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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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어지럽게 시선을 가로막았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들의 눈빛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든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사실은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일부러 조용한 시간을 찾다가,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밤에 몰래 일어나 숨죽이고 읽었다. 그러다가 해가 뜨면 왠지 모를 안도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미국의 역사적인 흑인 노예 해방 조직인 '지하철도'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지하철도가 실제 기차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은 밑으로 계속 이어지는- 시작과 끝을 아무도 모를 지하철도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가팔랐지만 돌이 평평한 면을 이루며 가지런히 놓여있어 내려가기 쉬웠다(81쪽)는 문장에서 지하철도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졌다. (실제하는 지하철도에 처음 발을 내딛는) 그 순간만큼은- 코라도 저자도 그리고 나도 조금 안심했던 것 같다. 이제는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될 것이라고.

"그럼 노예들은 어떻게 돼요?"
먹을 것과 일자리, 집을 받죠. 원하는 대로 통행할 수 있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고, 그들이 기르게 될 아이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요. 일자리도 좋아요, 노예 일이 아니야. 이제 곧 직접 보게 될 거라니까.
(본문 중에서, 109쪽)

실로 그것은 눈앞에 있는듯했다. 하지만 자유라는 포장지 뒤에는 랜들농장에서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 드러내놓고 노예라 칭하는 이는 없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도망자였고- 노예 일은 아니지만, 노예와 비슷한 일들을 해야만 했다.
(특히 박물관에서 살아있는 전시물 역할을 하는 코라는 정말이지 슬펐다) 계속해서 숨어야 했고, 숨죽여야 했다. 코라는 정말이지 대단하게도 그 순간들을 잘 견뎌내지만,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감옥과 다름없는 곳을 누군가의 유일한 피난처로 만드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코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속박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 그물 속에 있는 것일까. 도망자 신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었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지만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큰 곳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주인에게서 자유롭지만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토끼장 속을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본문 중에서, 203-204쪽)

사실 돌이켜보면 미국 노예해방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꽤나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전에 없던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코라의 탈출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보다 코라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자유의 땅으로 가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이 어느새 지하철도에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있었던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을 직면하게 했다. 물론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이란 본디 그럴싸하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것이니. 어쨌거나 나는 코라의 오늘 밤이 편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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