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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설 연휴, 아빠랑 앉아 분리수거를 정리할 때던가? 한과와 과일을 먹다 지쳐 배를 두드릴때 던가?
영화정보프로그램에 <워낭소리>가 나왔다.
나야... 뭐,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니 TV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던 게 당연했지만...
아빠가 지극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던 영화 <식객>의 한 장면,
성찬의 소가 도살장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성찬을 돌아보며 흘린 눈물 한방울,
을 기억하시며 흥분하시던 아빠였으니.
(심지어 아빠는 <식객>을 극장도 아니고,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프로젝터로 틀어준 걸 보셨단다.
영화 보다 얘기 하다 누군가는 전화도 받고 누군가는 끽연하러 나가는 그 웅성웅성한 사이...)
그렇다. 학교에 다녀오면 낫부터 갈아들고 지게 메고
'속골'(이라고 쓰고 '소꼴'이라고 읽는다)로 '소 꼴'(이라고 쓰고 '소꼴'이라고 읽는다)을 베러가야했던 아빠의 유년.
내가 기억하는 우리집 외양간은 처음부터 창고였지만,
내가 아직 젖을 빨 무렵에만 해도 그 외양간에서는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아직도 <워낭소리>를 못 본 우리 아빠는 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공감, 흥분, 관심, 혹은
소꼴베기에 진저리를 칠 것인가. 자못 궁금하지만... 아빠는 요즘 너무 바빠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으시단다.
그리고 엄마의 무심한 관심.
역시나 너무 바쁜데다, 명절에 딸래미가 끌고 가지 않으면 극장갈 엄두도 못 내는 엄마도 오늘 드디어
"<워낭소리> 나두 봐야지." 하신다.
그렇다. 두 딸 대학 보낸 후 아빠 몰래 소테크를 시작했다가 IMF 탓에 소값이 떨어져 손해봤던 엄마다.
외가 외양간에서 침 질질 흘리며 여물을 잘도 먹던 송아지 두마리가, 소 두마리가 되더니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엄마가 얼마를 손해보고 얼마를 속을 끓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워낭 2개가 집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주말에 엄마 집엘 가보면, 베란다 창문 잠금쇠가 걸려있다가
벤자민 가지에 걸려있다가, 이름도 모를 가지가 무성한 어떤 화분에 걸려있다가
그렇게 워낭은 엄마의 빈티지 아이템이 되었고, 정성 들여 닦는지 투박하던 표면이 날이 갈수록 반짝였다.
그러다 언젠가 워낭 1개가 사라졌고(누군가 멋지다며 인테리어용으로 분양받은 듯)
아직도 남은 워낭 1개가 거실과 베란다를 오가고 있다.
나는 그냥 영화를 보면서 미안했다.
많이 웃었고, 많이 흐뭇했는데, 그냥 왠지 모르게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자꾸 미안했다.
아마 미안해서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저 출연진 이름 좀 보게.
최원균 : 공경해 마땅할 어르신도 우시장에 가시면 "원균이~" 이렇게 불린다. 우리 막내 외삼촌도 원균인데 ㅋ
이삼순 :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로 삼순이란 이름에는 무조건 공감하고 볼 것
최노인의 소 : 아아- 이 적절한 작명센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