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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바람의 능선'도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찻집 한가운데-우리가 메인테이블이라 부르는 자리에 앉으면 넓은 창으로 겹겹한 가야산이 보이지요. 무덤처럼 솟은 두개의 봉우리, 그 사이 뒷편으로 완만하지만 달려가는 자세를 간직한 긴 능선이 창 이쪽에서 저쪽끝까지 이어진답니다. 그 능선에 취해서 제가 멋대로 이름을 붙여본거지요. '바람의 능선'이라고. 언젠가는 그 능선을 꼭 타볼려구요.
어제와 오늘, 위화의 <내게는 이름이 없다>라는 단편집을 읽었습니다. 위화는 1960년 중국 황저우에서 태어났구요, 서른셋에 처녀작을 발표했습니다. 장예모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혹시 보셨나요? 그 원작자가 위화라고 하네요. 작년에 우연히 <허삼관 매혈기>라는 기발하고도 눈물겨운 소설을 통해 위화를 만났지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 거기에서 느껴지는 해학과 깊이, 위화를 만나면 누구라도 그의 기지넘치는 말재간에 눈물겨워 하지 않을수 없답니다.
이번 단편집(1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음) 또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전반적으로 비슷비한 무게의 감동을 주는데 그중에 [내게는 이름이 없다], [난 쥐새끼], [왜 음악이 없는걸까], [벗], [두사람의 역사]등은 정말 잘 짜여진, 잘 쓰여진 단편입니다. 이문구의 발문에서처럼 저도 '허름해서 좋은 위화의 사람들'을 만나러 중국땅에 가보고 싶군요. 예측할수 없어 더욱 호기심이 나는 붉은땅에 말이지요. 그의 소설속의 문체와 문구들도 나를 아찔아찔하게 하지만 더 깊었던건 작자의 서문중 한 단락입니다. 옮겨 봅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내 글쓰기가 현실적 체험외에 또다른 인생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현실의 인생길과 동시에 출발하여 나란히 걸어간다. 어떤때는 겹쳐지기도 하고, 어떤때는 영 딴 방향으로 가기도 하면서 요즘 내 인생이 한창 완정(完整)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느끼기 때문인지 글쓰기가 심신의 건강에 이롭다는 말이 갈수록 믿을만하다고 생각된다. 글쓰기는 나로 하여금 두가지 인생, 즉 현실적 인생과 허구적 인생을 살도록 해주었다. 양자의 관계는 건강과 질병처럼 하나가 강해지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약해진다. 그러므로 나의 현실적 인생이 차츰 무미건조해지면, 나의 허구적 인생은 벌써 이상하리만치 풍부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