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ㅣ 문학동네 시집 41
박남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처음 박남준 시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건 그의 시집-<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에서 읽은, 최영미 시인의 발문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96년쯤으로 기억된다. '여하튼, 시인들은 다 사기꾼입니다!'라며 나에게 감상주의를 철저하게 통제시켰던 한 선배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선배는 그 당시 발표된 대부분의 시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시를 엄청나게 읽어대는 시 과식성 인간이었다. 애당초 눈물 많은 나를, 좀더 굳건하게 세우기 위한 배려의 말 이었음을, 그의 책장을 처음 본 날 알았던 것이다. 그해 여름 , 그의 서재를 정리하며, 시집들을 뒤적거리며 행복했던 한 때, 박남준 이라는 낯선 이름의 시인이 최영미의 도발적인 발문을 타고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렀다. 재행무상의 진리조차 파괴한다며 사랑을 맹세했던 그 선배 떠나고, 그의 서재도 나에게서 떠나고, 서로에게 할당된 삶의 울타리 안에서 허우적 거리던 때... 다시 박남준의 시가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는다>라는 이름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눈물과 슬픔을 넘어선, 부드럽지만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단단한 언어로. 밤이면 머리맡에 놓고 한줄 혹은, 한편씩 읽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밤이었다. 목에 턱 하고 걸리는 한줄을 얼르고 얼르다 선잠이 들었고, 그러다 문득 잠을 깨어, 베란다 창을 열면 거기 푸른 새벽이 내리고 있었다.

모악에서의 일상들을 그려낸 산문집 <꽃이 진다, 꽃이 핀다>도 얼마전 읽어 보았다. 부드럽고 섬세한 그의 모습 뒤로 흐르는, 강력한 에너지...자연과의 상생을 지켜내기 위한 단호한 모습들. 산속에서의 생활이 한순간 후루룩 타고 식어버리는 한때의 멋스런 행위가 아니였음을 모악산방 10년 세월이 그렇게 증명해 주었다.

이제, 박남준 시인은 정든 모악을 떠나, 지리산 자락으로 거처를 옮겼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쿵쿵 거리는 그 지리산을 바라보며, 그 자락에 총총 박혀있는 순박한 사물과 관계들을 바라보며, 더 굵어진 내면을 글로써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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