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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평점 :
내내 흘려듣던 갓등의 "지와 사랑" 가사가 문득 귀에 꽂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더니, 역시나였다. 아마도 어릴 때 마루 책장에 꽂혀있던 세로쓰기된 세계문학전집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역마와 도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가에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지, 끄덕끄덕 공감을 하면서도 작위적인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떠돌고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골드문트. 그 충동적임.
골드문트는 황금의 입(Goden Mouse)의 독일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골드문트의 다른 이름은 금구(金口)인 셈. 그는 처음부터 표현하는 존재로 명명되었다. 나르치스 역시 마찬가지, 냉철하고 차가운 머리로 끊임없이 자신 안으로 들어가도록 명명된 존재. 그 두 존재가 젊은 시절 충돌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이 온 일생을 노후며 죽음 후까지도 영향을 줘 서로를 깨치게 하다니. 아름다운 우정으로 포장된 이들의 관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종교와 에술의 관계이겠지. 종교와 예술, 이성과 감정, 머리와 마음, 그 모든 것 신앙의 이름으로 어우러질 수 있지.
골드문트와 明諸,, 그 이름의 유사성에서 문득 신이 나고 힘이 났다. 아... 이 주책맞은 소녀적 감성이라니! -_- 그래도 뭐, 살짝 기분좋았던 걸 어떻게 해? ^^
5월 초, 꽃 피고 새 울고 초록이 지천이던 그때 하필 서점에서 문득 떠올라 서가 사이를 뒤져 찾아낸 이 책 한권에 윤하와 그를 비롯해 나를 둘러싸고 지탱하고 있는 친구들, 각기 다른 무게감으로 묘하게 균형잡고 있던 그 축들이 모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속에 어우러졌다. 하필 이런 때에 이런 소설이라니! 게다가 갓등 2집. 이 무슨 조화람?이 라고 생각했다. 그때. 답은 글쎄, 아마도 5년, 혹은 10년 후쯤엔 알게 될런지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 미술이 문학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아마도 예술양식의 우월성을 설명하라면 본능 혹은 원초적임에 가까운 순서대로 무용>사진>연극>회화>문학(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예술대 열개과의 입학 성적과는 관계없이 내가 정한 우월 혹은 부러움의 척도가 한 때는 그랬는데, 그 모든 예술 양식에는 모두 구상이 들어가 있나 보다. 자연을 재현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하여 세계는 결코 어떤 방식으로든 투명하게 재현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없다는 것. 그래서 예술이 필요한 거고, 정신이 필요한 거니까. 절대순수가 될 수는 없어도 고양된 감상과 능력으로 순수를 지향할 수는 있을테니까.
결론은 "무엇이 아니라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지위가 아니라 지향을 따라야 한다는 것"
나를 둘러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무수한 교감이 수없이 말해준 걸, 이제야, 당신들의 그 소리없는 아우성과 500쪽 가까이 빼곡히 들어찬 단어들에야 겨우 이해한 나의 미욱함. 하지만 뭐, 이쯤에서 알게 된 것만 해도 천만다행. 알고 난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한 건 하나도 없다는 게 슬프지만... 어쩌면 나는 골드문트처럼 아직도 헤메고 있는지도. 집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처없이 떠도는지도. 아직은 그래야만 하는 시기인지도.
200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