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9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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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카탈루냐어로 된 문학작품이라는 점, 게다가 그곳에서 공부한 번역가에 의해 직역된 작품이란 것도 흥미를 끌었다. 스페인에는 네 개의 공용어(카스티야, 카탈루냐, 갈리시아, 바스크)가 있으며 그 중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 지방에서는 카탈루냐어를 사용한다.

 

작가는 작중 인간은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라고 언급한다. 스페인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통찰이 함의된 문장이다. 과거 네 개의 언어권에 살던 사람들은 가장 강력했던 카스티야왕국 주도로 통일되면서 나머지 언어권은 비주류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카탈루냐는 독립을 외치고 있고 이러한 열망은 엘클라시코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축구 경기를 통해 터져 나온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카탈루냐에서 성장한 작가의 작품에 소외된 자를 다루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들을 억압하는 악인들에 대해서도

 

소설은 600년이라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일말의 틈도 없이 순식간에 시공간이 교차하고, 화자의 시점과 인물도 혼합된다. 뻔한 내용도 이야기 구성의 파격을 통해 전과 다른 관점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다. 작품의 주요 시공간은 교황의 권위가 정점에 달했던 그리고 그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기독교 내부의 이단을 척결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종교 재판소를 설치했던 14세기,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계몽의 시대를 열었던 18세기, 각종 이념의 각축장이 되었던 스페인 내전,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을 드러냈던 아우슈비츠 유대인 절멸수용소 등 카탈루냐,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를 아우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곳에는 늘 소수를 억압하는 절대 권력이 존재했다. 종교의 도그마, 이데올로기, 패권, 순혈주의 등의 다양한 가면을 썼으나 결국 비주류에게 악으로 존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악에 의해 희망이 거세돼버린 사회는 살아있는 지옥이 된다. 그곳에선 살아가는 개인 또한 자의든 타의든 상대방의 희망을 빼앗으면서 악이자 지옥이 돼버린다.

 

신이 존재한다면 악이 태동하기 전에 발본색원할 수 없을까. 악이란 추상인가 실제인가. 예술은 악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인간의 역사는 오랜 시간 축적된 우연의 결과인가 아니면 이미 계획돼 있는 필연인가. 의식하지 못했으나 개인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는 지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등 다양한 담론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려 8년의 시간을 사용했으며 2011년에 더 진행을 마쳤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만큼 묵직한 생각거리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따분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1권은 총 32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3권의 내용을 풀어가기 위한 수많은 사건과 복선이 난무하다. 60세가 된 주인공 아드리아는 알츠하이머로 인해 머리에 유통기한이 생겼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과 책 속에서라도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그는 자서전 형식의 글을 써나간다. 그 장대한 서사를 추동하는 매개체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비알이라는 바이올린이다.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을 거쳐 자신에게 도착했을 비알의 탄생과정과 소유자를 추적하며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의 기록은 사실일까.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독자는 목격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한다고 희랍의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1권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데, 시대별로 정리를 해보았으나 작품은 생각보다 이렇게 친절하지 않다. 아래의 시대가 한 문단, 문장에서 수시로 교차하면서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그래서 생각보다 흥미롭고 더욱 집중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드라마 각본을 썼던 이력이 장면 전환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아래>

-20세기 후반

이제 60이 된 주인공 아드리아. 머리에 유통기한이 생겨버린 그는 기억을 살려 행복과 불행에 관하여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한 여인을 평생 사랑했다. 고대의 지혜를 보존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양피지에 기록을 남겼던 중세의 수도사처럼, 악에 대한 성찰을 다룬 원고 뒷면에 기억을 채워나간다. 이는 사랑하는 연인의 기록이자 자신의 자서전이며 동시에 그들을 연결했던 비알이란 이름을 가진 바이올린에 관한 연대기요, 악에 대한 고찰 그리고 우연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에 관한 성찰이다.

 

 

-20세기 초

기록은 유년 시절 보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본격 진행된다. 펠릭스 아르데볼은 아드리아의 아버지로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으로 유학을 하러 간 수제다. 펠릭스는 운명의 연인 카탈리나를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그녀를 임신시키고 주변의 평판이 두려워 로마를 떠날 만큼 비정했다. 이 사건으로 펠릭스는 공부를 그만두고 골동품 수집상으로 전업한다. 업무상 바르셀로나의 아드리아 보스크라는 학자와 알게 되면서 사업 확장을 했고, 그의 딸 카르멘과 결혼하여 주인공 아드리아를 낳는다.

상인은 가리는 것이 없다. 나치, 유대인, 파산자 등 위기에 빠진 자들을 귀신같이 알아내어 염가에 귀중품을 사들인다. 바이올린은 펠릭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던 나치 출신의 장교 팔레그나미로부터 헐값에 가져온 것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갈취한 물건 때문에 결국 펠릭스도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다. 아드리아의 아버지를 죽인 바이올린의 주인은 어떻게 그 바이올린의 소유자가 된 것일까.

 

 

-나치수용소

유럽의 동쪽 수용소에서 유대인 절멸이 이뤄지고 있다. 생체 실험실을 담당하는 보이트 박사는 수용소에서 한 포로를 죽이고 바이올린 얻었다. 팔레그나미는 보이트 박사였으며 신분을 위장하고 펠릭스의 친구 모를린 신부의 비호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그런 약점을 간파하고 펠릭스는 그에게 바이올린을 염가에 갈취한다.

 

 

-17~18세기

바이올린에는 라우렌티우스 스토리오니 크리모넨시스 메 페킷 1764” 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있다.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1764년에 스토리오니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의미다. 이를 바탕으로 아드리아는 한 단계 더 깊숙이 바이올린 역사를 추적한다. 한 세기 더 전인 17세기 북부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 인근 프레다초 숲에 사는 자키암이라는 나무 공급자에 초점이 모아진다.

자키암은 악기가 될만한 품질 좋은 나무를 골라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그는 분노 조절에 실패하여 살인을 저질렀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프랑스 카르카손에서 목수로 일하며 한 수사를 만나 카탈루냐 지방의 성 페레 델 부르갈이란 300년 전 버려진 수도원 부근의 숲에 악기 제작에 최고의 나무가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 숲의 최고의 단풍나무가 비알이 될 운명이었다. 나무를 자를 때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는데 밑에 해골이 발견된다. 이 해골의 주인은 누구일까. 또 과거로 거슬러가 봐야 하지 않을까.



-14세기

나무 밑의 해골은 300년 전 죽임을 당하고 아무렇게나 묻힌 줄리아 수사로 밝혀진다. 한때 도미니크회 수도사였다가 20년 전 종교재판장의 부관 자리를 박차고 나온 당시에는 미켈로 불리던 인물이다. 추상같던 상관의 명령을 거부해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미켈은 도망 중 어느 베네딕트회 소속 수도원에서 줄리아 수사를 만나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속세와 단절된 성 페래 델 부르갈 수도원의 얘기를 듣고 그곳에서 새롭게 줄리아 수사로 봉직한다. 하지만 지령을 받은 기사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고 수도회 영지에 묻힌다. 줄리아가 지녔던 씨앗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뤘고, 이들 중 하나가 비알이 되었으며 이는 곧 소설의 서사를 진행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이제 2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상세한 배경이 설명될 것이다. 아울러 1원에 나온 수많은 떡밥이 조금씩 회수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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