가치가 너무나 빨리 변해버린 세상 탓만일까? 여전히 혼란스러운 가운데 똥통에서 시작된 위화의 형제이야기는 화두 하나 던지고 끝이 난다.
어쨌거나 위화는 훌륭하다는 건 이미 깔린 전제였으니 접어두고.

작가노트에서 위화는 상상력과 통찰력,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어쩌면 그는 진정으로 현실에, '지금 여기'에 단단히 발딛고 선 작가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토록 피비린내나고 쿠린내나는 비루한 인간사를 큭큭거리며 읽을 수 있게 그릴 수 있는 것일게다. 어쩌면 정말이지 냉정하고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외모와는 달리^^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말하는 것만큼 쓸 수 있기를, 글 쓰는 것만큼 살 수 있기를.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그리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 저녁노을을 한없이 아쉬워하지만은 않기를.

의지에서 소명으로, 어쩌면 한 끝 차이, 같은 고민을 다르게 바라보던 그 계절에 위화는 참으로 시기적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꿈, 다른 시각의 출발. 2007. 7



>책 속으로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3권, 206쪽

<작가노트>
작가 사이의 영향이란 햇빛과 나무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이다. 나무는 햇빛의 영향을 받아 자랄 때 나무의 방식대로 자라는 것이지 햇빛의 방식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건강한 영향이란 이렇게 영향을 받아서 더욱 자기다워지는 것이지 갈수록 영향을 준 남처럼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12쪽

'상상'이라는 단어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 이 낱말에는 어떤 구속도 없고 자유자재로 하늘을 훨훨 날듯 자유롭습니다.

저는 하늘로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하늘에 대한 상상은 매우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하늘이 끝없이 넓고 깊어서, 자신도 모르게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 잿빛 구름이 드리운 어둑어둑한 흐린 하늘, 노을빛이 밝게 비추는 하늘,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하늘, 구룸이 떠다니는 하늘, 눈비가 흩날리는 하늘..... 하늘의 변화무쌍함은 우리의 상상력까지 변화무쌍하게 만들곤 합니다.

거의 모든 민족이 만들어낸 천상계는 인간 세상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지만 서로 호응을 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경험 속에서 하나의 천상계를 상상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서양의 신과 동양의 신선들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만큼 그들은 인간 세상의 욕망과 정감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먹고 입는 걱정을 하지 않고 모두 갑부이며 명예와 이익을 동시에 얻는 현명한 명인들입니다. ... 제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신화와 전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에서 신선들은 늘 하늘에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무슨 일인가를 도모합니다. ...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신선들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또 어떻게 하늘로 올라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신화와 전설을 읽을 때 늘 소홀히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서술자가 서술자로서의 미덕을 갖추었는지, 또는 이야기의 서술자가 진정으로 상상의 함의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사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17-18쪽

사람들은 곧잘 문학에서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통찰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상상이 비상할 때 그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통찰력입니다. ...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통찰력의 도움 없이는 그나마의 상상도 터무니없는 망상이 된다고 말입니다. 상상력과 통찰력이 훌륭하게 결합해야 단테의 화살을 쏜느 시구, 보르헤스의 녹음테이프, 그리고 유르스나르의 붉은 스카프가 있을 수 있고, 여기서 말한 문학 속의 현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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