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0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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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4,524~40장으로 구성된다.

4부의 제목은 팔림프세스투스이다.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2권 전체 분량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중세시대 유럽, 이슬람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종이 수입이 어려워졌다. 기록의 보존을 위한 종이 대체품으로 찾아낸 것이 송아지, 양 등 동물 가죽을 이용한 일명 양피지였다. 양피지는 제작하기 어렵고 고가였기에 기존 내용을 갈아내거나 씻어낸 후 재사용하기에 이르는데, 이를 필람프세스투스라고 했다.

 

새로운 내용이 양피지에 다시 기록되지만, 미처 제대로 지워지지 않은 기존 내용과 겹치는 경우도 생겼으리라.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뒤섞여 혼란을 자아낼 텐데 2권 초반 24장이 그렇다. 뒤섞인다고 무조건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더 알아보기 힘든 칠흑 같은 검은색이 되기도 하지만, 더없이 투명한 흰색이 될 수도 있다. 24장은 후자의 경우로 여러 개의 시점이 겹치지만, 주제는 더없이 투명하고 명확하다. 그 지긋지긋한 이란 무엇인가.

 

성인이 된 아드리아는 사라가 갑자기 사라진 후 튀빙겐으로 유학을 하러 갔고 어느 날 근처 비벤하우젠 수도원 투어를 간다. 이때가 1960년 즈음일 텐데 투어 진행 중 갑자기 배경이 1940년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14세기 종교재판이 한창이던 스페인의 지로나가 혼합된다. 악의 화신인 종교재판장과 나치 포로수용소장이 뒤섞이며 서사를 끌어간다. 신기하게도 시대와 인물이 어지럽게 혼합되지만, 그들이 소수자에게 행한 악행은 시공간을 초월해 동일하게 자행된다. 소수자는 이단, 유대인, 조국을 잃은 카탈루냐인, 성소수자 등 억압받는 모두를 상징한다. 아무리 수 만 번 양피지를 새롭게 겹쳐 쓰더라도 인물은 바뀔지언정 악에 대한 부분은 늘 동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세상이다. 24장은 필람프세스투스의 상징적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챕터다.

 

1권이 아드리아의 유년 시절/청소년기를 다뤘다면 2권은 그의 청년기를 다룬다. 그는 튀빙겐에서 박사 학위를 땄으며 바르셀로나 문화사 교수가 된다. 진실은 간혹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렇다. 독자는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 머리를 싸매지만 결국 겉모습으로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14세기의 잘 나가던 종교재판소장의 비서였던 미켈이 왜 자리를 박차고 방랑의 길을 선택했는가. 20세기 초 프란츠 그뤼베는 레지스탕스로 기억되는 것이 온당한가. 아드리아의 아버지 팰릭스는 순진한 골동품 덕후였는가. 인간은 고쳐 쓸 수 없는 존재인가 등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록만을 진실로 믿을 수 있을까. 인류는 17세기 전까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믿었던 자들이란 것을 기억하자.

 

 

특히 2권에서는 1권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던 나치 수용소의 악 그 자체였던 보이트 박사, 보덴 박사, 회스 중령 등에 대한 전사와 이후 운명이 다뤄진다. 보덴 박사에게 가족을 희생당했던 마티아스, 그는 제대로 된 대항을 하지 못해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아간다. 속죄하기 위해 수도원에도 들어가는데 거의 죽어갈 때 이웃 수도원의 수도사가 그를 살려준다. 뮈스라는 이름의 수도사는 나중에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나치 장교였던 보덴 박사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을 지옥에 빠뜨렸던 인물이 회개 후 자신을 구원하기도 했다. 결국, 악은 처벌을 받는다아드리아는 왜 신은 악을 처벌하지 악 그자체를 막지 않느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는 "악은 처벌은 받지만 이미 일이 일어난 뒤에 처벌 받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다. 중요한 것은 악 자체가 벌어지지 않게 해야하는게 신의 역할 아니냐 말이다.

 

아드리아의 어머니 카르메가 사망하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진실도 드러난다. 왜 아드리아의 연인이었던 사라가 그의 곁을 떠났는지에 대한 사실이 밝혀진다. 아드리아의 부모가 깊이 관여된 사건 때문인데 충격을 받은 사라는 갑자기 말도없이 파리로 떠나버린다 것이다. 이후 다시 사라는 돌아오겠지만 여전히 부모가 남긴 악의 씨앗은 둘의 관계를 살얼음 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프랑코 사망 후 아드리아는 튀빙겐으로 돌아와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문화사 수업을 맞는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그 또한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련의 모든 사건은 비알이라는 바이올린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 바이올린은 아드리아에게 있다. 결국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그와 관련이 있다.

모든것이 나와 관련이 있었다. 나는 인류의 잘못된 선택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2권은 사건의 실체를 찾아 들어가고 그곳에서 감당하기 힘든 진실의 순간을 만나 좌절하는 순간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진실에는 악이 숨쉬고 있다. 악은 절대로 뿌리 뽑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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