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결탁 - 40주년 기념판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연암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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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의지로 행운과 불운의 역학관계를 바꿀 수 있을까. 서로마 멸망 직후 활동했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을 가린 여신은 바퀴를 돌리는데 그 위에 인간의 운명이 놓여있다. 바퀴가 돌면서 인간의 운명은 변화를 거듭한다. 누가 되었든 눈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여신 앞에서는 평등해진다. 행운과 불운이 수시로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고단하고 한편으론 흥미롭고 역동적인 것일까.

 

1960년 초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사는 우리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는 중세사상의 기반을 닦은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나오는 운명의 바퀴라는 핵심 개념을 믿는다. 왕의 신임을 얻어 집정관이라는 고위직까지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역죄에 연루되어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채 쓸쓸히 감옥에서 최후를 맞이한 보에티우스에 감정이입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그네이셔스는 중세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던 수재였으나 그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다. 그는 점차 바퀴의 아래쪽으로 향하며 화려할 것만 같았던 삶은 심연으로 추락한다. 강의는 끊기고 그나마 구했던 도서관 일자리도 얼마 못 가 잘린다. 한 마디로 되는게 없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종교개혁 이후 계몽주의로 이어지며 이제는 돈이 신이 되어버린 세계를 통탄해하며 자신의 세계로 침잠한다. 속세와 등을 지고 절제, 은둔, 금욕을 실천했던 수도사들처럼 자신의 방을 수도원 삼아 몇 년째 칩거하며 투고하지도 못할 무용한 글만 적는다. 이 망할 세상을 어떻게든 바꿔야 하는데 생각만 하면서움직임이 적어지면서 몸은 불어나고 유문은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수시로 배에 가스가 차고 원치 않는 가스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는 여지없이 죽음을 기다리며 좁은 감옥에서 인생에 대한 통찰을 기록해 나갔던 중세철학자와 다름없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바퀴를 끊임없이 돌려댔고 이그네이셔스의 운명도 차차 변화를 맞이한다. 그를 은둔의 수도원에서 끌어내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어머니 라일리 여사의 차 사고다.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이 발생했고 집이 저당 잡힐 상황으로 몰린다. 행동하지 않으면 이 작품의 주인공일 리가 없지 않은가. 비록 라일리 여사의 성화에 못 이겨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는 하지만 그때부터 뉴올리언스에 좌충우돌, 동충서돌, 종횡무진의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1960년대의 미국 남부, 흑백 간 인종갈등과 혐오, 반전 시위 등이 절정을 이뤘던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이그네이셔스는 자신 못지않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얽히고설킨다. 누구 하나 흠결 없는 인간이 없다. 부랑자로 몰려 현대판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한 흑인, 제대로 된 범죄자 하나 못 잡는 어리버리 순경, 자신만의 쇼를 꿈꾸나 술에 물을 타 손님 등 처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 자선사업가로 위장한 마담, 그 마담과 공모한 청소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회사 직원, 게이, 이그네이셔스와 애증의 관계인 이상주의 연인 등이 그들이다. 저마다 운명의 여신이 돌리는 바퀴에 의해 삶의 바닥으로 내쳐진 인물들이 한 곳에 모였으니 무슨 사건이 안 일어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흥미로운 점은 그토록 고집불통에 이상주의적이고 냉소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수도원이 파괴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자 적극적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비판을 담은 글이 침대 밑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진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의 흑인 인권을 위한 대규모 데모를 주도하며 권력자에 저항하기도 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게이로 구성된 정당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전복시킬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과연 이그네이셔의 이런 도전은 성공하여 운명의 바퀴 정상에 설 수 있을까는 두고 볼 일이다.

 

소위 루저로 불리는 주·조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그네이셔스의 생각대로라면 평생 루저의 인생으로 끝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잡아 지긋지긋한 침체의 궤도를 벗어나 변화를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지만 인생은 참 살아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소위 원히트원더로 끝난 바보들의 결탁의 저자 존 케네디 툴의 삶은 주인공 이그네이셔스와는 달랐다는 것이 놀랍다. 이그네이셔스는 석사 출신이 길거리에서 핫도그를 판다는 가족 및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더라도 당당하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사회를 비판할지언정 삶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툴은 32세의 꽃다운 나이에 자살했다. 투고실패, 어머니와 불화 등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언급했던 운명의 바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남긴 원고를 한 유명한 작가에게 보여줬고, 영영 어둠 속에 묻혀버릴 뻔한 원고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걸작으로 등극한다. 툴이 죽고 1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는 다시 운명의 바퀴 최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영광을 즐길 그가 이미 세상에는 없다는 것.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삶과 주인공의 여정을 보면서 행운과 불행을 다시 생각해본다. 좌절할 만큼 괴롭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열심히 여신이 바퀴를 돌리고 있다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 그리고 영광의 시기를 구가하고 있다면 나락을 대비하면 되는 것이다. 절망 끝에는 적어도 깨달음이라도 얻지 않겠는가 말이다. 정말 부조리하고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이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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