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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많은 남자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대체 얼마나 더 평등해지기를 원하는 거야, 이미 충분히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고. 설마 여자라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거야? (...) 어쩌면 누군가는 그렇게 비아냥거리거나 헛웃음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건대) 세상은 아직 평등해지지 않았다. 남녀가 정말 평등하다면, '남녀평등'이라는 말도 사라져야 옳다.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는다면, 굳이 그것을 지칭할 말도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남자한테는 절대로 그런 걸 안 물을걸요."
(...) 어떤 질문은 세상에는 여러 여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여자만 있다는 생각에서, 그 여자는 종 전체를 위한 엘리베이터처럼 반드시 결혼하고, 번식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아기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듯하다. 인간이라는 종의 51퍼센트는 여성이고 그 여성들은 나머지 49퍼센트 못지않게 다양한 욕구와 신비로운 욕망을 가진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문 중에서, 16쪽)
아이를 출산하고 나니, 남녀가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사실 출산전까지만해도 나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불평등한 세상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만큼 공부했고, 좋아하는 일을 했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는 데 있어서도 불평등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임신과 동시에 주위의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나를 이상한 길로 몰고 갔다. 굉장히 많은 이들이 내게 "아이 낳고서도 계속 일할 거야?"라고 물었다. "당연하죠."라는 나의 대답에 "아기 돌봐줄 사람은 있어?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좀 불안하지 않아?"하는 질문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그게 모두, 엄마인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요?
사실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그 모든 것을 '엄마'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래서 어제까지만 해도 사회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구성원들은 출산과 동시에 육아만을 전담하게 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한 쪽에 안은 채로 다른 팔에 갓 태어난 아이를 받아든다. 슬프게도 두 가지를 병행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 나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려면 부모의 육아 못지않게 중요하고 긴요한 일들(예를 들어 글을 쓰고, 정치활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을 뒤로하고 아이에게 쾌적한 의식주를 제공하는 데 힘쓰기로 한다. (u_u....)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최근 다시 한번 열린 페미니즘 대화의 장은 더없이 반가웠다. 그것은 한편으로 여러 잔혹한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그 잔혹한 문제를 둘러싼 침묵이 깨진 데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내에서의 성추행이나 캠퍼스 강간에 대한 대화들이 그렇다. 수많은 사연이 유례없는 규모로 널리 관심을 끌었다. 여성 혐오가 그나마 덜한 일부 주류 언론,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대안 언론의 페미니스트들이 만난 교차점에서는 격렬할 만큼 활발한 대화가 새롭게 일어났다.
아직, 과정 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늘- 말해지지 않았지만 말해져야 할 것들이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언어와 의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침묵은 늘 깨지고 있고, 찰랑찰랑 밀려온 파도가 발자국과 모래성과 물에 씻긴 조개껍데기와 해초를 덮는 것처럼 다시 차오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관통하는 한 문단!)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 (본문 중에서,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