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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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다.

오지게 재미만 날 것 같은 누군가의 부러워 배아픈 인생도 다가가 살펴보면

구석구석 얼룩진 눈물 자국 가득하고,

아퍼서 죽을 뻔, 기막혀 숨 넘어갈 뻔, 눈물에 익사할 뻔한 내 슬픔도

지나고 보면,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제법 코믹한 게 웃을 만하다.

자학개그일지언정... 아무튼 인생이란 게 그렇다.

그러니 채플린의 저 말은 인생의 정곡을 깊게 '쿡' 찌른 진리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멀어져도 희극이 되지 못하는 아픔도 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건사고가 그렇다.

아무리 웃으며 재치있게 넘기려 해도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지고,

아무리 명랑해도 지인들의 눈빛에 위로와 연민이 가득하고,

아무리 멀어져도 제대로 폐부를 찔러 아픈지도 모를만큼 독하게 아프다.

 

그런데 장 루이는 농담처럼 말한다.

천형과도 같은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들에 대해,

그 자신이 스스로 두번 죽었다고 할만큼의 절망에 대해.

아픈만큼 사랑했고 그 사랑만큼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을테니,

세상에 100%란 없듯 괴롭고 힘든만큼 행복도 코딱지만큼이라도 있었을테니

순도 100%의 아픔 혹은 절망은 아니겠지만

40년의 세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리 담담하게, 자타공인 적절하게 녹여낼 수 있었을까.

머리에 지푸라기만 든 아들, 같은 질문만 반복하는 아들,

그렇지만 거짓말도 할 줄 알고, 부모와 관계를 형성하는 놀이도 찾을 줄 아는 사람인 아들.

스스로 구걸을 위해 자/타해로 엉망이 된 몸을 공개하는 거지에 비유하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놀리면서, 그렇게 자학하면서.

 

벅찬 감동을 기대하며 가족여행에 맞춰 주문한 책이지만,

정작 읽은 건 여행이 끝난 후 지하철과 버스 안.

다 합쳐 1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다 읽어버린 짧지만 형언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이 이야기는,

그저 놀라움일수밖에.

즐거웠고 맛있었고 행복했던만큼,

이면에 자리잡은 (예상치못했던) 거대한 수렁.

나도, 우리도 그걸 넘어가며, 넘어가면서 저렇게 농담할 수 있을까?

너무 놀랍고, 너무 아파...

나는 차마 이 책의 맘에 드는 구절을 발췌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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